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검열하다 건드린 듯” 우리 군 해명에도 논란 증폭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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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지난 한 달 여간 코로나19와 함께 지구촌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이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거취였다. 두문불출한 김 위원장 탓에 국내를 비롯한 세계 언론은 연일 추측에 추측을 더했다. 특히 미국 CNN에 의해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보도되자 각종 루머까지 쏟아져나왔다. 김 위원장이 이미 사망했다는 ‘사망설’을 시작으로 식물 인간 상태라는 ‘뇌사설’, 코로나19를 피해 거처를 옮긴 것이라는 ‘파천설’까지 떠돈 것이다. 본지 역시 지난달 25일자 보도(“‘건강 이상설’ 김정은, 별 일 없다면 일주일 안에 모습 드러낼 것”)를 통해 김 위원장의 거취를 추측한 바 있다. 그리고 약 열흘 후인 지난 2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노동절이었던 1일 평안남도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무려 20일 만에 건재함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보도가 나온 지 만 하루 만인 3일 북한은 우리 군 GP를 향해 총을 쏘며 도발했다.

“명백한 9·19 군사합의 위반” 비판
“김정은의 정치 메시지” 분석도

총기 도발이 발생한 곳은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 GP다. 지난 3일 오전 7시41분경 북한군은 자신들의 GP에서 우리 군 GP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군과 합참에 따르면 당시 GP 근무자가 총성을 청취한 뒤 외벽에서 4발 정도의 탄흔과 탄두 등을 목격해 현장 지휘관에게 보고했다. 우리 군은 이후 10여발씩 2회에 걸친 경고사격과 함께 경고방송을 실시했다. 매뉴얼에 따라 대응했다는 것이다.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은 도발 후 발 빠르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합참은 북한군의 총격이 우발적이라는 점을 무려 6가지의 근거를 들어 설명했다. 우선 총격이 가해진 시간대가 북한군 GP의 근무 교대와 장비 점검 시간이라는 이유다. 장비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발사된 총탄이 이미 조준된 우리 군 GP를 향해 날아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합참은 북한군 GP 근처에서 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는 점도 우발적 도발의 근거로 꼽았다. 일반적으로 군사 도발을 계획할 때는 민간인들을 사전에 대피시키는데, 총격 전후 GP 주변에서 농사활동이 계속됐다는 설명이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군의 특이 활동도 식별되지 않았다”면서 의도적인 도발에 뒤따르는 이상 징후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도적인 도발로 보기에는 지리적 여건과 기상 요건도 좋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북한군 GP의 고도는 우리 군 GP보다 낮은데, 총격전이 벌어질 경우 북한군이 불리해지기 때문에 의도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총격을 당한 우리 군 GP가 북한군 GP와 최단 1.5㎞, 최장 1.9㎞가량 떨어져 있다며 북한군 총기의 유효 사거리를 벗어나는 거리라고도 했다. 이와 함께 합참은 당시 GP 인근에 안개가 짙게 껴 시계가 1㎞ 이내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의 도발은 이뤄지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6가지 근거’든 합참
“신뢰할 수 없다” 의견도

그러나 합참의 설명에도 일각에서는 석연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합참의 입장은 불필요한 긴장 상황 조성을 막겠다는 취지로 보이지만, 북한이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군이 나서서 북측의 도발을 해명해줄 이유가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또 ‘우발적’이라는 이유와는 상관없이 북한의 이번 총격은 명백한 9·19 남북 군사합의 위반임에도 강력하게 항의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지난 4일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정부와 군은 강력히 항의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야 함에도 북한군 감싸기에 급급하다”면서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이고 군인지 알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합동참모본부 차장 출신으로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신원식 예비역 중장은 “우발적 도발인가 의도적 도발인가는 실체적 본질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9.19 군사합의는 내용 자체로도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데, 그 불리한 내용마저 우리는 지키고 북한은 어기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어 “어제 사건으로 불리함이 확대됐다. 북한에 정전협정과 군사합의 위반을 강력히 항의하고 총기 관리를 엄격하게 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선 의원은 “북한 당국이 해명하고 사과해야 할 일을 우리 군이 애써 나서서 변명해주는 해괴한 상황”이라면서 “군이 정치화됐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군이 군다움을 이미 져버렸다”고 했고, 정운천 의원도 “북한 측 해명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북한의 도발을 먼저 해명하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다. 휴전선 북한군의 총격 도발에 대해서는 유감 표명조차 없는 청와대와 단 한 줄 논평도 내지 않는 더불어민주당은 어느 나라 청와대이고 어느 나라 당인가”라고 일갈했다. 미래통합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 당선된 윤상현 의원 역시 “최정예 GP 인민군의 오발탄이라는 합참의 적군 엄호는 황당하다 못해 서글프다”며 “인명 살상을 피한 북한군의 GP 조준 사격은 김정은의 정치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애지중지하는 9.19 남북군사합의를 향한 총격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합의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적군은 오발하지 않는다. 실수로 도발하지도 않는다. 방심하면 당한다. 크게 방심하면 더 호되게 당한다”고 지적했다.
야당의 주장처럼 이번 도발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합참의 해명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드러나며 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합참은 북한군 고사총의 유효 사거리가 1.5㎞~1.9㎞라고 밝혔으나 최근 국회에 보고한 자료에는 3㎞로 명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총격당한 GP의 탄흔 검사 결과 유효 사거리 밖에서 발사된 것으로 분석된 점을 고려하면 북측이 GP가 아닌 3~4㎞ 떨어진 지역에서 조준 사격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합참은 지난 7일 정례브리핑에서 “수년 전 국회 보고자료에 고사총 유효 사거리를 3㎞ 내외로 보고한 것은 맞다”면서도 “현재 군이 파악하고 있는 고사총 유효 사거리가 1.4㎞ 내외이기 때문에 수년 전 보고 자료의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합참의 설명이 사실이더라도 우리 군이 북한군의 기본 공용화기조차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 북한 측은 이번 도발에 대한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7일 북한 인민무력성 대변인을 통해 ‘대결을 유발시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군사적 준동’이라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하며 대한민국의 군사 훈련을 비난했다. 북한은 이날 “절대로 스쳐 지날 수 없는 엄중한 도발이며 반드시 우리가 필요한 반응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며 “그 어디에도 변명할 수 없는 고의적인 대결 추구가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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