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통합당은 시한부 정당이다. 50대까지 민주당에 밀린 통합당은 60대 이상 지지, 영남의 보호로 간신히 개헌 저지선을 확보했다. 이대로라면 4년 뒤 통합당은 더 위축될 것이다. 50대 일부는 60대로 진입한다. 60대는 점점 젊어지고 점점 진보로 변할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접전을 펼쳤던 부산·울산·경남 일부에선 의석을 더 잃게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엔 TK 자민련으로 쪼그라들 수도 있다. 

 국민이 통합당을 외면하게 된 근본 원인은 ‘자격’에 있다. 정당은 말로 국민과 소통한다, 정당은 메신저(전달자)이다. 국민은 말을 전달하는 통합당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무슨 말을 내놔도 잘 믿지 않는 것이다. 자격에 대한 불신은 2017년 대선, 이듬해 지방선거, 그리고 이번 총선까지 내내 이어지고 있다.

작년 2월 황교안 대표 체제 이후 통합당은 정부여당과 강대강으로 부딪쳤다. 강경투쟁은 종종 극단투쟁을 불렀다. 문 대통령 비판은 전면 부정으로 나아갔다. 탄핵 인정, 촛불 민심은 자연스레 묻혀 갔다. 크고 센 목소리만 남은 것이다. 그새 통합당 허물은 덮였다. 당연히 메신저 ‘자격’은 회복되지 않았다.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시한부 정당의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김 전 위원장 별명은 ‘여의도 차르’다. 2016년 민주당 공천에서 패권 청산을 앞세워 친노·친문 현역 의원을 가차 없이 잘라내면서 얻은 이름이다. 유력 정치인들을 인정 사정 없이 솎아낸 그는 셀프 비례대표 공천을 통해 5선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는 통합당 메신저 자격을 회복할 수 있을까. 비대위원장으로 오르내리면서 김 전 위원장은 통합당을 환자에 비유하곤 한다. 즉 자신은 의사다. 환자는 의사 말을 잘 들어야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또 다음 대선은 경제 문제가 핵심이라고 했다. 경제를 잘 아는 자신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 진단은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맞는다고 보기도 어렵다. 김 전 위원장은 선거 기간 문 대통령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안목은 한심하고 믿을 수 없으며, 임기를 제대로 채울 수 없을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조국 바이러스에 사회적 격리까지 언급했다. 그에겐 통합당이나 문 대통령이나 모두 환자로 비치는 듯하다. 문제는 국민이다. 국민이 문 대통령을 환자로 보지 않는다면 김 위원장 진단은 옳지 않을 수 있다.

총선 이후 정치 환경은 통합당에게 뉴 노멀(New Normal)이다. 통합당은 범진보쪽으로 기울어진 새로운 운동장에 간신히 서 있다. 메신저 자격 회복은 최우선 과제다. 강경한 대여투쟁과 문 대통령 전면 부정으론 한계가 있다. 통합당의 과제는 민주당에 우호적이고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2050이다. 이들에게 지지를 얻지 못하면 시한부 정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치, 정당, 민주주의는 과정이 곧 결과다. 원칙과 정도를 지킬 때 정치적 자산은 축적될 수 있다. 통합당의 추락은 MB, 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지금까지 12년간 이루어져 왔다. 통합당 회생도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여의도 차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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