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얘, 꼭 요정의 집에 온 것 같다. 신혼 살림방을 요렇게 아기자기하게 꾸미다니!”

30평이 넘는 신혼 아파트에 초대된 나경자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겉으로는 감탄과 선망의 공치사를 했지만, 속에서는 질투와 시기의 마음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짝같이 친한 여고 동창생인 조민아.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고 그들 둘은 치열한 경쟁 의식을 가진 적수였다.

나경자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을 남편으로 맞아 아이까지 하나 두었다. 학창 시절의 유별난 꿈들은 모두 환상처럼 사라지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충격적인 일이 생긴 것은 바로 조민아의 결혼이었다.

이것은 나경자에게 너무나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삭이지 못해 팔짝팔짝 뛸 지경인데 떡하니 자기 신혼집에 초대까지 한 것이었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고급스럽게 보이는 가구며 카펫이 나경자를 숨 막히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연신 감탄하는 척하며 축하한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있었다.

그녀는 거실과 부엌을 돌아본 뒤 안방으로 들어갔다. 외국제로 보이는 경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처음 본 듯한 조그만 오디오 세트, 그 위에 걸린 인상파 부류의 유화, 조그만 책꽂이와 금박된 외국어 서적들, 이런 것들이 품위 있어 보였다.

“얘, 민아야, 이 경대 참 좋다.”
나경자는 경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응, 시삼촌이 선물로 준 거야. 그인 우리 회사 유럽 지사장이거든.”
나경자는 ‘우리 회사’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조민아의 말이 아니꼽게 들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시집온 지 며칠 된다고….“
“얘, 깨소금 공장은 어딨니?”

나경자의 질문에 어리둥절하던 조민아는 곧 알아차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얜! 난 또 무슨 소리라고. 호호호. 침실은 이쪽이야.”
그녀가 안방 옆문을 열어 보였다.

그들은 커피와 과일 상을 가져다 놓고 찧고 까불며 한참을 보냈다. 조민아가 꺼내는 이야기는 모두 나경자를 견디기 어렵게 하는 것이었으나 그녀는 끝까지 내색하지 않았다.

“얘, 근데 패물은 안 보여주니?”
나경자가 궁금하게 여기던 이야기를 꺼냈다. “응, 여기 있어.”
조민아가 경대와는 반대쪽에 있는 조그만 금고를 가리켰다.
“별것 없어. 그래도 보고 싶으면….”

조민아가 버튼식 다이얼을 눌렀다. 그동안 나경자는 돌아앉아 경대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이거야 별것 아니지?”

조민아가 패물 상자를 열어 보였다.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 보통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건 몇 캐럿이니?”

나경자가 큼직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가리켰다. “응, 이건 좀 특별한 거야. 시어머니께서 가보로 간직하던 것인데….” 2캐럿 반이래. 나를 특별히 귀여워해서 주신 거야. 평생 잘 보관하라고 했어.“

나경자는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보석함은 다시 금고 속으로 들어가고 금고는 철커덕 소리를 내며 잠겼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에 생긴 것이다. 저녁 무렵, 한나절을 보낸 나경자가 일어서려고 할 때 또 다른 여고 동창생 박숙덕이 찾아왔다. 이름 때문에 쑥떡이란 별명을 가진 친구였다. 이 친구에게 다시 보여주기 위해 금고에서 패물 상자를 꺼냈을 때였다.

“아니, 이게 어찌 된 거야?‘”
조민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 소중한 다이아몬드 반지가 사라진 것이다. 조민아는 나경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나경자는 아무 말 없이 굳은 표정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넌 알지?”
조민아가 울음 섞인 말을 내뱉으며 나경자의 팔을 잡았다. 그 반지가 없어지면 조민아는 시집에서 견디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가 생사람 잡겠어!” 나경자도 지지 않았다. “조금 전 내가 과일 깎으러 갔을 때..."

그렇다. 한 5분쯤 나경자가 혼자 앉아 있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금고 속에 있는 것을 나경자가 어떻게 열고 꺼냈단 말인가?
결국, 세 사람은 꼼짝 않고 앉아 있으면서 경찰에 신고하고 마침내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말했다
“나경자 씨가 의심이 가는군요? 조민아 씨가 금고를 여는 동안 나경자 씨는 화장을 하는 체하면서 경대의 거울을 보고 있었지요. 거울 속에는 금고 다이얼 돌리는 것이 다 보입니다. 그 번호를 외워 두었다가 조민아 씨가 과일 깎으러 간 사이 반지를 꺼냈지요.”

그러나 나경자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저 금고에 내 지문이 묻었을 텐데 찾아보시지요. 난 장갑도 끼지 않았고, 휴지나 손수건 같은 걸 대고는 저 금고 다이얼을 돌릴 수 없어요. 그리고 내가 지문을 지웠다면 조민아의 지문도 저 금고에는 없을걸요.”

형사들은 보석함과 금고를 샅샅이 뒤져 지문을 떠보았으나 그녀의 말대로 조민아의 지문은 있어도 나경자의 지문은 없었다.
그러나 나경자의 핸드백 속에 있던 영양 크림 통 바닥에 숨겨둔 반지를 찾아냈다. 질투와 시기로 친구를 벼랑에 떨어뜨리려던 나경자는 되려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퀴즈, 그러면 나경자는 어떻게 금고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반지를 훔쳐냈을까요?

 

 

[답변-2단] 나경자가 경대 앞에 앉아 있었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그녀는 손톱이 아닌 손가락의 안쪽에 매니큐어를 발라 지문이 생기지 않도록 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