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이인영 의원이 원내대표에 출마하고 당선되자 여당 일부에서는 혀를 찼다. “망했네, 망했어.” 이인영은 그 정도로 저평가된 정치인이었다. 능력은 별로인데 과거의 학생운동 경력으로 연명해 오다가 이제는 원내대표까지 출마한다는 뒷담화가 끊이지 않았다. 언제까지 전대협 의장인 줄 착각하고 살 거냐고 야유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인영은 386세대 정치인들이 그렇듯 정치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다. 지역구부터가 구로갑이다. 서울 국회의원 지역구 49개 중 은혜롭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이 지역은 선거 때면 초등학생들이 이인영의 선거 로고송을 흥얼거리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서동요 부르듯 “이인영, 이인영”하는 곳에서 낙선이 더 어려워 보이는 지역이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여권의 가장 큰 화두 중에 하나는 ‘386 용퇴론’이었다. 386세대는 80년대 중반 전대협을 조직해서 학생운동의 대중화를 이끌고 2000년 총선을 통해 정치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386세대가 첫 번째 전성기를 누린 것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다. 386세대는‘정신적 386세대’라 할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 핵심부에 진입했다.

지난해 연말에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21대 총선을 계기로 이들 386세대가 정치적으로 퇴장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누릴 만큼 누렸으니 이제 그만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영원한 전대협 의장’인 임종석 전 실장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급격히 확산되는 것 같았다. 지금 돌아보면 헛된 기대였다.

임종석 불출마 선언 이후 이인영을 비롯한 386세대들은 약속이나 한 듯 ‘386 용퇴론’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더 이상 불출마 선언도 없었고 송영길, 우상호, 최재성을 비롯한 현역뿐 아니라 김영배, 김원이, 윤영덕 같은 묵은 386세대들도 무난히 공천을 받아 새로운 배지 대열에 합류했다. 386세대는 용퇴는커녕 더 강력한 대오를 형성하게 되었다.

지난 총선은 386세대에게 가히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을 조직하고 학생운동의 전성기를 이끈 정치력이 빛을 발한 선거가 되었다. ‘386 용퇴론’이 무색하게 이제 386세대는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새봄을 맞았다. 더불어민주당도 당분간 친문세력이 다수를 이루면서 386세대들이 주도권을 잡고 이끌어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인영이 김태년에게 원내대표 바통을 넘긴 것은 386세대가 회춘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이다. 이인영은 우려와 달리 많은 정치적 성과를 남기고 훌륭하게 임기를 마쳤다. 이인영은 공수처 설치,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 개정, 민식이법, 유치원 3법, n번방 방지 3법과 같은 성과로 자신뿐 아니라 386세대를 바라보는 질시의 눈길을 바꿨다.

이들 386이 강한 것은 20대의 경험을 공유하고 변색되었을지언정 동질의 정치철학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들더러 물러나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허나 그 물러남이 386세대가 주는 혜택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짐작컨대 이들은 후배 세대의 시간을 묵살하고 자신들의 전성기를 이어갈 것이다. 이들이 물리적으로 퇴장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는 다음 세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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