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실이 최종 결심을 하기까지 몇 달이 흘렀다. 언니와도 상의하고 다니는 교회 목사와도 의논했다. 결국 윤실은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갔다.
“지금 나이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능성은 높습니다.”
윤실은 의사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기형이나 다른 부작용은 없을까요?”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까지는 거의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만...”
윤실은 의사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산부인과학회 윤리규정에는 반드시 배우자의 허락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라... 어떻게 되나?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의사는 학회 윤리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한참 동안 통화한 후 의사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가능하답니다.”

정작 문제는 다른 데서 발생했다. 한용국이 정자를 어디에 보관시켰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정무도 보관했다는 사실만 들었지 보관 장소가 어디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며칠 동안 노력한 끝에 박정무가 워싱턴DC와 버지니아 주의 정자은행 목록을 가져왔다. 50개가 넘었다.

윤실은 언니와 함께 병원마다 전화를 걸어 가능성 있는 병원을 가려냈다. 다섯 군데로 좁혀졌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한용국이라는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며칠 뒤 박정무가 상기된 표정으로 다시 찾아왔다.
“찾았습니다.”

“예? 찾았다고요?”
윤실은 벌떡 일어섰다.
“병원이 아니라 ‘인류보안계획센터’라는 연구소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그곳에 한 형의 후, 후배가 있었어요.”

박정무는 흥분에 들떠 말을 더듬었다.
“인류보안계획센터라고요?”

“로버트 그래함 박사라고 이 방면의 세계적인 학자가 만든 연구소랍니다. 그곳에서 운영하는 ‘천재 정자은행’, 영어로 ‘The Sperm Bank for Genius’라는 곳에 있었어요. 우량인종, 즉 천재들의 정자를 보관하는 연구소예요.”
김윤실은 마침내 인공수정 시술 허가를 받았다. 놀랍게도 첫 번째 시도에 성공하여 임신을 했다. 1981년 여름이었다. 한용국이 사망한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윤실은 기적처럼 태어난 딸의 이름을 수원이라고 지었다. 빼어날 수(秀)에 우아하다는 뜻의 원(媛) 자였다.

김윤실은 수원이 세 돌 지날 무렵 한국으로 돌아왔다. 수원이 한국 국적을 얻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사람은 미국 국적을 얻기 위해 만삭의 몸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몰래 탈 때, 윤실은 딸에게 한국 국적을 주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특별하게 태어난 수원은 지능까지 특별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영재성을 발휘했다. 아이큐가 1만 명에 한 명 있을 정도로 높았다.
“빨리 영재 학교에 보내는 것이 좋겠어요. 뛰어난 아이에요.”
담임선생은 만날 때마다 강조했다.

윤실은 마침내 결심하고 일곱 살 영재 수원을 데리고 미국 버지니아 주로 이사를 갔다. 워싱턴DC 다운타운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페어팩스 카운티라는 작은 시티였다. 한국 교포가 많이 사는 조용한 곳이었다. 페어팩스 시티는 넓은 페어팩스 학군으로 분류되어 미국에서 공교육 시설이 가장 좋은 곳으로 손꼽혔다. 그래서 한국 교포들은 이곳을 미국의 8학군이라고 했다. 여기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수원은 여러 차례 월반을 했다.

영재성을 인정받은 수원은 전국의 영재들이 모인 ‘토머스 제퍼슨 과학 기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동양인이 40퍼센트 정도 다니는 학교였다. 이곳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수업료를 면제 받았고, 별도로 구성된 영재 클래스에서 따로 교육을 받았다.

물리, 수학 등 자연과학에 뛰어난 소질을 보인 수원은 열일곱 살에 파리 제6대학에 입학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과대학이었다. 퀴리 부부의 이름을 따 ‘피에르와 마리 퀴리 대학’으로도 불렸다.

대학을 조기에 마친 수원은 석·박사 과정을 한꺼번에 수료해 23세의 어린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6. 위기일발 수중 폭발

월요일 아침, 한국수력원자력 고리 본부 대회의실. 정기적인 확대 간부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종문 본부장의 일상적인 훈시가 끝나고 운영실 부서인 발전부, 방사선 안전부, 화학 기술부, 정비 기술부, 계통 기술부, 전기부, 계측 제어부가 차례로 현황 보고를 했다. 마지막으로 성능 개선 팀의 보고가 이어졌다.
폐회될 무렵, 이종문 본부장이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인테이크 침입자 사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론 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한 안건은 아니었다.
“진상이 전부 파악된 것은 아니지만...”
김승식 안전 부장이 말문을 열었다.

“사고 며칠 전부터 본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수상한 글이 계속 올라왔다고 합니다. ‘원전 폭파’에 대한 경고였답니다. 장난이라고 생각해 삭제해 버렸다는데 혹시 변사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백업 파일을 통해 추적하고 있습니다.”

“다른 건 없습니까?”
“장 안토니오가 사건 당일 아침 외지인 셋과 함께 낚시 배를 타고 나갔다고 합니다. 죽을 때 지니고 있던 물건들은 모두 본인 소유라고 합니다.”
“낚시꾼들이 무슨 이유로 원전 시설에 접근했다는 말입니까?”

“글쎄요. 경찰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데 아직 그날 같이 갔던 사람들의 신원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며칠 전부터 안토니오가 낚시 가게 근처 콘도에 들락날락한 정보를 추가로 입수했다고 합니다.”

“그럼 배후에 무슨 조직이 있다는 것 아닌가요? 예사롭게 넘기지 말고 수사기관과는 별도로 조사를 해 보십시오. 모든 보안시설을 다시 점검하시고요.”
말을 마치려던 본부장이 한 가지 더 지시를 내렸다.

“특히 카드 키 소지자부터 철저히 확인 점검하세요. 최근 우리 본부에 드나든 사람 중에 미심쩍은 사람이 있는지 일일이 체크하십시오.”
회의는 의문만 증폭시키고 끝났다.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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