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규 대표
박동규 대표

최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원인 미상의 잠행’이 길어지면서 국내외에서는 다양한 정보, 첩보에 근거를 둔 분석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얼마 전 미국 CNN방송의 ‘김정은 중태설’에서 촉발된 이른바 김정은 ‘신변 이상설’은 급기야 ‘사망’이라는 가짜뉴스까지 버젓이 나돌아 다니게 만들고 있다. 이들 신변 이상설의 주된 형태는 대부분 건강과 관련된 ‘설(設)’ 들이다. ‘가벼운 와병설’에서부터 ‘뇌사설’과 신종 코로나 감염 또는 ‘대피설’에 이어 ‘의식불명의 코마상태 설’ 등등이다.

매일같이 북한 전문가에서부터 각종 정보통에 이르기까지 제기하고 있는 설들을 보고 있노라면 ‘맹인모상’이란 말이 떠 오른다. 불교 경전에서 비롯된 이 말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나서 내놓는 다양한 의견을 빗대어 각자 전체적인 맥락보다 부분적인 사안에 매몰되는 우려를 일컫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 ‘잠행’을 둘러싼 ‘맹인모상’식 각종 설들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잠행이 거의 20일에 달하고 있고, 여기에는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조차도 명확한 팩트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더욱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북한사회에서는 여전히 북한 최고 지도자와 관련된 일정, 행보, 신변 등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이상 극도의 보안과 비밀에 부쳐져 있기에 과거에도 이러한 ‘맹인모상’식 설들은 결국 ‘한여름 밤의 소동’으로 끝난 사례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신변이상설'을 둘러싼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 정부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특이사항 없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왜 잠행 중인가’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 잠행의 배경과 의도가 현재로선 불분명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상당하지 않기에 더욱더 의문이 증폭되는 것이다.

우리를 위시하여 전 세계가 코로나와의 전쟁 수행 중에도 김정은 위원장은 수차례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이어 장사정포 사격, 폭격훈련 등 긴장을 고조시키는 무력시위를 이어 왔지만, 한.미 간 대북 경계태세는 지금까지도 ‘평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외신들도 북한주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북한 역시 김정은의 실물은 보도 않고 있지만, 대내외 적 일상 업무 공개는 하고 있는 등 ‘특이점’은 없게 보이려 애쓰는 듯하다.

특히나 지금은 북핵협상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과 대결 시점도 아니고, 문재인 대통령은 오히려 코로나를 계기로 남북 협력 강화의 필요성과 남북철도 연결 등의 대북사업 박차를 천명하고 있기도 하다. 향후 김정은 위원장의 ‘중대 이상설’이 일정 부분 팩트로 밝혀지면 사실 정부와 대통령은 엄청난 리스크를 안게 됨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강화를 추진한다기에 더욱 그러하다.

결국, 적어도 김정은 위원장의 잠행은 현 상황에서 도발적인 정치, 군사적 행보나 의도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시기나 명분도 취약하다는 상황분석에 무게가 더 실리는 지점이다. 이제 20일 정도의 잠행이지만, 2014년엔 40일간 비공개 잠행 이후에 인천 아시안게임 마지막 날 전격적으로 북한 최고위급 인사를 방남 시켰고, 김위원장도 얼굴을 나타냈다. 과거에도 20여 일 이상 잠행기록은 여러 차례 있기도 하다.

북한체제에서 최고지도자의 신비주의, 비밀주의 통치 스타일은 그들의 ‘중요한 정치행태’이다. 취약점을 가리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북한에 대한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들의 의도와 목적을 증폭시킬 때 종종 활용된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잠행에서 좀 더 명확한 것은 그의 ‘신변 이상’ 이든 코로나로 힘든 ‘북한상황’ 이든, ‘취약점’을 최소화하고 감추려는 의도가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또다시 그가 보란 듯이 등장하여 여전히 자신들의 ‘체제 보안성’을 대내외에 자랑거리로 내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우리끼리 내부에서 ‘맹인모상’식 김정은 ‘중대 신변이상설’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볼썽사납기만 해 보인다. 보다 차분하게 정밀한 ‘정보 분석’과 조용한 ‘대비 태세’ 유지에 더 신경 써야 할 시점인 것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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