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쥐라기에 살던 공룡이 호수에 살고 있고 히말라야에는 설인이 산다. 버뮤다 삼각지대에는 비행기가 떨어지고 사실 그 위에는 아틀란티스가 있다. 더 놀라운 건 지구는 사실 평면인데 내부가 뚫려 있으며, 인공위성으로 북극과 남극 사진을 찍으면 구멍이 뻥 뚫려 있다. 달은 외계인의 우주선으로, 달의 지하에는 회색 외계인들이 거주하면서 가끔 지구를 관찰하는데, 금성에서는 금발의 외계인들이 가끔 찾아와 회색 외계인들로부터 지구인들을 보호한다. 

 세간에 떠도는 세상의 음모론들이 전부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만든 우스갯소리지만 꽤 많이 회자되고 있다. 황당함을 넘어 흥미로운 SF 소설이 따로 없다.

 지난해 초 우파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특강 프로그램에 초대받아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모바일 시대에 기성세대가 준비하고 바꿔 나가야 할 인식 전환에 대한 특강이었는데, 강의 후 엉뚱하게도 사전투표 및 투개표 조작에 대한 질문이 많아서 특징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외국에서 오래 살다 귀국한 교포들이 중심이 되어 사전투표 조작 관련 질문하는 것을 보고 “설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일이 있겠어요? 어떻게 만인을 속이겠어요?”라며 웃어 넘긴 일이 있었다. 그런데 4차산업혁명의 최첨단 시대에 이런 웃픈 음모론이 실제 벌어지고 있다.

 최근 미래통합당 일각에서 투표 결과를 놓고 사전투표 조작론 등 다양한 음모론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한쪽에서는 각종 통계 숫자를 제시하며 ‘합리적인 의심’을 강조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궤멸적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완전히 자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자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음모론 학자들은 세상의 불행과 고통을 설명하고 싶어도 모호성과 불확실성이 너무 크고 정보가 부족할 때 의지하게 되는 의미 형성(meaning-making)의 과정을 음모론이 생기는 원인으로 본다. 이는 권력자나 정부가 부도덕하다고 믿을수록 더욱 심해진다. 이에 비추어보면, 일부 우파 유튜버들의 방송에 심취되어 ‘샤이보수’ 등을 운운하며 승리에 대한 기대가 점점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가 일순간에 그 확신이 무너질 정도로 큰 타격을 입자 현실을 부정하고픈 동기가 본능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음모론은 또한 어떤 일이 다수의 이익과 관련될 만큼 중대한데,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게 공개되거나, 원인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을 때 주로 등장한다. 음모론자들은 특정 지배 계층이 정보를 독점하거나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독점하거나 통제된 정보를 믿을 수 없어 음모론자들은 정보를 자체적으로 생산해 낸다. 진실에 먼저 눈을 뜬 소수에 속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자부심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즉, 전국적으로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같은 지역구가 10여 군데 이상인 것은 로또 1등에 연속으로 당첨될 확률보다 적다고 하면서 조작이 진실이라고 단정하고 전파하는 식이다. 

전자개표기가 정확히는 ‘투표지 분류기’에 불과할 뿐이라거나, 각 정당이 지정한 참관인이 객관적으로 참관하는 시스템 등의 설명은 진실에 먼저 눈을 뜬 소수라는 자부심 앞에 무기력한 변명처럼 전락하고 만다. 오로지 자기확신과 확증편향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단체대화방에 넘쳐나는 그럴싸한 선거 관련 음모론들. 더욱 심각한 문제점은 극소수 유튜버나 이익집단의 상술 및 이해관계 문제라는 지적을 넘어 총선 후보였던 당사자들이 부화뇌동한다는 점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차별적 문제 제기는 일부 사이비 종교가 세상에 곧 종말이 올 것이니 자신들을 믿으라는 식으로 선동하는 것이나 뭐가 다른가? 본인들의 인지부조화 상태를 굳이 선량한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차라리 음모론 콘테스트에서 1등을 했던 “비둘기는 전시 비상식량을 위해 국가가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이나 “The X-Files”에서 인기를 끌었던 “미국은 외계인과 결탁했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궤멸적 타격’이 끝이 아니라 ‘자멸과 폭망’이라는 지하층도 있음을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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