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4.15 총선에서 여당 압승의 일등공신은 우한폐렴 사태다. 국난 시에 여당을 지지하는 사회 분위기를 틈타 집권 세력이 방송 등 언론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우한폐렴 초기 대응 실패를 성공으로 윤색했다. 거기에 덧붙여 지방권력까지 동원한 무차별 매표(買票) 행위가 적중했다.

이등공신은 미래통합당 3인의 패장(敗將)이다. 황교안 대표는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고, 김형오 공관위원장은 사천(私薦)으로 유권자들을 실망시켰으며, 김종인 선대위원장은 판세를 주도하는 선거전략을 펴지 못했다.

필자는 총선 두 달 전에 칼럼에서 “미래통합당의 성패(成敗)를 가를 관건은 먼저 보수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중략) 다음은 중도세력의 마음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보수의 가치와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기반 위에 ‘중도’로 질서 있게 외연을 넓혀가야 한다. ‘중도확장’ 자체가 목표가 돼 버리면 본말(本末)이 전도(轉倒)되어 사상누각이 되기 십상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보수 정체성을 무시한 맹목적인 중도확장 ‘대통합 전략’은 대참사로 끝났다.

2년 후 대선에서도 이번 총선에서 쓴 탈이념 중도실용 전략으로는 이념적으로 무장돼있는 좌파 집권 세력을 이길 수 없다. 정당의 생명인 이념과 가치를 무너뜨리면 야당이 무엇으로 승부할 수 있는가.

이번 총선 공천에서 지난 3년 동안 자유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 우파 세력들은 추풍낙엽 신세가 되었다. ‘조국 사태’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던 ‘10월 항쟁의 정신’은 한갓 티끌과 먼지에 불과하게 되었고, 경향 각지에서 광화문으로 운집하던 길도 그저 구름과 달빛처럼 흔적이 없게 되었다.

지금 통합당은 자유 우파적 가치가 실종된 혼이 없는 ‘잡탕 정당’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 결과 진성 자유 우파 세력들은 마음 줄 당이 없게 되었고, 실체 없는 중도층 흡수는 공염불이 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나라가 어지럽지 않았던 적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처럼 IMF시절을 능가하는 경제 위기, 북핵과 김정은의 유고 사태 등 안보위기, 포퓰리즘에 물든 국민 정서의 대혼돈(大混沌)은 나라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나라는 파괴되었어도 산하는 건재하고 성 안에 봄이 오니 초목이 무성하다.’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의 시 ‘춘망(春望)’ 첫 구절이다. 당나라는 안록산의 난으로 당시 세계 최강대국을 구가하던 전성기의 번영을 상실했고 이후 회복하지 못했다.

세상이 하수상해도 대한민국의 국토산하는 유구하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 우파가 참패했지만 집권당과의 표 차이는 8% 정도다. 야당은 주류세력이 교체됐다며 한탄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창조적 파괴’를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보수 재건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첫째, 당명·로고·당색을 바꿔야 한다. 당의 이념이나 가치가 투영되지 않은 ‘미래통합당’이 과연 적합한 당명인가. 그리고 당색도 주홍색에서 원래의 군청색으로 바꿔봄이 어떨까. 둘째, ‘뼈를 깎는’ 자성의 바탕 위에 균형성장과 평화를 보수의 가치로 만들고 약자를 위한 온정적 보수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셋째, 당선인 모두 개인적인 이익을 버리고 당을 앞세우는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자세로 무장해야 한다. 넷째, 보수 재건과 개혁을 추진할 당의 지도체제 문제를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

통합당이 4월 28일 전국위원회를 열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의결했다. 그러나 비대위 출범 여부가 불투명하다. 전국위에 앞서 개최된 상임전국위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돼 비대위원장의 임기가 8월까지로 제한되자 내년 3월까지 임기를 보장받기 원했던 김 비대위원장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통합당은 구심점이 없는 백가쟁명(百家爭鳴) 상태다. 따라서 비대위 체제와 조기 전당대회 사이에 갑론을박(甲論乙駁) 논란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비대위 출범이 보수재건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김종인 비대위’는 이미 상처받은 리더십이 되었다. 이제는 통합당이 김종인의 ‘밀당정치’에 끌려가서는 안 되며 스스로 자력갱생(自力更生)의 길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새로 선출되는 원내대표가 전권을 가지고 조기 전당대회를 준비해야 한다. 보수 재건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지금 국민들은 미래통합당이 젊은 보수를 기치로 품격 있고 신뢰받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인지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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