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에서 586세대로 변모하는 지난 20년간 정치적으로 이 세대를 대표해 왔던 것은 누가 뭐래도 이인영이다. 그가 이 세대를 대표했던 이유는 그가 정치인으로 성공했기 때문도 아니며, 그의 정치적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도 아니다. 그가 성공한 87년 6월 항쟁의, 살아있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늘 고뇌하는 햄릿이었으며,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지고 가는 나그네였다. 그가 2017년 6월의 마지막 날을 끝으로 ‘이인영의 87년 체제’를 끝내려 했지만, 그의 의도대로 끝내지는 못했다.

사실 그는 그 자리에서 2020년 4월 15일의 총선을 걱정하고 있었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도전했던 이유도 4.15 총선 걱정 때문이었으며, 자신의 정치적 체급을 낮춰 작년 5월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나섰던 이유도 4.15 총선 걱정 때문이었다.

그가 작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당선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의 정치적 앞날은 밝지 않았다. 전임 원내대표가 밀어붙인 패스트트랙 정국은 여야 간의 대화를 불가능하게 하여 그에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문이었는지 여당 원내대표임에도 불구하고 2017년부터 시작한 ‘민통선 통일 걷기’ 행사도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그가 원내대표 재임 중 가장 큰 정치적 위기를 맞이한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 때문이었다. 걸어다니는 지뢰밭 같던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함으로써 위기를 자초한 문재인 대통령은 뒤이어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서울대교수로 복직한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우를 범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동안 국내 여론은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양분됐다. 진보세력은 조국 사태를 보면서 울분을 토했고, 그러한 울분은 진보세력의 분열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태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여당 원내대표의 역할이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서 사퇴시키고 보수야당을 고립시키기 위한 정기국회 전략에 돌입했다. 1년도 남지 않은 4.15 총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4+1 협의체’라는 정치적 괴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국회의사일정을 손바닥 뒤집듯 보이콧하는 제1야당을 압박했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소방공무원 국가직화법, 민식이법, 유치원 3법 등이 일사천리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패스트트랙에 올라있던 공직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법 등도 통과시켰다.

그의 카운터 파트너였던 제1야당의 나경원, 심재철 두 원내대표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둘은 모두 이번 총선에서 낙선의 쓴맛을 제대로 봤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질책보다 이인영 원내대표에 대한 원망이 더 클 것이다.

이인영 원내대표 임기 중 제출된 법안은 4501건이고 이 중 2800건이 처리되어 62.2%의 처리율을 보였다고 한다. 20대 국회 임기 마지막 해이기도 한 이유가 있지만, 앞선 3명의 원내대표 시기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처리율이다. 그가 자신의 업적으로 자랑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뭐니 뭐니 해도 21대 총선의 압도적 승리일 것이다. 패스트트랙을 통해 개정한 준연동형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이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담보할 수 없음을 알고 있던 그는 명분보다 실리를 택해 그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교활함을 두루 갖춘 마키아벨리즘에 충실한 정치인의 탄생이다.

그의 원내대표 임기가 끝났다. 이해찬 대표는 “사리가 몇 바가지 나왔을 것”이라며 그를 극찬했다. 모두에 고뇌하는 햄릿이라 표현했지만 이제 그는 ‘고뇌하는 돈키호테’다. 20대 대선에서 우리가 그를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가 킹 메이커가 아닌 킹을 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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