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의석수 내기를 한 적이 있다. 친한 동기들이 모인 단톡방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금은 국회를 떠나 기업에 적을 둔 한 친구만 여소야대를 전망했다. 민주당 115석. 지역구만. 나머지 사람들은 다들 민주당이 135석 이상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비례를 포함하면 어째든 과반수는 차지할 것으로 봤다. 여소야대를 전망한 이 친구는 주변의 강권에 못 이겨 양 손목을 걸기까지 했다. 물론 선거가 끝나고 이 친구의 손목이 잘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워낙에 크게 이겨 놓으니 다들 누가 맞혔다고 나서기가 옹색한 입장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선거를 객관적으로 전망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거 기간 내내 여론조사가 이뤄지지만 정치권에서 밥 먹는 사람들 중에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선거 기간 내내 각 당의 가장 큰 공적은 여론조사 업체들이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일단 반발하고 부정하고 심지어 고발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나마 이번 선거에서는 방송사들의 출구조사 결과가 실제 결과와 근사치로 접근해 욕을 안 먹게 되었다. 근사치라는 게 KBS의 경우처럼 민주당이 155석~178석으로 20여 석의 편차가 있긴 하지만.

이번 선거결과로 한국사회의 주류가 교체되었다는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을 탈환하고, 지방선거에서 지방권력을 통째로 바꾸더니 총선을 통해 압도적인 국회를 구성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정치에서 4번의 전국선거를 연달아 이긴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2016년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4차례의 선거에서 이기면서 한국사회의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대통령부터 시·군·구 지방자치의회까지 장악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두고 한국사회 주류 교체라고 까지 해석하는 것은 섣부르다.

당장 대통령부터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과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전방위 압박을 하고 나서야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겨우 관철할 수 있었다.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대통령의 지시에도 국무총리의 설득에도 집권여당의 애걸에도 오불관언이었다. 기획재정부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아들인 것은 대통령과 집권여당 때문이 아니라 그들 뒤에 국민 여론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아직 경제 정책의 운용과 국가 재정 운용에 있어서는 주류의 길은 멀고도 멀다.

민주당이 판치는 듯한 착시의 세상에서 기획재정부 관료들만 아직 주류를 꿰차고 있는 건 아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법무부 외청의 장에 불과한데도 대통령 못지않은 권세를 자랑한다. 경기 이천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뜬금없이 윤석열 검찰총장이 실시간 보고를 받고 있다는 기사가 전 언론을 도배했다. 기사에 따르면 윤석열 총장은 대통령, 행정안전부장관, 경찰청장, 소방청장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윤석열 검찰이 이런 보도자료를 내고 언론이 무분별하게 기사를 발신하는 한 검찰은 아직 한국사회의 주류의 위치가 공고하다고 할 것이다.

칼 포퍼는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전체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한다. 칼 포퍼는 전체주의에 맞서 개인주의, 열린사회를 옹호하며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차적인 개혁, 부분적인 개혁을 말한다. 칼 포퍼의 말대로라면 70~80년대 혁명의 시기를 지나 온 한국사회는 방법을 바꿔 선거를 통한 점진적인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성공 여부는 더 많은 고비를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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