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대표

21대 총선에서 완패한 통합미래당이 비대위원장으로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을 정한 것은 비록 총선은 완패했지만 2016년 문재인 대통령 당선의 기반을 만들어낸 능력을 기대하는 마음이 실렸을 것이다. 여기에 잠재적 대권주자들과 당내 기득권세력들의 복잡한 셈법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결과이긴 하지만 김종인 위원장의 과거 경력이 큰 몫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20년 통합당 비대위 체제는 김종인 위원장 개인이나 통합당 모두에게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결국 얼마 못가 김종인 위원장은 이제 당이 살아날 만하니 딴소리를 한다고 불쾌감을 토로했던 2016년의 악몽이, 통합당은 2016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당 대표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이 분열을 선동하고 당의 자부심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비난했던 말을 되풀이할 것이 틀림없다.

김종인 위원장이 임기 무제한-당헌·당규에 구애받지 않는 전권'을 비대위원장 수락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2012년과 2016년에 당했던 ()‘을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혈혈단신으로 머리로만으로 하는 정치는 안된다. 세상에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김종인 위원장에게 과거 두 번의 은 깊은 상처로 남아 팽 트라우마가 됐을지 모르지만 교훈은 얻지 못한 것 같다.

김종인 위원장의 대표 브랜드는 1987년 현행 헌법 개정시 포함시킨 경제민주화다. 보수 경제학자가 재벌개혁과 복지 확대로 집약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를 주창, 관철시켜 김종인을 중도 합리적인 경제개혁의 아이콘으로 부각시켰다. 이 때문에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양측에서 선거를 앞두고 당 리노베이션(renovation)이 필요하면 적임자(비대위원장)로 그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정치권에서 김종인은 무게를 재는 저울추와 같이 보수진영에서는 진보로, 진보진영에서는 보수로 플러스 알파의 역할에 딱 이었던 것이다.

그런 김종인 위원장이 2012년과 2016년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비대위원장을 거치면서 정치적 야망이 싹트게 된다. 명분은 경제민주화이지만 실제로는 어린 자식을 앞세워 섭정을 했던 서태후(西太后)의 꿈을 꾸게 된다. 그는 대권 플랫폼을 통해 차기 정권을 창출하고 이어 내각제 개헌을 통해 국정을 장악하려는 야무진 꿈을 꾸는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이 대권 플랫폼 꿈을 갖게 된 것은 2016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하면서부터다. 김종인 위원장은 그해 8월로 예정된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가 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대 총선승리를 이끌면서 당내 친노-친문세력을 상당부분 제압했다고, 적어도 자신의 주도로 새로운 정계개편을 통해 대권후보를 세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8.31전당대회를 한 달 앞두고 강원도로 휴가를 떠나면서 플랫폼론을 띄운다. 민주당이나 중도세력 대선후보 증 누구라도 대선행 기차를 타기 위해선 김종인 플랫폼을 거치도록 판을 만들겠다고 생각이었다. 당시 문재인 전 대표나 추미애, 송영길 의원 등 민주당 유력후보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면서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을 만나 덕담을 건네고 손학규, 정의화, 윤여준 중진 정치인들을 만난 것도 이 같은 김종인 플랫폼구상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8.31전대이후 친문 주류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김종인 위원장은 역할을 더하지 못하고 20173월 탈당하고야 만다.

너무나 무모한 대권 플랫폼론을 기획한 것은 2012년 박근혜 체제의 비대위원과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19대 총선승리와 박근혜 대선후보의 이미지 개선에 크게 기여했으나 결국 당했던 기억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 후 자신이 낙점하고 키운 대권후보가 아니면 또다시 팽 당할 것임을 예견하고 허황된 김종인 플랫폼을 기획한 것이다.

내각제 개헌 꿈도 마찬가지다. 보수 진보를 떠나 집권한 대통령이 한번쯤은 생각하고 추진하는 것이 내각제 개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측근들이 내각제 개헌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단임제 체제에서 현직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각제 개헌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총리(수상)를 제 맘대로 바꾸면서 22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처럼.

통합당 전권을 쥔 김종인 위원장이 앞으로 2016년에 실패한 김종인 플랫폼 완성, 즉 차기 대권후보 감별을 먼저 할 지 내각제 개헌을 먼저 추진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꿈같지 않다. 플랫폼과 내각제 개헌 모두 실패할 것이다.

무리 잘 조련시켜도 국민은 안다. 국민은 제2, 3의 최순실을 원치 않는다. 정치기득권세력의 나눠먹기, 대대손손 국회의원을 독식하는 내각제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과 손잡고 내각제 개헌을 추진한다면 당장 통합당이 난리날 것이다. 오만과 독선에서 자란 꿈은 아침에 눈을 뜨면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그의 회고록에서 나는 국민 앞에 두 번 사과해야 한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다라고도 고백했다. 더 이상 국민 앞에 사과할 짓을 안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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