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났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겼고,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패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를 가지고 승리감에 도취해 있는 여당을 보면 걱정이 앞서고, 선거에 지고도 희희낙락인 야당들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우리들이 선택한 300명은 누구도 선량(選良)임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우리들이 선택한 300명은 누구도 우리들의 대변자이고 심부름꾼이라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선거는 끝났고 우리들의 시간도 끝났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당신들을 상전으로 모시고 4년 동안 회안(悔顔)속에서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21대 국회의원선거는 꼭 1년 전에 시작되었다. 4+1협의체라는 괴상한 연합정치체가 당시 제1야당이던 자유한국당을 고립시키면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밀어 붙였다. 정의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은 연동형비례대표제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양 더불어민주당의 2중대임을 자임하고 나섰다.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착각한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국민들은 알 필요가 없는 선거제도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몰랐던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괴뢰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선거기간 중에 정의당 심판을 공공연히 이야기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였다면 더불어민주당과 지역구에서 연대라도 해봤을 텐데 손도 발도 못 쓰고 지역구에서 제대로 심판을 받았다. 불길 속에서 살아난 자신의 대견함에 만족하면 그만이다.

선거의 반은 공천이라고 했는데, 가진 자산이 없는 야당은 죽자사자 공천에 목매달았고, 그 결과 콘셉트 없는 공천으로 귀결되었다. 기회는 균등하다며 세월호 막말의 피의자 차명진 전 의원에게 4점이라는 알량한 감점을 부여하면서 미래통합당은 그를 공천했지만, 그는 옥쇄(玉碎)하면서 제대로 당을 배신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도 긴장감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21대 국회의장 후보 0순위였던 원혜영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다른 중진들은 은근슬쩍 묻혀서 공천을 받았다. 2008년, 2012년 공천을 못 받았던 중진들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공천을 받았고 당선되었다. 그들 중에 국회의장이 나오고 국회부의장이 나올 것이다. 기부천사 원혜영 의원은 자기희생을 통해 국회의석을 동료들에게 기부했다.

코로나19는 전 지구적으로 대재앙을 낳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했다. 31번 확진자가 나타났을 때만 하더라도 코로나19가 더불어민주당을 집어삼킬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정세균 총리의 한 달 대구살이가 문재인 정권을 구했고, 더불어민주당을 구했고, 대구시민을 구했다. 정세균 총리는 역대 어느 총리보다도 관권선거 논란에서 자유로운 총리였지만, 역대 어느 총리보다도 더 확실하게 여당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번 국회의원선거로 무능함이 지도자의 덕목이 될 수 없음을 확실하게 알려줬다. 황교안은 자연인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 자리를 홍준표 의원이 채울 것이다. 미래통합당이 살 길은 그 길밖에 없는 것임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완충정당이 없어지자 진영 대결은 지역주의가 나타났다. 역대 어느 총선거보다 지역주의는 강화됐다. 김부겸, 김영춘은 낙동강 오리알로 전락했으며, 이낙연 의원의 대권가도는 험난해질 것이다. 코로나19로 우리들의 일상이 변했듯 코로나19로 대선판도도 변했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자가 다음 청와대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나저나 20대 국회가 가기 전에 공직선거법은 원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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