“클럽 못 가서 왔다” “그동안 너무 답답했다”

지난 14일 강남의 한 헌팅포차 앞에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사진=조택영 기자]
지난 14일 강남의 한 헌팅포차 앞에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사진=조택영 기자]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유흥업소 등에 대한 ‘집합금지 명령’까지 이뤄지고 있다. 이에 참다못한 청년층이 외부로 나가는 모양새다. 아직도 코로나19 집단감염 가능성이 높지만 인파가 몰리는 장소가 있다. 바로 ‘헌팅포차(술을 마시며 이성과의 즉석 만남이 가능한 곳)’다. 클럽 등 유흥업소가 문을 닫자 2030세대가 헌팅포차로 향하는 것이다. 일요서울은 현장에 나가 여러 목소리를 들어봤다.

강남, 왕십리 등 번화가에 2030세대 ‘바글바글’

“유흥(클럽 등)‧단란주점, 노래연습장, 콜라텍은 ‘감염병예방법’ 제49조1항2호에 따른 집단감염 위험시설입니다”, “활짝 핀 봄꽃이 아쉬워도 안전을 위해 내년에 만나요”

서울시와 서초구‧강남구청이 내건 현수막이 무색할 정도로 지난 10일과 14일 서울 강남 거리에는 많은 시민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클럽 등 유흥업소에는 ‘집합금지명령 고지문’이 붙고, 문도 열지 않았지만 헌팅포차에는 젊은 인파가 몰렸다.

[사진=조택영 기자]
[사진=조택영 기자]

앞서 정부는 지난달 21일부터 오는 19일까지 유흥시설을 포함해 종교‧체육시설 등에 대해 운영을 제한하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했다.

또 서울시에서는 지난 8일부터 시내 룸살롱과 클럽 등 422개 유흥업소에 대해 19일까지 영업금지 조치를 내렸다.

질병관리본부도 “유흥시설에 대해서는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운영 제한 조치가 진행 중”이라며 “불가피하게 운영 시에는 소독 및 환기, 사용자 간 거리 유지, 마스크 착용 등 방역당국이 정한 준수 사항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14일 건대의 한 클럽이 문을 닫은 모습. 클럽 앞에는 ‘집합금지 명령’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조택영 기자]
지난 14일 건대의 한 클럽이 문을 닫은 모습. 클럽 앞에는 ‘집합금지 명령’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조택영 기자]

클럽 등 유흥주점은

이미 문 닫았다

기자는 지난 10일 강남, 14일 왕십리‧건대‧강남 일대를 다니며 현장 상황을 살폈다. 건대 번화가에서 입소문이 자자한 한 클럽 앞에는 이미 ‘집합금지 명령’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서울시는 안내문에서 “유흥시설에서 밀접 접촉이 이뤄지고 7대 방역수칙 준수가 불가능해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대두됨에 따라 서울시민의 건강 및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라며 “집합금지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영업주와 시설 이용자는 고발조치(300만 원 이하 벌금) 된다. 또한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시 치료비, 방역비 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집단감염 위험시설 집합금지 명령 고지문. [사진=조택영 기자]
코로나19 집단감염 위험시설 집합금지 명령 고지문. [사진=조택영 기자]

대상 업종은 클럽‧룸살롱 등 유흥업소, 감성주점, 콜라텍 등이라고 광진구 보건소장은 ‘코로나19 집단감염 위험 시설 집합금지명령 고지문’을 통해 밝혔다.

일부 감성주점은 문을 닫았다. ‘임시 휴업’ 안내 문구를 내 건 것이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임시 휴업한다. 휴무 기간에 매장 소독과 방역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거리에는 시민들로 붐볐다.

14일 건대의 한 감성주점이 문을 닫은 모습. [사진=조택영 기자]
14일 건대의 한 감성주점이 문을 닫은 모습. [사진=조택영 기자]

왕십리 번화가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곳에 있는 한 헌팅포차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테이블 의자 간격이 가까워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혀 시행되고 있지 않았다. 매장 앞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일행과 얘기하거나 담배를 피우며 침을 뱉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20대 방문객 A씨는 “클럽을 가려고 했는데 다 문을 닫았다고 해서 헌팅포차로 왔다. 다들 그런 분위기”라며 “전에는 코로나19가 두려웠지만 젊기도 하고, 확진자도 줄어드는 추세라 괜찮을 것 같아서 왔다. 사실 지금까지 집에만 있기 너무 답답했다”고 말했다.

14일 왕십리의 한 헌팅포차에 시민들이 몰렸다. [사진=조택영 기자]
14일 왕십리의 한 헌팅포차에 시민들이 몰렸다. [사진=조택영 기자]

지난 10일, 14일 강남 번화가에 위치한 한 헌팅포차에는 줄을 서는 모습까지 보였다. 입장을 기다리는 젊은 세대로 북새통을 이룬 것이다. 심지어 이들의 대부분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착용했더라도 턱 밑으로 내린 채 일행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 간 간격도 가까웠다. 해당 헌팅포차는 서울시‧서초구청의 ‘집합금지 명령 안내’ 현수막에서 약 15m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20대 방문객 B씨는 “코로나19 때문에 꽃구경도 못 가고 그동안 답답했다. 날씨는 좋아지는데 못 나가서 다들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라며 “물론 이곳(헌팅포차)이 집단감염 위험성이 높을 수 있겠지만 놀고 싶은 마음이 컸다. 확진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 때문에 다들 안심하는 영향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을 지나던 30대 시민 C씨는 “나도 사실 술을 마시러 강남에 왔지만 저 사람들(헌팅포차 앞 시민들)은 좀 너무한 것 같다. 저들을 보라. 마스크 착용도 안 하고, 사욕을 채우려 저렇게까지 줄 서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클럽 문을 닫은 이유가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해달라는 차원 아닌가. 저 안(헌팅포차)에서의 행태가 클럽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 뭐가 다르겠나”라고 힐난했다.

또 다른 20대 시민 D씨도 “서울시 조치의 허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클럽과 헌팅포차는 사람들이 가깝게 접촉하고, 상대방을 찾아다닌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 아닌가. 클럽 등을 문을 닫게 했으면 저런 곳(헌팅포차)도 영업금지 조치를 했어야 한다”면서 “거의 유흥업소 대체 업소나 다름없다. 영업장 사장도 문제가 많다. 법망을 피해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14일 강남에 위치한 한 클럽이 문을 닫은 모습. [사진=조택영 기자]
14일 강남에 위치한 한 클럽이 문을 닫은 모습. [사진=조택영 기자]

“‘영업규제’ 형평성 어긋나”

헌팅포차에 2030세대가 모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2일 강남구 역삼동의 한 유흥주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이후 서울시가 클럽‧룸살롱 등 유흥업소 영업을 금지하자, 유흥업소의 기능을 일부 대체하는 헌팅포차로 시민이 몰린 것이다. 또 그동안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지쳐 일종의 해방구를 찾는 행태다.

유흥업소들은 19일까지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졌지만, 헌팅포차는 유흥업소가 아닌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금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집단감염 위험성이 있음에도 헌팅포차에 방문하는 시민들을 두고 ‘안이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기자가 만나본 시민들은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2030세대를 지적하면서도 이해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입장을 보였다. 그동안 집에만 갇혀있어 답답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20대 시민 E씨는 “(헌팅포차에 방문하는 것이) 지하철‧버스를 통해 출퇴근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버스나 지하철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밀집돼 있는가. 나는 헌팅포차가 더 안전한 것 같다. 마트만 봐도 통제도 없이 사람이 몰리고, 1~2미터 거리 유지가 안 되는 계산대 직원도 많다”면서 “식당, 카페도 마찬가지다. 영업장과 직원은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쩔 수 없고, 사람들도 이젠 지칠 대로 지쳤다. 이제는 집에만 있기 힘들다. 이런 곳도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및 영업규제를 할 거면 카페‧식당 등도 다 해야 한다.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계속되자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을 오는 19일까지 2주 연장했다. 정부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방역체계로 전환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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