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보는 동안 수원은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간절해졌다.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아버지. 아버지가 사라진 해도 1978년, 장소도 파리였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미국에 있는 어머니였다.
“거기, 괜찮니?”

어머니가 대뜸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요?”
“북에서 핵미사일을 쏘았다며? 여기선 한국에서 전쟁 난다고 야단이다.”
“무슨 말씀이라고. 아무 문제 없어요. 오히려 미국 경제 때문에 교포들 굶지나 않을까 걱정인데요.”

“정말이니? 어쨌든 몸조심해라. 네가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나온 아이인데...”
어머니의 말끝에 물기가 서렸다.
“걱정 마세요.”
수원도 목이 메었다.

어머니의 말대로 수원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수원은 아버지가 실종되고 3년 후에 태어났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원은 상식을 뒤엎고 세상에 태어났다.

수원의 아버지 한용국은 1970년대 중반 한국 정보기관의 워싱턴 주재원으로 일했다. 원래는 외무부 소속이었지만 국방부로 파견된 뒤 다시 정보기관으로 소속을 옮겼다. 남편을 따라 외국 생활을 시작한 김윤실은 한국에서 영어 교사를 했던 터라 별다른 어려움 없이 현지에 적응했다.

한용국과 김윤실 부부는 금실이 좋았다. 단지 결혼한 지 10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1977년 겨울, 한용국에게 파리 전근 명령이 떨어졌다.

“여보, 이번엔 나 혼자 따로 가는 게 좋겠소. 당신은 당분간 여기 남아 있어요.”
윤실은 무슨 임무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이 정보원 아내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이번 임무가 중차대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도 알았다.

윤실이 남편의 소식을 들은 것은 이듬해인 1978년 5월이었다. 주미 대사관으로부터 한용국이 파리 출장 중 사망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지를 받았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각오는 했지만, 막상 일이 닥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사망 경위가 무엇인가 대사관에 문의했으나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윤실은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 파리로 날아갔다. 그러나 파리 대사관에서도 한용국의 사망 원인이나 과정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놀랍게도 거기서 근무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윤실은 서울로 돌아와 한용국이 소속돼 있던 정보기관을 찾아갔다. 그러나 기관에서는 한용국에 관한 기록 공개를 거부했다. 구체적인 소속과 업무 내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용국의 죽음은 업무 수행 중 순직으로 처리되었으며 그에 따른 절차가 있을 것이라는 답만 들을 수 있었다.

결국 김윤실은 남편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시신은 어디에 있는지 확인도 못한 채 답답한 가슴으로 30여 년을 홀로 살아왔다.
윤실은 미국으로 돌아가 언니가 있는 워싱턴으로 갔다. 그곳에서 언니 가족과 함께 살면서 교포 교회에 나가는 것으로 절망을 이겨냈다.

주위에서는 자꾸만 재혼을 권했다. 외로움에 마음이 움직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윤실은 모든 제의를 거절했다. 의문사를 한 남편이 언젠가 살아 돌아올 것만 같은 막연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왔다. 자신을 박정무라고 소개했다. 남편 한용국과 절친한 사이로 같은 부서에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고 했다.
김윤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박정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박정무 역시 한용국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대신 박정무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파리로 떠나기 전날 점심을 함께하면서 한용국이 비장하게 말했다.
“뭐가 말인가?”
“이번 임무가 워낙 중대한 것이라...”

한용국은 임무의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아내가 걱정이야. 자식도 없이 쓸쓸하니... 그래서 말인데, 실은 정자 은행에 내 정자를 보관해 두었어.”
“에이, 무슨 농담을...”

박정무는 한용국의 말을 농담으로 돌렸지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박정무가 다녀간 뒤 윤실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남편이 한 번도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해서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었다.

‘자신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정자 보관한 사실을 왜 나한테는 말하지 않았을까?’
‘위급 상황이 되면 알려 주려 했는데 짐작보다 죽음을 빨리 맞게 된 것 아니었을까?’

몇 달을 미몽 속에 헤매고 있을 때 박정무가 다시 찾아왔다.
“제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주십시오.”
박정무가 윤실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한 형의 마음을 알아주실 수는 없는지요?”
“무슨 말씀이신지?”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으신가 해서요.”
그제야 윤실은 박정무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보관시킨 정자로 아이를 갖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가능할까요?”

윤실이 망설이다가 되물었다.
“현재 인공 수정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가능한 일일 겁니다.”
“보관하고 3년이나 지났는데도요?”

“몇십 년이 지나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실은 제가 미리 좀 알아보았습니다. 섭씨 5도 정도에서는 몇 달밖에 못 버티지만, 마이너스 960도로 냉동 보관하면 몇십 년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제 나이가 벌써 마흔인데요.”
“미국의 블레이크라는 심리학자도 마흔 살에 수정을 받았는데, 세 번 만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계속]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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