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劍)’ 휴대전화, ‘자제력 잃은 기강 해이’인가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경기도 가평군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병사들. [뉴시스]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경기도 가평군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병사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군 내 사건‧사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불법 도청, 성추행, 하극상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기존에 폭로되던 방식과는 다른 모양새다. 우발적인 형태의 보도들이 우후죽순 나오는 것. 시기는 ‘병사 휴대전화 허용’ 시점과 맞물린다. 이 때문에 병사 휴대전화 사용이 ‘양날의 검’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비밀처럼 유지돼 왔던 ‘군 내 악습’을 상시 제보해 뿌리 뽑을 수 있다는 측면과 ‘기강해이’, ‘기밀사항 유출’ 등의 우려가 공존하는 것이다. 일요서울은 병사 휴대전화 사용이 가져온 군 내 신 풍속도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 불법 도청, 성추행, 하극상 등 사례도 가지각색

- ‘4월 인사철 제보투서와는 다른 맥락

- ‘지엽우발적 보도늘어난 까닭은?병사들, 상시적 제보

- ‘보안 우려병사간부지휘관 모두 노력해야

군 내 사건사고 보도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경기도에 위치한 한 부대에 근무하는 A하사는 경북 영주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됐다. 사고를 냈던 운전자가 현장 수습 과정에서 “(A하사가) 술을 마신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A하사를 입건에 군에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간부도 최근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경기도 포천 인근 부대의 B대위는 지난달 19일 부대 밖 동료 숙소에서 술을 마신 뒤 대리운전을 불러 부대 앞까지 이동했다. 이후 직접 차량을 몰고 부대 안으로 향하던 중 교통 신호에 걸렸다가 잠이 들었다. 이를 목격한 시민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음주운전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과거부터 지적돼 왔던 폭행 및 성추행 사고도 잇따랐다. 부사관이 장교를 성추행하고 병사가 상관을 때리는 등 하극상이 벌어진 것이다.

경기도 육군 부대의 C상병은 부대 내 사격장 정비작업을 마무리하지 않을 것을 D대위가 지적하자 야전삽을 D대위에게 휘둘러 구속됐다. D대위는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기 탁구에서 졌다는 이유로 육군 부사관이 병사를 폭행하는 사건도 있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E상사는 병사 3명과 부대 내 탁구장에서 내기 탁구를 하다가 경기에서 지자, 다른 병사들을 내보낸 후 병사 1명의 멱살을 잡고 밀친 것으로 전해졌다.

육군 대령이 지휘관의 의중을 파악하겠다며 기밀 시설인 지휘통제실을 3개월간 도청하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다. 영관급 장교가 군사 시설 도청이라는 불법행위를 자행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남성 부사관이 남성 장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도 있다. 부사관 F씨 등 4명은 지난 3월29일 새벽 위관급 장교 G씨의 신체를 만진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술을 마시고 숙소를 찾아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사관학교 교수가 학생 장교들을 수차례 폭행한 사례도 수면 위로 올랐다. 공군사관학교 H교수는 최근 2~3년간 자신이 지도한 학생 장교들을 여러 차례 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군무원 신분인 H교수는 비행 실습 중 학생들의 조작이 미숙하다며 폭언과 폭행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육‧해‧공군

대(對)상관 범죄 급증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육군, 해군, 공군 할 것 없이 군 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모양새다. 비상식적인 사건도 많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군 내 사건‧사고가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대(對)상관 범죄가 2배 가까이 늘었다며, 지휘관의 지휘권을 보장하면서도 장병들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정 장관은 “지금 전체적으로 군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5년 전과 현재 시점을 비교하면 50% 정도로 줄었다”며 “다만 대상관 범죄와 관련된 잘못된 부분이 증가 추세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디지털 사회로 바뀌고 굉장히 빨리 변화하고 있다. 젊은 장병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고, 민주적이고 투명하고 지금은 모든 것이 드러난다”면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지휘 관리를 하면서, 일부 관행적인 행태가 드러나고 있어서 각고의 노력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어땠을까

정 장관이 ‘디지털 사회’라고 언급한 부분처럼 사건‧사고 보도들이 잇따른 시점은 ‘병사 휴대전화 허용’ 시기와 맞물린다.

군 내 사건‧사고와 관련, 겉보기에는 오합지졸 ‘당나라 군대’ 같을 수 있으나 이면이 있다. 4월은 장성급 인사철이다. 과거 4월에는 각종 제보와 투서가 언론으로 날아들었다. 승진을 노리는 고위 간부들과 그 측근들은 경쟁자를 낙마시키기 위해 경쟁자가 있는 부대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들을 언론을 통해 터뜨리는 것이다. 마치 대선‧총선 후보자 캠프에서 하는 네거티브 전략과 비슷하다.

의도성이 다분한 언론 보도는 일종의 제보 전쟁을 유발한다. 당한 측은 더 센 사건‧사고를 찾아내 언론사에 제보한다. 일종의 보복인 셈이다.

이런 인사철 제보와 투서들은 의도치 않게 군 내 자정 작용에 기여하기도 한다. 폐쇄된 환경 때문에 숨겨져 있던 비리와 불합리들이 간부들의 승진 욕구로 인해 공개되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 군의 치부가 드러나면서 가해자와 범법자들이 처벌을 받게 되는 구조다.

그러나 최근 잇따르는 사건‧사고들은 그간 보도됐던 양상과는 다른 점이 있다. 인사철 제보에서 비롯됐다고 하기에는 다소 우발적이거나 지엽적인 형태의 보도들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서는 이런 제보가 병사 휴대전화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실제로 휴대전화 허용 시기와 맞물리기도 했다.

병사들은 지난해부터 일과시간 후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다. 휴일에는 거의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허위‧악의 제보

병사들은 기밀사항 유출만 아니라면 가족‧연인‧친구와 통화나 인터넷 접속,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 활동 등 휴대전화 기능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실상 상시적인 제보가 가능해진 셈이다. 군 내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일, 불이익을 당한 사례, 의심되는 점 등을 부대 밖으로 상시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특히 SNS나 카카오톡 단체방, 커뮤니티 등에 게재된 글은 순식간에 군 외부 세계로 퍼진다. 그만큼 군 내부 소식이 언론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고위 간부들을 중심으로 한 인사철 투서가 군 내 비리 색출에 도움이 되듯, 병사들의 SNS 제보는 군 부대 자정작용의 계기가 된다. 물론 일부는 허위제보인 데다 악의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간 묵인돼 왔던 간부, 부대의 불합리한 행태나 여러 인습 등 문제점을 다각도로 지적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도 많다. 이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건도 여러 가지다. 일종의 병사 휴대전화 허용이 부른 신 풍속도다.

국방부 <뉴시스>
국방부. [뉴시스]

3급 비밀

암구호 유출도

병사들의 불만 대상으로 지목된 일부 간부, 반대파 등은 휴대전화 사용과 SNS를 통한 상시적 제보가 군 내 규율과 단합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휴대전화가 병사들로 하여금 개인주의적인 태도에 젖어들게 하고, 단체생활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한다.

특히 이들은 보안과 관련해 목소리를 높인다. 우려가 현실화된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육군 전방 부대 병사들이 카카오톡을 통해 기밀사항인 암구호를 공유해 징계를 받았다. 강원도에 위치한 한 부대의 I일병은 지난 2월2일 외박 복귀 전 동기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 당일 암구호 답어를 문의했고 동기 1명이 답어를 알려줬다.

I일병이 당일 오후 위병소를 통과할 때 암구호 답어를 말하자 위병소 근무자가 이를 수상히 여겨 상부에 보고했다. 이날 낮에 암구호가 바뀌었고, 복귀 전이라 부대 안에 없었던 I일병이 암구호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해당 부대는 I일병 등 2명에게 근신 15일 처벌을 내렸다.

암구호는 적군과 아군을 분간할 수 없는 야간에 아군을 확인하기 위해 정해 놓은 일종의 암호로 3급 비밀이다. 국방부는 해당 사건이 있기 전, 전 장병에게 휴대전화를 허용하면서 “개인적인 일탈 행위 등은 있지만, 보안 사고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병사 휴대전화 허용으로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잇따른 것이다.

군은 이와 같은 사례를 공문으로 일선 부대에 알리며 “개인 소유 정보 통신 장비와 SNS 사용에서 보안 위반 사례가 발생했다”며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보안 교육 및 자체 점검을 하라”고 주의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올해, 휴대전화 보안 스티커를 제거한 뒤 부대 사진을 찍어 개인 SNS에 올리거나 허용되지 않은 영상통화를 하는 사례도 있었다. 또 충전 목적으로 국방망 컴퓨터에 휴대전화를 연결하는 등 다수의 사례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날의 검’

지혜롭게 사용해야

군 수뇌부는 병사들의 불만 대상으로 지목된 일부 간부의 ‘병사 휴대전화 허용’ 비판을 일축하고 있다. 휴대전화 사용이나 상시적인 제보를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의 지도력, 태도 등을 되돌아볼 때라는 지적이다.

서욱 육군참모총장은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군 관련 사건‧사고에 대해 군 간부들의 의식 전환을 주문했다. 서 총장은 지난달 28일 작전‧군 기강 쇄신 육군 주요 지휘관 집중 대책 토의에서 “사회는 변하는데 우리(육군) 간부들은 고정관념에 얽매여 과거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본질에 충실한 가운데 시대적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장병 상호 간에 신뢰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지시했다.

병사 휴대전화 허용은 ‘양날의 검’이 됐다. 병사들의 자중이 무엇보다 우선한다. 휴대전화 사용과 자유로운 의견 개진, 상시적인 제보는 군인복무규율과 충돌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텔레그램 성 착취방 운영자 조주빈의 범행을 도운 혐의를 받는 ‘이기야’가 현역 일병 이원호로 드러난 점은 자제력을 잃은 휴대전화 사용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군 내 신 풍속도가 긍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병사, 간부, 지휘관 할 것 없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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