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그 끝없는 하락…산유국도 부도 위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에 따른 국제 유가 급락의 파장이 국내 정유사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전망이다. [OPEC]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에 따른 국제 유가 급락의 파장이 국내 정유사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전망이다. [OPEC]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에 따른 국제 유가 급락의 파장이 국내 정유사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상최대의 손실 규모를 보이고 있다. 에쓰오일(S-oil)은 마이너스 1조원이라는 사상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현대 오일뱅크도 5600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GS칼텍스와 SK이노베이션의 정유 부문 실적도 사상 최악의 적자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산유국들의 해외 투자비용 이른바 ‘오일머니’를 회수가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글로벌 금융시장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다. 

 

산유국, 해외 투자금 회수 나설까…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원유가격 및 제품 가격 동시 추락…정유사 정제 마진 ‘악화’

 

지난 3월 24일 1분기가 끝나갈 무렵, 현대오일뱅크가 코로나19 확산의 선제적 대응이라는 명목으로 임원 급여 반납과 함께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강달호 사장과 전 임원의 급여 20% 반납 및 경비예산을 최대 70% 삭감하고 비용 전면 축소에 나섰다. 

이미 국내 정유 업계는 글로벌 경기 위축 등으로 정제마진이 악화된 지난해부터 비용 절감과 수익개선 방안을 강구해오고 있었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제품 수요는 줄고 원유가격하락과 제품가격 동시 추락에 따른 정제 마진 악화가 또 겹치면서 재고 관련 손실까지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가 급락으로 완성차 시장도 손을 놓게 되면서 SK이노베이션의 정유 사업도 타격이 클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실적이 창사 이래 최악의 영업 손실 규모를 기록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에쓰오일의 올 1분기 정유부문 영업적자는 1조1900억 원에 이르면서 영업이익률 -30%를 기록했다. 재고 관련 손실과 함께 제품별 마진도 최악의 상황이다. 항공유와 가솔린 등 운송용 제품 중심의 마진 급락과 수요 부진이 결국 재고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국내 정유 4대 기업의 올해 1분기 손실액이 사상최대 금액인 3조 원에서 4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앞서 정부가 총 1조3745억 원 규모의 유류세 납부를 유예하기로 결정하고 나섰지만 정유사들의 손실분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국제선 중단 항공유 매출 ‘뚝’ 재고유지 관리비 최대치

특히 지난 2월말 전 세계 180여개 국가가 한국인의 입국금지 또는 한국 여행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국제선들이 날개를 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항공유 매출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전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3월부터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국내 항공사들이 국제선을 아예 띄우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항공유 소비량은 200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각 정유사들의 항공유 재고량 역시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을 보이며 저장고가 포화상태에 이르게 돼 재고유지 관리비마저 최대로 올랐다. 

글로벌 시장의 상황은 더 나쁘다. OPEC(석유수출국기구)과 OPEC+(10개 비OPEC 산유국) 등 산유국들의 석유 공급과잉이 지속되면서,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의 5월 인도분 가격은 배럴당 –37.6달러라는 웃지 못 할 상황까지 발생됐다. 

원유 구매자에게 웃돈을 얹어주며 가져가라는 입장이 된 셈이다. 6월 인도분은 10~16.94달러로 마감하며 안정세를 되찾았지만, 지난 1월 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 이전 석유가격의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한국시간 5월1일 기준으로 WTI는 배럴당 18.84달러, 브렌트유(Brent)는 25.27달러를 나타냈고, 두바이유는 배럴당 23.65달러를 기록했다.

문제는 또 있다. JP모건은 “올 상반기 중동계 국부펀드가 2250억 달러(약 274조 원) 규모의 오일머니 회수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IMF도 “유가 악화가 지속되면 산유국들이 해외 투자금 청산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산유국 ‘오일머니’ 회수, 글로벌 채권시장 불안

그간 자본이 넘쳐났던 산유국들이 미국, 독일 등 선진국들의 국채 등으로 투자했던 비용을 국제 유가 악화에 따라 이를 회수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의 국채를 기준으로 산유국의 국채 보유 수준은 약 8700억 달러(약 1000조 원)에 이른다. 이 외 국가에 투입한 금액까지 하면 어마어마한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미 노르웨이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670억 크로네(약 8조 원)를 인출했고, 추가적인 보유 채권 매각을 예정하고 있다.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들도 글로벌 경기 위기 타개를 위해 지난해부터 자산 매각을 통해 한화로 약 6조 원의 자금을 회수했다. 이란도 코로나19의 대규모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10억 유로(약 1.3조 원)를 인출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글로벌 채권시장 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BNP파리바는 지난달 산유국과 G20의 감산 합의로 올해 중동 주요 산유국의 원유 등 수출비용이 1694억 달러(약 206.5조 원) 감소하며 대규모 재정 적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위기 상황에 따른 산유국들의 여파가 국내 정유 업계 등으로 미칠 영향은 당분간 지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당장은 2분기가 걱정이지만, 이 상황이 올해 말까지 이어지기라도 한다면 심각한 손실과 함께 정유사들이 버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전문가들도 한목소리로 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으로 항공유 등 국내 석유제품 수요 부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비록 국내에서의 감염 확산이 감소하더라도 당장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저유가 상황을 얼마나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가에 따라 시장이 얼마나 빠른 회복세로 돌아설지가 달렸다는 관측이다. 

다만 글로벌 유가하락을 잡기 위해 추가적인 감산합의 즉, 공급 조절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산유국들의 입장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당장 자본금 마련이 절실해 감산 동참과 감산 규모 확대에 얼마나 동의할지는 알 수 없다. 감산에 합의하면서 뒤에서 ‘오일머니’ 회수에 나선다면 이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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