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효성·샘표·세중 오너가 값싸게 주식 증여...세금 절감 때문(?)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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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기업들은 항상 분주하다. 경제가 좋아도 나빠도 바쁘다. 경제가 좋을때는 사업영역을 넓히기에 혈안이다. 경제가 안 좋을때는 내부 결집에 나선다. 이런 가운데 일부 기업은 가족 챙기기에 급급하다. 후계구도를 염두한 기업일수록 이런 현상은 뚜렷하다.

 
 하락장 지분 증여, 책임경영 일환 vs 증여의 기회로 삼아
 자사주 매입 오너 3·4세 위주로 진행되는 기업들 주목

코로나19여파가 여전하다. 2달이 넘도록 한국경제를 옥죄고 있다. 산업계도 힘들다며 아우성이다. 이런 가운데 주가 급락 속 그룹 오너가가 자사주 대량 매수에 나서 눈길을 끈다. 주주들에게 주가 방어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주가가 쌀 때 지배력 확대를 노리는 측면도 있다. 또한 기업 오너들은 주가 하락을 지분 확대나 증여의 기회로 삼기도 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주식 증여에 따른 승계비용이 크기 때문에 오너가 입장에서 주가가 저점일 때 주식을 매입하게 되면 향후 승계에 있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지분을 늘릴 수 있다”며 "최근 벌어지는 자사주매입이 단순한 책임경영의 일환으로 풀이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폭락장을 활용한 '주식 금수저'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자녀에게 주식을 증여하거나 현금을 증여해 주식을 매수하도록 하는 상장사 오너가 늘고 있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코스피지수가 1400선까지 떨어진 지난달 19일부터 이날까지 총 27개(코스피 11개ㆍ코스닥 16개) 상장사의 대주주가 지분 증여 작업을 마무리했다. 특히 경영권 승계를 계획하고 있는 다수 기업들이 이번 하락장에서 지분 증여에 나섰다.

샘표그룹은 지난3월 30일 4세 경영자인 박용학 상무의 두 자녀는 샘표 주식 1만195주를 장내 매수했다. 박 상무가 자녀에게 현금을 증여하고, 자녀들이 이 현금으로 주식을 샀다. 샘표는 3월 한 달간 13.20% 떨어졌다. 25일에는 양성아 조광페인트 대표의 조카인 홍모군(14)과 홍모양(12)이 각각 9603주, 9265주를 장내 매수했다. 조광페인트 주가는 3월 들어 25일까지 24.18% 빠졌다. 현재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판단에 현금을 증여해 주식을 사도록 한 사례들이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조현상 사장의 자녀들은 같은 날 ㈜효성 보통주 6100주를 장내 매수했다. 조 회장의 장녀 조인영씨와 차녀 조인서씨가 각각 1310주를, 장남 조재현씨가 870주를 매입했다. 조 사장의 자녀 조인희·조수인·조재하씨도 각각 870주씩을 사들였다. 30일 종가 기준으로 총 3억6600만원 규모다.

조 회장과 조 사장의 자녀들은 모두 미성년자다. 가장 연장자인 조인영씨가 17세이고 가장 어린 조재하씨는 4세다. 지난해 말 기준 이들의 보유주식 수는 총 8만4786주다. 지난해 ㈜효성이 주당 5000원을 배당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총 4억2393만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경우 지난해 말 두 자녀에게 증여한 주식을 취소한 뒤 재증여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 회장이 두 자녀에게 증여한 주식 가액은 최초 증여 시점인 지난해 12월 9일 기준 주당 6만5400원으로, 한 사람당 602억원씩 총 1204억원 규모였다.
이 경우 증여세는 증여일 전후 2개월간 평균 주가에 최대 주주 지분 증여에 따른 20% 할증을 포함하면 총 700억원이 넘는다.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도 지난달 12일 두 아들에게 동서 주식 15만주, 10만주씩을 각각 증여했다. 이에 두 아들의 지분율은 각각 2.37%, 2.13%로 상승했다.
천신일 세중 회장은 천세전 세중 대표이사에게 58만826주(3.21%), 천호전 부사장에게 105만8248주(5.84%)를 각각 증여하면서 최대주주가 변경됐다고 밝혔다. 대주전자재료 역시 임무현 회장이 46만주(3.13%)를 특수관계인에게 증여하면서 최대주주가 임중규 전무로 변경됐다.

 
승계를 위한 사전작업의 일환 
 
업계는 최근 기업 오너들의 잇따른 증여 움직임에 대해 절세 효과를 노린 선택으로 보고 있다. 상장 주식을 상속하거나 증여할 때 나오는 세금은 증여일 앞·뒤 2개월간 종가의 평균을 기준으로 삼는다. 금액이 높거나 최대 주주의 지분을 증여할 경우 할증액이 있긴 하지만 주식의 평균가가 낮을수록 세금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한동안 주식을 증여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 기업 주가가 3월 이후 폭락했던 만큼, 5월 초까지 자녀들에게 주식을 증여할 최적의 시점을 잡기 위해 고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증권 관계자는 "오너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자사주 매입 러시는 책임경영·주가부양 목적 외에도 지배구조 강화에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적기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대부분의 자사주 매입이 오너3·4세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이는 승계를 위한 사전작업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주가 하락 시 지분을 매입해 지분률을 끌어올릴 경우 승계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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