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MIT 정치학과 교수였던 Daniel Lerner는 "개발도상국의 민주사회 건설에 있어 언론 산업의 발전에 따라 민주사회가 이루어진다"고 밝힌 바 있다. 개발도상국의 근대화에 있어 언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언론은 시민사회의 적으로, 민의를 배반한, 군사정권과 거대자본에 대한 아첨으로 성장한 적폐세력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사회. 정치적 변화는 언론 자유, 언론 사업체 숫자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 하에서 정책적으로 신문 발행 허가를 억제했음에도 41개 일간지가 운영되었다. 한계가 있었지만 이승만 정부에 매우 비판적이어서 민주적 가치를 독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데 기여했다. 대부분의 언론사(주간 등 종사자)는 이승만 정권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고 권력형 비리에 대해 보도를 늦추지 않았다.

 4.19 이후 신문사가 등록제로 전환되면서 일간지 115개, 통신사 316개, 주간지 485개 등 900여 개로 폭증했으나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82개로 확 줄었고 그나마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 이후 64개로 더 줄었다. 6월 민주항쟁 직전까지 72개에 불과했던 언론사는 10년도 되지 않은 1994년 189개로 늘었으며 2000년에는 주간지가 7배 이상 늘어난 593개, 일간지는 180개로 늘어나 전체 언론사는 720개로 증가했다.

 2005년 인터넷신문이 본격적으로 언론사 대열에 참여했다. 인터넷신문이 148개사가 신설됐으며 주간지는 더 늘어나 892개, 일간지는 2661개 등 1.8배 늘어난 1303개가 되어 네 자릿수 언론사 시대를 열었다. 이후 언론사는 2010년에는 3441개, 2015년에 7949개 등 매년 2배 이상 늘어났으며 2019년에는 일간지 635개, 통신사 26개, 주간지 3219개, 인터넷신문 8629개 등 1만2509개로 확장됐다. 

 언론사 수의 변화를 보듯이 선거혁명으로 불리는 1985년 12대 총선과 한국판 명예시민혁명인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시작으로 한국 시민 민주주의의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30여 년간 언론 자유, 언론사 성장을 함께했다. 언론사 수는 언론 자유와 시민사회 발전의 또 하나의 기준이다. 

 자유당 정권 몰락을 불러온 4.19혁명의 배경에는 900여 개의 언론사가 있었고 문민정부 출범에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크게 늘어난 180여 개의 언론사가 있었다.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에는 700여 개 언론사의 적극적인 역할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데는 2000년 이후 매년 2배 이상 크게 성장한 인터넷신문의 성장이 있다. 2019년 광화문 광장이 뒤덮었던 조국 전 법무장관 규탄 시위도 역시 인터넷신문의 자유로운 언론 보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정치뿐만 IT산업과 4차산업혁명 등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효과적으로 확산하는 데도 언론의 역할은 매우 컸다. 

 언론정보학자인 로저스는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효과적으로 확산하는 매스미디어가 사회 변동의 엔진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한다는 일반적인 사회과학적 논리를 떠나 분명한 것은 다양한 언론사 증가는 곧 언론 자유로 이어지고 언론 자유는 다양한 주장과 주의, 사건보도로 이어진다. 

 결국 한식, 중식, 양식, 일식, 중동식, 인도식 등 다양한 메뉴를 내세운 음식점이 많아져야 음식의 질적 수준도 높아지고 소비자의 입맛도 고급화되듯이 언론도 다양한 주관과 주의를 갖는 언론사들이 많아질 때 언론의 질도 높아지는 것이다. 소비자, 독자들의 취향과 기호에 맞는 다양한, 질적으로 수준 높은 언론, 매체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암혹한 역사를 통해 독재국가, 독재자가 그랬듯이 언론을 입맛에 따라 재단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과거에는 허가제를 내세워 언론사 개업 자체를 불허하고 정보기관을 파견해 기사 검열을 하는 등 그 폐해가 눈에 드러난다. 그러나 최근에는 포털사이트 등을 이용한 간접적인 언론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 과거 동아일보가 정부의 언론 탄압 일환으로 활용했던 광고탄압에 맞서 백지 광고 신문을 냈던 것처럼 지금 포털을 이용해 반정부 언론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포털을 이용한 언론 통제는 부끄러운 짓이다.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와 폭군의 피로 매 순간 새로워진다” 미국 대통령으로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토머스 제퍼슨이 한 말이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고 변형돼 알려졌다. 다시 말하고 싶다. “민주주의는 언론의 자유와 함께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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