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동안 중진 의원을 보좌해 왔던 강모 비서관은 지금 슬프다. 분개하는 중이다. 그가 모시던 의원은 주변의 여러 사정으로 21대 국회 등원에 실패했다. 일찌감치 다음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면서 여기저기 안테나를 세웠고 다행스럽게도 새롭게 모실 국회의원 당선인을 찾게 되었다. 순조롭게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봤는데 장애물이 등장했다. 그 당선인의 수석보좌관으로 내정된 사람이 강모 비서관을 내쳤다. 나이가 수석보좌관보다 많은 점이 문제가 되었다.

강모 비서관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당선인과 자신을 연결해 준 중앙당 당직자에게 s.o.s를 쳐서 당선인의 결심을 되돌려 보려 했다. 수석보좌관 내정자가 중간에서 자신을 자른 것을 확인하고는 현재 모시는 중진 의원을 동원해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현재 모시는 의원은 그의 부탁을 듣고도 끝내 전화 한 통을 안 해 줬다. 그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밖에 없다. 10여 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모셨는데 전화 한 통 해서 아쉬운 소리하는 게 그렇게 힘들단 말인가. 자기 사람도 못 챙기면서 무슨 정치를 한단 말인가. 욕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모든 의원이 이런 것은 아니다.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에 활약하다 21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은 모 의원은 오늘도 자기 보좌진들 일자리 알아보는 데 열심이다. 덕분에 방 식구들 몇은 이미 취업에 성공했고 4월이 가기 전에 다 챙겨 내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성격 깐깐하기로 유명했고, 일도 많아서 보좌진들 툭하면 밤 새우게 만들기로 악명 높은 의원이었는데, 요즘 의원회관 내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사람 좋다고 소문난 의원은 보좌진 취업은 나 몰라라 하고, 깐깐하다고 기피하던 의원은 내 일처럼 챙기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의원들의 이런 평판과 다른 상반된 행태가 이해는 간다. 국회는 지금 당선인들의 시간을 살고 있다. 20대 국회의원이었으나 21대에는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들은 방을 빼려 열심히 짐을 꾸린다. 짐짓 의연하지만 표정이나 몸짓에서 아쉬움과 허망함을 감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쓸쓸하고 외로운 원외 정치를 이어갈 결심을 한 사람도 있고, 당장은 아니지만 현업에 복귀하거나 기관장으로 갈 준비를 하는 능력자들도 눈에 띈다. 국회를 떠나야 하는 그들도 자기 앞가림만으로도 마음이 위태롭긴 할 것이다.

지역을 돌며 당선사례를 끝낸 21대 국회 당선인들은 하나 둘 씩 국회로 올라오고 있다. 국회사무처도 개원지원센터를 꾸리고 당선인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당선인들은 국회사무처에 의원 신분을 등록하고 청사출입증, 출입차량카드를 발급 받느라 바쁘다. 

낯선 얼굴들이 두리번거리면서 국회의원 회관을 배회하고 있다면 4년간의 임시직으로 취업에 성공한 21대 당선인이라고 보면 거의 맞다. 아직은 거할 곳이 없지만 한 달 뒤부터는 자기 사무실을 배정받고 의정활동에 매진하며 4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들에게는 200개의 특권이 있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200개까지는 아니지만, 국회의원들이 가진 특권은 200개 특권을 쌓아 놓은 것보다 높다. 국회의원들은 4년 동안 수많은 권한을 누리고 예우를 받는다. 

매일이 임시직이고 파리 목숨인 보좌진과 달리 국회의원들은 선거를 앞두고서야 자신들이 4년 임기의 임시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임시직이 살아남는 방법은 따로 없다. 고용주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방법 말고는. 4년은 생각보다 훨씬 짧다. 재계약을 위한 선거는 곧 돌아온다. 임시직들의 분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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