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일요서울 |  프리랜서 이화자  기자] 남들이 가지 못한 곳을 가고 나면 조금은 더 완전한 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에 매번 힘들어도 ‘조금 더 깊은 곳’으로, ‘조금 더 멀리’를 꿈꾼다. 파키스탄의 라호르, 이슬라마바드, 탁실라, 미나핀을 지나 여행자의 로망 훈자마을까지. 다시 국경 마을 소스트를 지나 중국의 파미르 고원을 넘어 카스Kashgar까지. 이름조차 낯설기만 했던 곳들은 그 후 조금은 더 의미가 담긴 이름으로, 조금은 아는 얼굴로 다가온다. 문득 어느 영화나 다큐에서 이들 지명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할 것 같다.

[편집=김정아 기자/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편집=김정아 기자/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훈자마을의 둘째 날은 어슬렁데이로 정하고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숙소 뜰에서 뒹굴뒹굴하다가 한국 손님이 많이 묵고 한국 음식도 판매하는 카림아바드 인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는 길은 그곳의 대중교통인 스즈끼를 타면 20루피200원밖에 안 되는데 이조차 굳이 기다릴 일이 없다. 이곳에선 누구나 방향만 맞으면 지나가다가 차를 세우고 태워준다. 아마 전 세계에서 히치하이킹이 가장 쉬운 곳일 것 같다. 평화와 존중, 관용이 생활의 모토라는 이곳 사람들은 이런 일쯤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두 번의 히치하이킹으로 언덕 꼭대기에 있는 카람아바드 인에서 오랜만에 김치찌개를 먹고 내려오는 길, 마을 구경도 할 겸 차도가 아닌 꼬불꼬불한 동네골목길을 따라 내려왔다. 언제나 가장 좋은 기억은 유명한 관광명소가 아닌 예기치 않은 곳에서 생긴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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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자는 위치상으로는 인도 반도 북서부이지만 파키스탄 령 잠무 카슈미르에 있는 지역이다. 원래는 파키스탄과 분리된 부족 국가로 카라코람 산맥 언저리에 조용히 똬리를 튼 작은 왕국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실크로드 정복 당시 머물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정말 이곳 사람들의 생김새는 파키스탄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서구적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렉산더 대왕의 후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니 그 설에 무게를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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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복장을 입은 할머니와 며느리, 손자가 열심히 살구를 지붕에 널고 있다. 그 모습에 매료되어 발길이 그만 집안으로 성큼 들어서고 말았다. 무례하게 느낄 수도 있었지만 모두가 놀라기는커녕 살구를 손에 쥐어주며 이런 저런 설명을 해준다. 카메라를 든 우리를 보더니 여인은 자기 아들이 노래를 아주 잘한다며 부끄러워하는 아이에게 노래를 해 보라고 시킨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아이는 천상의 목소리로 귀에 익은 팝송을 들려주었다. 졸지에 오디션 프로에서 스타 발굴이라도 나온 사람인 양 나는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진정 그 아이의 목소리와 외모는 훈자마을 사람들만 보기엔 아까운 것이었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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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몇 걸음을 나섰다. 어제 봤던 유적지와 비슷한 모양의 유서 깊은 집이 있어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아름다운 여인 한 명이 손을 흔든다. 나도 따라 손을 흔들고 지나가려 했지만 계속 흔드는 손을 자세히 보니 집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에 이끌려 맛있는 살구도 대접받고 차이도 마시고 온가족과 함께 한참을 놀다가 나왔다. 하나둘씩 아이들이 들어오더니 자연스레 옆에 앉는다. 오지의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공통점은 어른스러움이다. 초등학생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이가 동생을 업거나 안고 돌봐주는 모습은 마치 엄마의 모습 같다. 여인의 유창한 영어실력에도 놀랐는데 역시나 학교 선생님이었다. 방학이라 길릿에 사는 사촌들도 와서 함께 지내는 중이라고. 그중 한 아이는 한국 친구가 있다며 특히나 한국에서 온 나를 반가워했는데, 그의 팔에는 한글로 자기 이름인 카션이 헤나로 새겨져 있기까지 했다. 아마도 이곳에 찾아온 어느 배낭여행자가 좋은 이미지를 남겼나 보다. 훈자를 아름답게 하는 건 사람이고 우린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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