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경감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초동 수사가 거의 끝나고 감식반이 가구에서 지문을 뜨는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죽은 사람은 어디에 있지?”

추 경감이 아무에게도 아닌 질문을 하자 강 형사가 어디에선지 불쑥 나타나 추 경감의 소매를 끌고 안방으로 갔다. 서른 평 정도 되어 보이는 그리 넓지 않은 아파트지만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죽은 주부 강영혜가 깔끔한 여자임을 짐작하게 했다.

이 집 주부 강영혜는 잠자는 듯한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곱게 빗겨진 머리, 단정하게 입고 있는 붉은색 홈웨어의 큼직하고 화려한 장미 무늬가 그녀를 더욱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그녀가 잠든 듯이 누워 있는 위의 벽에는 커다란 그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옷 재단을 하는 모습인데 가위를 든 오른손이 날렵해 보였다.
“강영혜는 재단사였는데…. 전국 기능 경기 대회서 국무총리상도 탔다고 하더군요. 이 아파트도 그녀가 처녀 때 모은 돈으로 샀다던가….”

강 형사가 묻지도 않는 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어디에 목이 맸다고 했지?”
추 경감이 초동 수사에 처음부터 참여한 강 형사를 보고 물었다.
“저기 베란다 창틀입니다. 그런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죽은 뒤에 목을 맨 듯한 흔적이 있다고 검안한 의사가 말하더군요. 그리고 유서 같은 것도 전혀 발견할 수가 없고요. 말하자면….”

“타살 가능성이 크다 이거지?”
추 경감이 말을 앞지르자 강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늘 여기 드나든 사람을 조사했더니 두 사람이나 되더군요. 그중에는 화장품 월부 판매 아줌마도 있었어요. 강영혜 씨가 5개월 월부로 화장품을 샀다더군요.
오후에 죽을 사람이 오전에 월부화장품을 사겠습니까?

사망 추정 시간은 오후 2시께입니다. 검안의는 1시께라고 말했습니다만 2시 이후에 살아 있는 것을 본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누가 살해한 뒤 자살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목을 매달아 놓았을지도 모른다 이거지? 누구야, 그런 유치한 짓을 한 녀석이…?”
“그게 그렇게 단정할 일이…….”

“남편은 어디 갔어?”
추 경감은 강 형사의 설명을 귓전으로 흘리며 동문서답을 했다.
“저쪽 방에 있습니다. 출판사 영업 사원인데 수원에 출장을 갔다가 조금 전에 왔습니다. 남편 조말구의 알리바이는 확실합니다.”
“자살했다면서 알리바이고 뭐고가 어딨어?”

추 경감은 다시 핀잔을 주면서 남편 조말구가 있다는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는 조말구 외에도 옆 아파트에 산다는 50대쯤 되어 보이는 독고라는 남자도 같이 있었다.

조말구는 넋 빠진 모습으로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30대 초반으로 결혼한 지 이제 3년밖에 안 되었다는 그는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려고 했는데 죽긴 왜 죽어….”

남편 조말구가 주먹으로 벽을 치면서 몸부림쳤다. “자살할  만한 동기가 있었나요?”
추 경감이 물었다. “영혜는 늘 아기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비관해 왔습니다. 요즘 와서는 그게 노이로제 증상으로까지 되었답니다.
“그래요?”

추 경감은 그런 것을 비관해 죽을 수 있는 여성이 요즘에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두 분은 원래 친구 사이셨나요?”
추 경감이 곁에 있는 독고라는 늙은이를 보고 물었다.
“조말구 씨가 이사 온 뒤에 알았죠. 그러니까 한 열흘 되었나? 아침에 건강달리기 하다가 만났지요.”

그런데 이 사건에는 독고가 관련이 있었다.
오늘 낮 2시께부터 수원에 있는 통닭집에서 점심 끝에 서점 주인과 한잔하고 있던 조말구가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아 옆 아파트의 독고 씨에게 자기 집에 가 볼 것을 부탁했었다. 그때는 분명히 강영혜가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시간이 2시쯤이었다고 한다.

“수원에 책값 수금하러 갔었다 이거죠. 근데 집에 전화는 왜 거셨습니까?”
강 형사가 물었다.
“저녁에 늦게 들어간다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독고 씨에게 좀 묻겠습니다.”
추 경감이 그를 쳐다보자 그의 얼굴은 바짝 긴장되었다. “2시께 이 아파트로 왔을 때 문이 열려 있었습니까?”

“예, 두어 번 초인종을 눌렀으나 대답이 없어 문을 밀어보니 열리더군요. 안으로 들어가 불러봤더니 한참 있다가 아주머니가 나오더군요.”
“그때 강영혜 씨의 모습을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예, 죽은 뒤 입고 있던 그 빨강 장미 무늬의 홈웨어를 입은 채 얼굴에는 에센스 맛사진가 뭔가 한다고 거즈를 잔뜩 바르고 있더군요. 그것 때문에 전화를 받지 못한다고 했어요. 내가 조 씨의 말을 전하자 오른손에 무선 전화기를 든 채 수원 통닭집 전화번호를 적더군요. 난 그 길로 나왔을 뿐입니다. 이건 사실 그대로 입니다.”

독고 씨의 말은 진실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편 조말구의 알리바이는 확실하다. 더구나 금방 자살할 사람이 얼굴 맛사지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 사건은 부검 결과 결국 자살을 위장한 타살로 판명되었다. 유력한 용의자로는 남편 조말구가 지목되었다. 그는 아내 덕택에 집까지 마련하고 얹혀살다시피 하는 주제에 옛날 애인인 수원 통닭집 여인 김정애와 눈이 맞아 놀아나고 있었다.

“강 형사 빨리 가서 조말구와 수원 통닭집 김정애를 데려 와! 공모 살인이야.”
추 경감이 단호하게 결론 내렸다.

“조말구가 강영혜를 1시께 죽인 뒤 수원으로 가서 알리바이를 만든 거야. 독고씨가 그 집에 갔을 때 얼굴에 맛사지를 하고 있던 여자는 강영혜가 아니라 김정애야. 독고가 얼굴을 못 알아본 거지.”
추 경감의 추리는 틀림 없었다.

“아니 경감님 근데 맛사지하던 여인이 강영혜가 아니라 것은 어떻게 알았죠?”
강 형사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퀴즈. 여러분도 추리해보세요

 

[답변-2단] 강영혜 집에 걸려 있던 재단하는 사진에는 그녀가 오른쪽 손에 가위를 쥐고 있어 그가 왼손잡이가 아님을 말해 준다. 그러나 독고가 그 집에 갔을 때 여인은 오른손에 전화기를 들고 전화번호를 왼손으로 받아 썼으니….

 

[작가 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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