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지요?”
문을 빼꼼히 연 사내는 두꺼운 안경을 추켜올리며 경계의 눈길을 보냈다.
“시경의 추 경감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강 형사”
추 경감은 소개를 하며 지긋이 문을 밀었다. 사내는 순순히 물러섰다.
“윤철구 씨죠?”

“예, 그렇습니다만….”
“정순우 씨를 아시지요?”
철구는 찔끔 놀라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순우라면 알긴 압니다만….”

철구는 당황한 듯 두 손을 비벼댔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아파트 안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헤헤, 혼자 살다 보니까….”

철구는 겸연쩍어 하면서 흐트러진 비닐봉지와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집어 들어 구석으로 밀어 놓았다. “아닙니다. 불쑥 찾아온 우리 잘못이지요.”
추 경감이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이 정순우 씨지요?”
자리에 앉자 강 형사는 사진을 한 장 꺼내 보이면서 물었다.
“그렇군요”

철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런 말씀을 전해서 죄송합니다만, 정순우 씨는 어제 오후에 살해당했습니다.”
“예? 살해요?”
“그렇습니다.”
강 형사가 말했다.

“그날 저녁 정순우 씨의 여자 친구가 그의 아파트로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아, 그랬었나요? 하지만 난 순우와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왜 절 찾아왔나요?”

“그건 그 정순우 씨는 가까운 친구가 거의 없더군요. 그 아파트에서도 혼자 살고 있고 수첩에 있는 전화번호도 몇 개 되지 않았습니다.”
철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 때문에 나를 찾아왔단 말입니까? 나는 해드릴 이야기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순우는 누구에게 죽임을 당한 겁니까?”
“담배 한 대 피워도 될까요?”

추 경감이 갑자기 답뱃갑을 꺼내며 말했다. “좋으실 대로.”
추 경감은 지포 라이터를 꺼내 철컥거리기 시작했다. 강 형사는 못마땅한 눈초리로 대하다가 말을 시작했다.

“우리는 면식범에 의한 살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순우 씨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려다가 뒤통수를 가격당해서 그 충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이것은 정순우 씨 뒤에 범인이 있었다는 뜻이므로 범인은 면식범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럴 수 있겠군요. 불쌍한 순우가 신발 더미에 쓰러져 죽다니”

“신발 더미요? 그렇지 않습니다. 범인은 정순우 씨를 끌고 가서 안방 침대 곁에 두었습니다. 아마도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실수로 머리를 찧어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기를 바랐던 모양입니다.”
철구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요? 그런데 현관에서 죽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강 형사가 씩 웃었다.
“그건 간단하지요. 정순우 씨는 재킷을 입고 있는 데다가 손에 구둣주걱을 쥐고 있었습니다. 외출복으로 입고 구둣주걱을 손에 쥔 채 잠을 자는 사람이란 없겠지요. 정순우 씨를 죽인 범인은 당황한 나머지 이런 점을 확인하지 못한 겁니다.”

“그럴 수 있겠군요.”
철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윤철구 씨는 언제 정순우 씨를 마지막으로 만나보았습니까?”
“글쎄요? 본 지가 한참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요?”

강 형사는 철구를 빤히 바라보았다.
“요즘 정순우 씨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들어보셨나요?”
“아니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추 경감이 재떨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 “정순우 씨의 성격은 어땠습니까?”

철구는 웬 뜬금없는 질문이냐는 눈초리로 추 경감을 쳐다보았다.
“음, 아주 깔끔한 성격이었지요. 뭐든지 다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사는 성미였어. 우리는 그 친구가 먼지도 놓일 자리를 만들어놓는 녀석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지요. 책, 찻잔, 테이프 할 것이 없이 한 번 쓰고는 제자리에 모두 꽂아놓는 일종의 결벽증이 있는 친구가 아닐까 할 정도였습니다. 혼자 사니까 물건도 별로 없었지만요. 저처럼 무더기무더기 늘어놓고 사는 사람과는 영 딴판이었지요.” 추 경감이 재떨이를 들고 오며 말했다.

“역시 그랬군요. 그 말을 들으니 우리는 당신이 범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철구가 깜짝 놀라 외쳤다.
“뭐라고요?”

“당신은 현장에 있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요즘 구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더군요.” 강 형사가 수갑을 꺼내 들었다.

 

퀴즈. 철구의 실언은 무엇일까요?

 

[답변-2단] 윤철구는 정순우가 신발 더미에 쓰러져 죽었다고 말을 했다. 정순우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그가 현관에서 죽었다는 말만 듣고는 그가 신발 더미에 쓰러져 죽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요즘 구두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기에 신발을 많이 모아놓았었다. 그러나 윤철구는 그가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로써 완벽하게 자신의 죄상을 드러낸 것이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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