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가능한 200석에 근접한 범(凡)진보 여권, ‘4년 중임제’로 군불 때기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문재인 정부에서 결국 또다시 개헌(改憲)론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그 위성정당은 이번 총선에서 개헌 가능선인 200석에 조금 못 미치는 180석을 확보하면서 이해찬 당대표의 만류에도 개헌론에 군불을 때고 있다. 앞서 이 대표는 최근 “개헌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금 중요한 것은 국난 타개”라고 말했다. 이는 곧 그가 말한 국난이 잦아들면 개헌을 시도하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벌써 두 번째 개헌 논의가 되는 셈이다. 초기 문 대통령안은 ‘4년 대통령 연임제’였다. 당초 ‘분권과 협치’가 핵심 쟁점이었는데, 장기집권 포석이라는 비판을 받는 ‘대통령 중임제’가 부상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송영길 의원 및 참석자들이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8.11.01. [뉴시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송영길 의원 및 참석자들이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8.11.01. [뉴시스]

 

- 핵심은 ‘분권(分權)’인데 실종…개헌 취지 ‘무색’

요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면이 서질 않는다. 총선 직후인 지난 20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이 대표는 “개헌 등의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난 등 비상사태 타개”라고 힘주어 말했다. ‘당대표 발(發) 개헌론 금지령’이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여권 곳곳에서 개헌론 요구가 터져 나왔다. 당내 중진 송영길 의원은 지난달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꾸고 책임총리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이번 개헌 논의가 꼭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서울 강동을의 이해식 당선인도 이날 “개헌에 적극 나설 생각”이라고 밝혔고, 이틀 후 서울 양천을의 이용선 당선인까지 ‘토지공개념’을 거론하며 “개헌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출신의 정세균 국무총리도 “개헌은 앞으로 1년이 골든타임”이라고 힘을 보탰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과 그 위성정당이 무려 180석을 석권했고, 범(凡) 진보 인사들까지 규합하면 거의 190석에 가깝다.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을 할 수 있는 200석에서 근접한 수치다. 여당 인사들이 개헌을 넘보는 것도 충분히 무리는 아닐 터다.

문재인 청와대는 이미 한 차례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하되, 연이어 선출되는 경우에만 한 번 중임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은 개헌안을 냈다가 꼬리를 내린 바 있다. 그런 문 대통령이 올해 1월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은 국회 몫”이라고 언급했는데, 총선에서 압승한 여당의 송 의원이 문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대통령 중임제로 바꾸자”라며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당대표가 언급했던 ‘20년 장기집권론’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한편 당시 청와대 개헌안에는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는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3명)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런데 당초 개헌 논의의 시작은 ‘분권과 협치’였다.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분산시키고 적절한 경제를 통해 정치 발전을 이룩하겠다는 취지가 부각됐지만, 지금은 중구난방(衆口難防)이 됐다. 그래서 개헌론에 대해 알아보고자 헌법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봤다.
 

개헌특위.[뉴시스]
개헌특위.[뉴시스]

 

개헌의 핵심은 ‘분권과 협치’인데…

일요서울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장영수(60) 교수를 찾았다. 장 교수는 이날 일요서울과 만나 “2018년 3월 발의된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분권과 협치’를 실현하는 개헌안이라고 자평했는데 그것은 분권형 개헌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바로 “대통령이 대법원장 및 대법관 등에 대한 임명권을 끝내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분권형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권한을 축소 및 분산시키는 것으로, 삼권분립을 초월하는 대통령의 권한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2017년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가 구성됐다.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 이후 30년 만에 구성된 특위였으나, 성과 없이 흐지부지됐다. 개헌특위가 구성된 것은 바로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 때였다. 당시 개헌특위는 ‘권력 분권과 협치’라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으나, 청와대 개헌안에서 ‘권력 분권과 협치’는 실종된 양상을 보였다. 견제의 기본 원리인 삼권 분립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사법부의 대법원장 임명권 등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등도 제한되지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 임기 및 선수 변화까지도 담고 있어 ‘분권’이라는 본질에서 이탈한 것 아니냐는 혹평까지 있었다. 결국 그동안 문제의 근원으로 지적받던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지 못하게 됐다.

그렇다면 ‘분권과 협치’를 논하기에 앞서 ‘개헌’이란 무엇일까. 장 교수는 이를 “헌법의 ‘기본적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일부 헌법 조항을 수정’해 헌법의 형식 혹은 내용에 변경을 가져오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그가 언급한 ‘기본적 동일성의 유지’는 헌법의 기본이념과 원리, 핵심제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규정된 절차’는 헌법 변천을 비롯해 여러 유형의 헌법 변동과 구별되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헌법의 일부 조항 수정’은 헌법 개정의 가능 양태를 뜻하며, ‘헌법의 형식 혹은 내용에 변경을 가져오는 행위’는 헌법 조문의 순서만을 바꾸는 행위 또한 헌법 개정에 해당될 뿐 아니라 그 절차도 헌법에 의거한다.

‘개헌’의 과정도 알아봤다. 개헌은 형식적으로 부분 개정과 전면 개정이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의회의 의결을 통한 개정과 국민투표에 의한 개정이 가능하다. 우선 의회 의결일 경우 일반 법률과 같이 의회에서 단순 다수결로 처리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 손쉽게 개정이 가능하나,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반면 후자의 경우 일반 법률과 달리 엄격하게 규정돼 있는 데다 대부분 3분의 2가량의 의원수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헌법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현재 국회 의석수 3분의 2에 준하는 민주당계 정당을 고려할 때, 의회 의결만으로 헌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 문제가 제기될 공산이 있다. 국민 투표에 의한 개헌은 투표에 앞서 의회 중심으로 개정안의 발의와 심의 혹은 의결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종 정치적 선동으로 자칫하다간 독재의 정당화를 위해 악용될 수도 있다. 게다가 개헌 투표가 단순히 찬반 결정에 그치게 되는데, 국민적 의사가 정확히 반영됐는지도 확실치 않다는 단점이 있다.

헌법 개정안은 헌법 제128조1항에 따라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혹은 대통령에 의해 제안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헌법 개정의 발의권이 주어진 것은 지나친 권한의 집중으로 비춰질 소지가 다분하다. 바로 ‘권력 분립’의 영역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헌법 개정안 발의 시 대통령이 20일 이상의 기간에 공고해야 한다. 이후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물론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범(凡) 여권은 이 같은 조건에 거의 근접한 상태다. 이 당대표가 개헌 논의 함구령을 내렸지만, 이미 개헌 가능 조건에 도달한 상황에서 여권의 중진급 의원들은 ‘4년 중임제’ 등을 이미 언급했다. 개헌 가능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에 설사 이를 주도해도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헌론의 핵심 사항은 무엇이 더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뉴시스]

 

‘분권’…대통령제 대안은 의원내각제?

청와대가 주도한 지난 2018년 개헌론은 10년 전에도 물밑에서 논의됐으나, 당시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정권 연장’이라는 비난에 시달려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지난 2007년 1월, 그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하는 것에 이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추는 원포인트 개헌안’을 전격 제안한 바 있다. 그가 제안한 ‘4년 연임제’의 이유는 ‘국정 안정성과 일관성’ 때문이었으나, 법조계에서는 “이론적 근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하고 중임을 금지한 것은 중임 여부나 3선 개헌 시도를 둘러싼 정국의 혼란을 초래하였던 우리 헌정사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일요서울은 당시 개헌 논의에 대한변호사협회 대표로 추천·참여했던 이헌(59) 대한법률구조공단 전 이사장을 통해 개헌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이 전 이사장 또한 삼권 분립을 해칠 공산이 있는 대법원장·헌법재판관 임명권 등을 비롯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비대한 권한’을 두고 ‘분권과 협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이사장이 언급한 ‘분권’을 언급하기에 앞서 권력의 속성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통치권’으로 통용되는 국가 권력은 오래전부터 ‘강력할수록 부패·타락의 경향이 심각하며, 오·남용의 위험성’ 또한 제거될 수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 권력의 제한적 집중을 통한 효율성 강화가 필요하더라도 오·남용의 위험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개헌특위 구성 때에도 ‘분권과 협치’가 주요 화제로 오른 것이다. 

이 전 이사장에 따르면 ‘분권’을 위해 현행 헌법에서 여러 가지로 규정된다고 설명했다. 헌법 제54조에 따르면 정부가 예산 편성권을 갖고 국회가 예산안 심의·의결권을 갖고, 헌법53조에서 언급된 입법권을 가진 국회,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또한 국회가 국무총리 등에 대해 국회 출석 및 답변을 할 수 있는 권리도 해당된다고 언급했다. 

이 전 이사장은 이날 일요서울과의 대화에서 “과거 2007년 개헌 논의 당시 분권 실현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던 중 의원내각제 등이 논의됐다”고 말했다. 바로 ‘정부 형태’에 관한 것이다. 정부 형태란, 특히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에 국가 권력을 나누는 형태’이며 ‘권력 분립의 구체적 형태’로 치환 가능하다. 이 전 이사장은 의원내각제에 대해 “국회가 직접 국정 운영의 주요 주체가 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 또한 의원내각에 대해 “각 기관의 독립에서 시작된 대통령제와는 달리 내적 상호 연관성을 갖는 체제”라며 “선거에 의해 부여된 정당성을 기초로 의회 내 다수파가 정권을 획득하는데, 그들이 내각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다수파와 정부가 필연적 연관성을 갖게 된다”고 전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타협과 조정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지난 50여 년간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하는 정부 형태를 유지해 왔다. 행정부의 내부 절차 등에 대해 외부에서 직접 간섭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통제를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카리스마나 정치적 지도력을 중심으로 한 이합집산이 있었고, ‘분권’이 핵심 화두가 됐던 것이다.

그런데 앞서 송영길 민주당 의원이 언급한 ‘4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개헌’이 논란의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의 소지가 되는 것은 바로 헌법 제128조2항(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이다. 이에 대해 ‘개헌을 주도하는 주체 세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바른사회운동연합 주최 '21대 국회,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에 참석해 격려사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04.24. [뉴시스]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바른사회운동연합 주최 '21대 국회,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에 참석해 격려사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04.24. [뉴시스]

 

“4년 중임 대통령제, 결국 여권의 독주”

이 전 이사장은 지난 2007년 개헌 논의 당시 “현행 헌법상 5년 단임 대통령 임기제는 과거 집권 장기화 시도에 따른 정치적 폐단을 예방하고 적법한 정권 교체의 전통을 확립하는데 기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장 교수 또한 헌법 제128조2항에 대해 “우리 헌법사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 동의했다. 다만, 문제는 ‘개헌을 둘러싼 정치세력의 의도’다.

앞서 이번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자신의 회고록인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누군가 대통령이 되면 그 세력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의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대통령의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라며 “이 순간 재임하고 있는 대통령도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편안하게 임기를 마칠 가능성이 극히 낮아 보인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대통령’과 ‘승자 독식 구조’는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헌법과 맞닿아 있다.

김 전 위원장의 개헌 필요성 강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그는 2016년 20대 국회가 시작됐을 때에도 대통령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문제가 많다”면서 “내각제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분권형’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번 5월 임시 국회에서 지난 3월 발의된 ‘국민개헌발안제’를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두고 오는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개헌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이 원내대표가 앞장서서 총대를 멨는데, 일각에서는 여권의 개헌안은 송 의원이 언급한 ‘4년 대통령 중임제’를 비롯해 토지공개념 강화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래통합당 중진 의원들은 이날 “21대 국회에서 개헌을 시도하려고 군불 피우는 것 아닌가 싶다”며 “국가가 비상상황인데 지금 개헌을 논할 시기냐”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대표 선출에 앞서 비대위조차 구성하지 못한 미래통합당 측에서는 원내지도부가 구성되는 21대 국회에 들어서 논의에 착수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짙은 안개가 11월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감싸고 있다. [뉴시스]
짙은 안개가 11월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감싸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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