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가짜학력’사건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은 신정아씨가 자신의 담당 변호사를 통해 학력위조 사실을 모두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씨 본인이 허위학력을 실질적으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신씨는 “결과적으로 학위를 속이게 된 것은 맞지만 나도 학위를 위조해주는 브로커에게 속았다”며 자신도 피해자임을 호소하고 있다. 따라서 신씨의 이같은 주장이 검찰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씨의 주장처럼 미국 현지에서 돈을 받고 명문대 학위를 내주는 ‘학위브로커’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 학위위조를 하는 것일까? 본지는 미국현지에서 학위브로커의 제의를 받았다는 한 유학생을 통해 현지 학위위조의 실태를 파헤쳐봤다.


국내 모 대학에서 영문학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친 A씨는 지난해 일리노이 주에 있는 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작년 이 맘 때쯤 이상한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어떤 경로를 통해 자신의 이메일 주소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1만 달러만 내면 시카고에 있는 유명 대학의 학위를 발급해준다’는 내용의 이메일이었다.

이메일에는 강의가 주로 동영상을 통해 이뤄지고 1년에 몇 번만 관광형식으로 학교를 둘러보면 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졸업식에도 참석할 수 있다는 것.

A씨는 “메일을 본 유학생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 돈을 내고 가짜로 학위를 수료하고 있으며 국내에 들어가서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의 말처럼 실제로 많은 미인가 대학들이 학생수를 늘리기 위해 브로커들과 손을 잡고 학위를 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브로커들 중에는 학교 내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학위장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브로커들이 내주는 가짜 학위를 받으려면 적게는 1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 만 달러까지 줘야 한다.

신씨의 경우처럼 유명 대학의 학위를 받아주는 현지인 브로커도 있다. 다만 이들이 내주는 학위는 미인가 대학과 같이 본교가 브로커에게 돈을 받고 직접 내주는 식이 아니라 브로커가 ‘동영상 강의’ 등으로 학점을 이수하는 것처럼 학생을 속인 후 가짜 학위 증명서를 발급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마치 진짜로 교과 과정을 이수하는 것처럼 4학기에 걸쳐 몇 학점을 이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졸업 시에는 졸업논문도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 총 6학기에 해당하는 시간이 걸린다. 물론 동영상강의, 졸업논문심사 등 전 과정이 모두 가짜다. 신씨의 경우처럼 온라인 강의를 하고 논문을 대필해 내서 학위를 받는 경우는 없다.

국내에서 미인가 대학이 발급한 학위나 유명대학의 가짜학위 등이 통용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내에 유사한 이름을 가진 대학이 여럿 있어 직접 확인을 하지 않는 한 모두 똑같은 대학이라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가령 국내에 잘 알려진 대학인 ‘버클리(Berkeley)’란 대학의 정식 학교명은 ‘University of California’이지만 유사한 이름으로 ‘University of Berkeley’라는 미인가 대학이 있어 이를 잘 모르는 국내에서는 이 대학의 가짜 학위를 내밀면 속아 넘어가기 쉽다는 것이다.

예일대나 UCLA 같은 유명대학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대학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상황들을 종합해본다면 신씨는 실제로 예일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것이 아니라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학위를 샀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씨가 진짜처럼 믿으며 내세웠던 학위가 가짜라는 치명적인 허점이 있었을 뿐이다. 신씨는 국내에서 진짜 예일대를 졸업한 것처럼 속여 많은 이익을 보게 됐지만 결과적으로 브로커들은 이러한 신씨를 속여 학위장사를 한 셈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속담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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