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기타큐슈·이토시마]

[편집=김정아 기자/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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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알 수 없는 시기다. 과거 어느 시절이 이토록 흐릿했을까. 집을 나와 후쿠오카로 가는 길, 바깥세상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모두, 의지와 상관없이 차단당한 것만 같았다. 맘 편히 숨을 쉴 수도, 만질 수도, 입과 코로 음미할 수도 없는 참담함을 예상하며 그렇게 후쿠오카에 닿았다. 또 다른 단절의 늪을 체감하기가 무섭게 공항을 빠져나와 짓누르던 공포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 보려 애썼다. 그리고 출장을 핑계 삼아, 혹독한 겨울에서 탈출한 한 마리 곰처럼 어슬렁어슬렁 먹이를 찾아 다녔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곧 ‘봄’이 찾아오고야 말 것이라는 아주 명료하지만 간절한 단 한 가지 사실을. 후쿠오카와 기타큐슈 그리고 이토시마는 그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후쿠오카]

나카스 포장마차 거리

나카스 포장마차 거리는 그저 저녁을 지나 밤이 되었을 뿐이었다. 강물에 짙게 물든 어둠을 말없이 수놓고 있는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서 자로 잰 것처럼 일정한 크기의 각진 포장마차들이 모여 밤의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절로 발길을 이끌었지만, 이미 만석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한 포장마차 문 앞에서 뒤돌아보지 않는 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천장에 매달린 전구를 향해 김이 피어오르는 작은 공간 안에 훈훈함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회전하고 있었다. 사각의 바 테이블 한가운데에 주인장을 두고 둘러앉은 손님들의 대화 사이로 늦겨울 찬바람은 차마 끼어들지 못했다. 한국에서부터 억지로 부여잡고 있던 긴장의 끈이 순식간에 풀리는 듯했고, 안경에 끼어 있던 성에가 사르르 사라지며 ‘여행’이 비로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마스크를 쓴 채 주문을 받고 있는 주인장의 얼굴뿐이었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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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리 공원

후쿠오카 도심에 토요일 오전이 시작됐다. 파랗고 쨍하지 못한 하늘, 그리고 간밤 포장마차의 온기가 날아가 버린 최근의 평균 기온과 체온으로 돌아왔지만, 그리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한동안 오호리 공원의 호수와 하늘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둥근 호숫가를 둘러싼 초록의 숲이 우거져 있으니, 벤치에 앉아 뜨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어도 아침 추위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짧은 옷을 입고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뛰고 있는 고독한 러너들, 반려견과 함께 산책 나온 가족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이른 아침부터 데이트를 시작한 연인들, 소리 없이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는 이름 모를 꽃과 나무들. 구석구석 공원 안을 맴돌고 있는 기운이 다시 여행자의 감성을 소환해주었다.

돌아가는 차 안, 잠시 걷는 길에 외부만 둘러봤던 후쿠오카시 미술관과 일정 상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일본 정원을 못보고 온 아쉬움이 어느새 느껴지고 있었다. 눈으로 호수 위의 봄을 탐하면서 마셨던 한 유명 커피 프렌차이즈 브랜드의 커피 맛까지 꽤 괜찮았으니, 아침 오호리 공원에서 토요일 아침의 촉촉한 휴일 감성을 얻었던 것 같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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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스 후쿠오카

숨을 마음껏 쉬고 싶은 요즘 우리의 가장 큰 바람 때문일까.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음에도 우거진 숲속을 걷고 있는 사실이 그저 반갑다. 그렇게 나무 사이를 헤치고 마지막 계단을 통과하면 빌딩의 옥상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옥상정원에서 후쿠오카의 양면을 볼 수 있었다. 강가를 따라 형성된 도시 그리고 그 나카강(Naka River)이 만난 바다. 꽃이 핀 화창한 날이라면 무조건 올라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그곳. 꽃에 취하든, 전망에 감탄하든. 사실 첫 방문 시, 개장 시간을 잘못 알고 간 탓에 두 번 그곳을 찾았다. 문 앞에서 되돌아온 아쉬움은 잠시간 주어졌던 자유시간을 쪼개어 달려가게 해 주었다. 단지 후쿠오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을 보고 싶은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첫 방문의 만족감, 그리고 돌아 내려오는 길에 거리를 두고 확인했던 아크로스 후쿠오카의 풍성한 진실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숲을 품고 바다를 내어주는 아크로스 후쿠오카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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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다케 신사

‘약 1600년 전, 이 지역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미야지다케 신사로 들어가는 계단의 가장 높은 곳에서 궁금증은 시작됐다. ‘빛의 길’을 마주하고 떠오른 것은 모두가 기대하는 환상적인 선셋이 아닌, ‘신’이었다. 1600년 전, 신사를 만들던 이 지역의 인간들이 기대했던 그 신. 바다에서 신사까지 신이 한달음에 달려오거나, 또는 레드카펫을 걷는 기분으로 신사까지 우아하게 걸을 수 있는 그런 창창대로가 놓여 있기에 신사의 기원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원하는 만큼의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눈앞에 놓인 많은 것들이 범상치 않은 신사임을 증명해내고 있었다. 신을 맞이하는 성스러운 성역임을 표시하기 위해 햇짚과 금줄로 엮은 오시메나와의 거대함과 한 전각의 지붕을 몽땅 뒤덮은 황금 그리고 한 신도의 자가용 앞에서 행해지는 작은 의식이 그랬다. 이 신사의 큰북과 큰방울 역시 어마어마한 크기로 신사의 이름을 드높이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를 매혹하는 절대자는 역시 붉게 물든 빛의 길 그 끝에 걸린 바다 위 태양이다. 매해 2월 말, 신에게 봄을 알리는 자연의 위대한 의식은 아닐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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