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여의도 정치권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다. 본인의 거부에도 대선주자로서의 가능성이 계속 점쳐지고 있다. 유 이사장은 현역은 아니지만 정치적 영향력만큼은 대한민국 넘버원이다. 여권 지지층의 막강한 팬덤을 기반으로 여야 지도급 인사를 뛰어넘는 정치적 파워를 누린다. 실제 민주당의 사상 초유 압승으로 막을 내린 21대 총선 역시 유 이사장의 공이 적지 않았다. 코로나19라는 블랙홀 상황에서 치러진 지난 총선에서 여권의 논리를 설파하고 야권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강력한 지원사격에 나섰다. 총선 기간 내내 유 이사장의 주요 발언은 신문과 방송은 물론 주요 인터넷매체에서 실시간으로 기사화될 정도였다. 다만 총선 이후 유 이사장은 현실정치와 더 멀어졌다. 친문 지지층을 열광케했던 정치비평의 무대에서마저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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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진보 180석 발언 여파로 총선후 정치비평 은퇴 선언
-정계복귀 거듭 부인에도 총선 이후 차기 역할론 솔솔

유시민 이사장에 대한 정치적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오는 2022년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유 이사장은 현실정치를 은퇴했다. 대권출마는커녕 정계복귀에도 분명하게 선을 그어왔다. 다만 정치는 생물이다. 차기 대선까지 남은 2년 동안 여야의 정치지형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제외하면 마땅한 잠룡이 없던 여권의 차기 지형도를 고려할 때 유 이사장은 영남주자라는 점도 매력 포인트다. 이 때문에 친문진영의 구애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92년 대선패배 이후 정계은퇴를 번복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참여를 마다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길을 따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180발언, ‘정계은퇴 이어 정치비평 NO’ 선언

유 이사장은 총선을 전후로 종횡무진 활약했다. 이른바 조국사태로 문재인정부가 집권 이후 최대 위기에 처했을 때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맹공을 가하며 적극 방어에 나섰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하면서 최일선에 나선 것과 유사한 모습이다.

총선 국면에서 진보진영의 최대 스피커 역할을 하면서 민주당의 상징적인 구심점이 됐다. 다만 정치비평의 무대에서 그가 쏟아낸 발언들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지지층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다. 정치적 반대층은 강력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범진보 180석 발언이었다. 유 이사장은 총선 막판 유시민의 알릴레오유튜브 방송에서 비례의석을 합쳐서 범진보 180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전망했다.

여권에서는 보수층 결집이라는 역풍을 경계했다. 야권에서는 오만불손한 발언이라며 융단폭격에 나섰다. 총선 이후 유 이사장의 예측은 현실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163,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 17석은 물론 정의당 6, 열린민주당 3, 여권 성향의 무소속 1석까지 포함하면 범진보 의석은 무려 190석이다. 단독 개헌선인 200석에 10석 못미치는 의석이다.

범진보 180발언은 결과적으로 유 이사장을 정치와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유 이사장은 총선 당일 KBS 개표방송에서 희망 사항으로 말을 해봤던 것이라며 그 말을 안 했다면 (범진보 진영이) 200석도 될 뻔했다고 후회했다.

이어 이틀 뒤인 17유시민의 알릴레오유튜브 방송에서 총선에서 석패한 김영춘(부산 부산진구갑박수현(공주·부여·청양남영희(인천 동구·미추홀을) 후보를 거론하며 미안하다기성 미디어를 통한 정치비평이나 시사토론, 인터뷰, 이런 것도 하지 않겠다. 180석 사건 때문에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현실정치 은퇴에 이어 정치비평의 세계에서마저 퇴장을 선언한 것이다.

다만 유 이사장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크게 나쁘지 않다. 민주당 압승의 여파로 유 이시장의 정치비평 은퇴에 따른 동정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유 이사장을 향한 응원도 쏟아졌다. 171표 차이로 아깝게 패배한 남영희(인천 동구·미추홀을) 후보는 제 패배가 유시민 이사장 탓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옳지 않다유 이사장이 이번 총선이 있기까지 1년 동안 싸워온 모습을 다 잊었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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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발언 여파로 접전지 후보가 패했다는 취지로 언급했던 이근형 전 전략기획위원장 역시 정치비평 중단 결정이 이번 논란 때문이라면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호남-비주류이낙연 독주속 친문, 유시민에 러브콜?

총선 이후 민주당의 상황은 쾌속질주다. 180석 압승의 여파로 거칠 게 없다. 차기 대권 또한 장밋빛 청사진이 넘쳐난다. 지리멸렬한 보수의 상황을 고려할 때 2년 뒤 정권재창출을 사실상 예약했다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온다.

무엇보다 이낙연 전 총리라는 강력한 차기주자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전 총리는 총선 직후 차기 지지율 조사에서 무려 40%대 초반을 기록하는 대세론을 보여줬다. 총선 직전만 해도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와 여야를 대표하는 차기주자 1순위였지만 총선 승리 이후 정치적 위상이 보다 커졌다. 현 차기구도는 이 전 총리의 독주체제 속에서 여야 나머지 후보들의 도토리 키재기 양상이다.

다만 이 전 총리의 결정적 약점은 친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친문진영이 차기 대선에서 이 전 총리에게 권력을 순순히 넘겨줄 것인가라는 문제와 결부된다. 이 전 총리의 어려움은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의 유가족 대화 논란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절제된 언행과 품격의 이미지가 트레이드마크인 이 전 총리가 유가족과의 대화 과정에서 실언(?)으로 느껴질 수 있는 발언을 했을 때다. 야권이 맹공에 나섰지만 여권에서는 제대로 된 방어가 나오지 않았다. 당내 기반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아울러 이 전 총리는 호남후보라는 한계를 고려할 때 대선본선에서의 확장성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21대 총선은 민주당의 대승으로 막을 내렸지만 전체 지역구 득표율은 민주당 49%, 통합당 41%로 약 8% 포인트 정도 차이다. 더블 스코어 수준의 의석수라는 착시효과의 이면을 벗겨내면 정치지형의 변화에 따라서는 차기 대선에서도 여야는 여전히 팽팽한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친문진영에서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또다른 히든카드를 마련할 필요성이 없지 않다. 유시민 대안론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물론 유 이사장은 지난 2013년 정계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이후 정계복귀설이 나올 때마다 여러 차례에 걸쳐 강력 부인했다. 그때마다 여야 정치권은 속내는 다를 것이라고 일축했다.

실제 노무현재단 이사장 취임 이후 유 이시장의 정계복귀는 물론 대선출마 가능성까지 공공연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유튜브 방송 역시 사실상의 정치행위로 여겨지면서 유 이사장은 차기구도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정치인이다. 또한 지난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바 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경기지사 선거전에 나섰을 정도로 큰 꿈을 가진 정치인이다. 게다가 참여정부 이후 20년 가까이 응원해온 팬층도 두텁다. 과거보다 정치적 주가와 이미지도 급등했다.

옳은 말을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한다는 이른바 독설 정치인의 이미지를 벗은 게 최대 성과다. 지난 201620대 총선 전후로 시사 예능프로그램인 JTBC ‘썰전에 장기 출연 이후 친근하고 푸근한 작가 이미지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이후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이미지를 추가로 얻었다.

게다가 유 이시장은 현존 정치인 중 말과 글을 가장 잘 다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선과정에서 TV토론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다. 실제 유 이사장은 현역 정치인 시절 보수야권에서 토론 맞상대가 유시민이라고 하면 참석을 거부할 정도였다.

차기대선 구원등판? 킹 또는 킹메이커 선택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 뉴시스

선택은 유 이사장의 몫이다. 차기 대권구도에 플레이어(선수)로 참전할지 아니면 정권재창출을 지원사격하는 관전자에 머무를지는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렸다. 쉽게 말하면 본인이 킹으로 나서느냐 킹메이커가 되느냐다. 물론 킹으로 나설 경우 정계은퇴 약속을 뒤집어야 한다는 게 걸림돌이다.

유 이사장은 지난해 5저는 20132월에 정치를 떠난다고 SNS 글을 올린 후로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공무원이 되거나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분명히 했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고 선거에 나가기도 싫다고 재차 당부할 정도였다. 다만 한국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이회창 전 총재, 손학규 전 대표 등등 유력 정치인의 정계은퇴, 번복, 복귀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야 정치권이 유 이사장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 이사장은 민주당 안팎을 살펴볼 때 매력적인 차기주자다. 특히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의 경우 영남 득표의 확장성이 있는 주자가 나섰을 때 대선에서 승리한 공식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단적인 예다.

영남지역에서 보수야당의 독주를 방지한 게 대선승리의 원동력이었다는 주장이다.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DJP(김대중+김종필) 연대와 이인제 후보의 독자출마 여파로 간신히 승리한 바 있다. 지난 2007년 대선의 경우 호남주자였던 정동영 후보가 나서면서 530만표 이상의 참패를 당한 적도 있다.

물론 민주당 내 영남주자는 한둘이 아니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김두관 전 경남지사,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와 정치적 상품성은 유 이사장만한 카드는 사실상 없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뒤를 잇는 민주정부 4기의 최적임자라는 평가다. 만일 본인의 공언대로 대선출마는 하지 않더라도 적극적인 지원사격에 나서는 킹메이커 역할은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여권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유시민 이사장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전국적인 지명도는 물론 충성도 있는 팬덤을 갖춘 정치인이다. 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사실상의 정치행위를 이어오고 있다이낙연 카드를 앞세운, 여권 우위의 차기 지형이 지속되고 있지만 문재인정부 막판 정치지형이 요동칠 수도 있다고 전제할 경우 유시민 이사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유 이사장 본인이 정계복귀나 대선출마를 거부한다고 해도 열혈 지지층과 팬심이 유 이사장을 압박해 차기 대선무대로 내몰 경우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례를 따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준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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