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낙담과 불안, 분발과 결집, 패배와 좌절, 실망과 분노, 희생양 찾기.”

2016년 총선 패배 이후 4연속 패배라는 선거 결과를 놓고 범보수 지지층이 무한루프(infinite loop)처럼 반복하는 공식이다.

코로나 정국에서 많은 국민들이 집단 패싸움 수준이라고 개탄할 정도로 양극단으로 갈라져 치른 선거가 보수 야권의 ‘궤멸적 참패’로 끝난 뒤, 서서히 이성을 되찾아가며 범보수 진영에서는 제각각 패배의 원인에 대한 백가쟁명식 분석과 향후 전망을 내놓기 바쁘다. 

전략과 전술은 죽은 지 오래다. ‘가치적 통합’이 아니라 오로지 선거에 이기기 위한 ‘기술적 통합’만 있는 ‘가설 정당’은 공천 등 중요 이벤트 앞에 매번 삐거덕거리는 불협화음을 내기 일쑤였다. 이미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휩쓰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이미 60%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도 선거 구호는 “문재인 정권 심판”에만 온통 초점을 맞추고 극한 대결을 부추겼다. 

공천 파동과 차명진 후보의 막말 등을 대표적으로 도마 위에 올리고 있고, 주요 일간지 칼럼조차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올리고 있다. 우파 유튜버를 중심으로 유승민 대표 측과의 통합 내용을 문제 삼기도 하고, 전광훈 목사와의 결별을 박근혜 대통령과의 거리두기와 연결 지어 논하기도 한다. 

일부 극우 성향의 지지자들은 사전투표 조작설과 투표함 바꿔치기 등의 의심을 단체 대화방에 유포하기도 하고, 적당히 하라고 말리는 분들과는 ‘합리적 의심’이라며 금세 막말 싸움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심지어 선대위 한복판에서 주요 직책을 맡아 활동했던 인사들조차 특정인이나 특정 현상을 희생양으로 삼아 직접적 책임을 회피하기도 하니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민초들의 허탈감에 따른 ‘갑론을박’하는 심정이야 오죽하겠나 싶기도 하다.

공천 파동과 막말을 필두로 패배에 대해 수많은 원인 분석과 향후 전망이 난무하지만 항상 그 귀결은 “누가 다시 패권을 잡을 것이냐”로 귀결될 뿐이다. 결국 모두 ‘사람’과 ‘현상’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작금의 기현상을 야기한 ‘본질’에 대한 분석은 온데간데없다. 

“살다살다 집권 3년 차에 치르는 선거에 ‘야당심판론’이 먹히는 선거는 처음 봤다.”라는 분들이 많다. ‘총알보다 빠른 투표’로 조용하지만 강하게 심판의 불벼락을 내려친 민심의 근본에는 과연 어떤 요인이 내재되어 있을까?

밑바닥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에 한숨을 지으면서도 미래통합당을 위시한 보수진영 이야기를 할 때는 혀를 내두르며 열변을 토한다. 흥분의 원류를 잘 따라가다 보면 그 시발점에 여지없이 ‘탄핵’이 등장한다. 속된 표현으로 “뭔가 닦다 만 느낌이랄까”를 말하는 국민들이 의외로 아주 많다는 점이다.

탄핵! 어느 시점부터인가 보수진영 내에서는 금기어가 된 지 오래다. 먼저 꺼내는 사람은 예외없이 도태되고 배척되었다. 탄핵은 크게 분류하면 “탄핵에 이르게 된 과정, 국회 의결과정, 헌재 심판과정” 등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많은 국민은 국회와 헌재의 처리과정에 대한 잘잘못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첫 단계인 탄핵에 이르기까지 원인을 제공하고 문제를 야기한  주체들의 태도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고 “억울하다,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를 외치면서 오로지 상대방인 문재인 정부의 실정만 골라 비판하는 것이 공허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과서적으로 보고 배워 온 보수의 가치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책임정치 등은 더 논할 수조차 없다. “보수적 정부는 조직화한 위선”이라고 했던 ‘디즈레일리’의 일성이 “보수 진영은 조직화한 위선”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시일까.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드러난 ‘현상’에만 집착해온 위선을 과감히 떨쳐내고 “오죽하면 탄핵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한 과정과 책임에 대해 스스로 썩은 살을 도려내는 집단적 해원(解寃) 의식을 통해 국민들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주며 새롭게 출발선에 서는 ‘참보수’로 거듭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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