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도래되도 여전히 구제 받을 이익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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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원에서 노동 판결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근로자에 대한 보호를 조금 더 두텁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상여금의 통상임금 인정 사례나 프리랜서의 근로자성 인정 사례, 회식 후 무단횡단 중 사고에 대한 산재 인정 사례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번 주에 소개해 드릴 화제의 노동 판결은 해고된 근로자가 부당해고를 다투던 중 정년이 도래됐더라도 여전히 구제를 받을 이익이 있다고 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제28조제1항에 따라서 회사(사용자)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한 경우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회사가 근로자에 대하여 부당한 해고를 했다면 노동위원회는 회사에 근로자를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근로자가 부당해고를 다투던 중 사직을 하거나 정년에 도달하거나 근로계약기간이 만료하는 등의 사유로 근로관계가 종료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종전의 대법원 판례나 노동위원회 판정에서는 “근로자가 구제명령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보아 원직에 복직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해고기간 중에 지급받지 못한 임금을 지급받기 위한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민사소송 절차를 통하여 해결할 수 있으므로 소의 이익(또는 구제신청의 이익)이 없다.”라고 판단하여 대부분 사건에 대하여 각하 결정을 했다. 

쉽게 말하면, 회사가 의도적으로 계약기간이나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근로자를 부당하게 해고하더라도, 근로계약기간이나 정년이 지나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더라도 근로자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여 억울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민사소송을 통해 해고기간동안의 임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소송을 진행한다는 것은 경제적, 정신적, 시간적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대부분 근로자는 억울하지만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최근 변경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사건 2019두52386, 2020.02.20. 선고)에서는 종전의 판례를 변경하게 됐는데, 부당해고 구제명령제도에 관한 근로기준법의 규정 내용과 목적 및 취지, 임금상당액 구제명령의 의의와 법적 효력 등을 고려하면, 근로자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여 해고의 효력을 다투던 중 정년 도래 등으로 원직복직이 불가능한 경우라도 해고기간 중의 임금 상당액을 지급받을 필요가 있다면 임금 상당액 지급의 구제명령을 받을 이익이 유지된다고 보아 이를 다툴 소의 이익이 있다고 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부당해고를 당한 근로자가 부당해고를 다투던 중 정년 도래 등으로 근로관계가 종료되더라도 구제신청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 판정을 받지 않고 임금 상당액을 지급해달라는 취지로 계속해서 다툴 수 있다는 근거가 생기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판례 입장 변경 이유

대법원에서 이와 같이 판례의 입장을 변경한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상 “부당해고 구제명령제도”(제28조 및 제30조)는 부당한 해고를 당한 근로자에 대한 원상회복, 즉 근로자가 부당해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누릴 수 있는 법적 지위와 이익의 회복을 위하여 도입된 제도로서, 근로자 지위의 회복만이 그 목적이 아니며, 해고를 당한 근로자가 원직에 복직하는 것이 불가능하더라도 부당한 해고라는 사실을 확인하여 해고기간 중의 임금 상당액을 지급받도록 하는 것도 부당해고 구제명령제도의 목적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둘째, 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가 성립한다고 인정되면 부당해고임을 확인하고 근로자를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근로했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구제명령을 할 수 있는데, 이는 부당해고를 당한 근로자를 원직에 복직하도록 하는 것과 해고기간 중의 임금 상당액을 지급받도록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한 구제방법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근로자에 대한 원직복직 조치는 장래의 근로관계에 대한 조치인 반면, 해고기간 임금상당액 지급 조치는 근로자가 부당해고의 효력을 다투고 있는 기간 중의 근로관계의 불확실성에 따른 법률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서로 목적과 효과가 다르고, 원직복직이 가능한 근로자에게만 임금상당액을 지급할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셋째,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은 사용자에게 이를 따라야 할 공법상 의무를 부담시킬 뿐 직접적으로 노사간의 사법상 법률관계를 발생ㆍ변경시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제명령이 내려지면 사용자를 이를 이행할 공법상 의무를 부담하고, 만일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근로기준법 제33조에 따른 이행강제금 부과대상이 되고, 확정된 구제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형사처벌이 되는 등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은 간접적인 강제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가 구제명령을 통해 법적으로 유효한 권리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해고기간 동안 지급받지 못했던 임금과 관련하여 강제력 있는 구제명령을 얻을 이익이 있다는 점을 법원은 인정한 것이다. 

넷째, 행정적 구제절차인 부당해고 구제명령 제도는 민사소송을 통한 통상적인 권리 구제방법에 따른 소송절차의 번잡성, 과다한 비용부담 등의 폐해를 지양하고 신속ㆍ간이하며 경제적인 권리구제를 꾀하는 것에 제도의 취지가 있다는 점에서 해고기간 중 임금상당액을 지급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구제신청의 이익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근로자가 해고기간 중 받지 못한 임금을 지급받기 위해 민사소송 제기는 가능하지만, 이보다 신속하고 간편한 방식으로 부당해고를 확인받고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상당액의 손실을 회복하는 것이 부당해고 구제명령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존 판례의 입장은 금품지급명령을 도입한 근로기준법 개정 취지에 맞지 않고, 기간제 근로자의 실효적이고 직접적인 권리구제를 사실상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변경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2007년 근로기준법(제30조 제3항) 개정에 따라 근로자의 권리구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부당해고의 구제방식을 다양화했고, 부당해고를 당한 근로자가 원직복직을 원하지 않을 경우 원직복직 대신 해고기간 동안 근로를 제공했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상당액 이상의 금품을 지급하도록 명할 수 있게 됐고, 이러한 점에서 계약기간 만료 등으로 원직복직이 불가능하더라도 근로자가 구제받을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부당해고 구제신청 기간 중 근로계약이 종료되는 경우가 많고, 기존 판례의 입장으로는 기간제 근로자의 구제가 어려워 기간제 근로자의 권리구제에 실질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해고기간 중 임금상당액을 지급받도록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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