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이 4.15 총선 참패를 계기로 “쇄신·혁신”의 강박감에 눌려 있다. 통합당은 “사람과 생각 다 바꿔야 한다” “반공·시장경제 벗어나 진보 정당의 평화·평등분배 가치를 흡수하라” “꼰대 짓만하는 보수 퇴진시켜라” “3040 세대 중심으로 세대 교체하라” 등 다양하다.

통합당에 대한 쇄신의 쓴소리들은 귀담아 들을 만한 대목도 있다. 그러나 통합당은 건국 이후 보수주의를 지켜 온 정당이다. 총선에 참패했다고 “쇄신·혁신” 한다며 보수 기본까지 흔들릴까 걱정된다. 반공·시장경제 벗어나 평등 배분하려면 진보 정당 제2중대로 가는 게 낫다.

4.15 총선에서 의석수만 보면 180대 103으로 통합당이 대패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구 득표율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1천434만5천425(49.9%)표를 얻었고 통합당은 1천191만5천277(41.5%) 표를 획득했다. 통합당 지지 유권자들이 1천2백만이나 살아 있다. 4.15 총선 후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여당이 잘해서 찍었다는 응답은 22%밖에 안 되었다. 통합당은 겨우 22% 지지를 받는 데 그친 집권당의 강령을 베낄 필요는 없다.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는 ‘꼰대’가 아니다. 보수주의 정립자인 18세기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1729-1797년)는 “나는 건물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건물의 모양을 가능한한 살리겠다”고 했다. 기존 가치를 “가능한” 보존하면서 변화를 모색한다는 말이다. 현대 보수는 자유경쟁, 시장경제, 정부 개입 최소화, 중산층 윤리 존중, 법과 질서 유지, 반공 등을 신봉한다. 한국은 보수 정책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고 세계 10대규모의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다.

통합당은 “젊은 피 수혈”을 외친다. 하지만 세대교체론에 떠밀려 무리하게 수혈한다면 오염된 피가 섞인다. 지난날 집권세력의 386세대가 드러냈듯이 그들 중 상당수는 기존 세대 보다 더 부패했고 더 무모했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지명자는 1970년대 출생의 경제통 대선후보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자유민주 체제에서 대선 후보는 실권자에 의해 인위적으로 제작되는 게 아니다. 치열한 자유 경쟁을 통해 선출되는 것이다. 39세로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누구에 의해 육성된 게 아니고 자력으로 올라섰다.

대선 후보는 대통령 취임 날부터 국가를 다스릴 수 있도록 통치능력을 갖춰야 한다. 경제통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명박은 경제통 이었지만 대통령으로 실패했다. 통합당은 “사람과 생각 다 바꿔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통합당은 43%나 현역 의원을 교체했으면서도 29% 바꾸는 데 그쳤던 민주당에 참패했다. 바꾸는 게 능사가 아님을 실증한다. 민주당의 결정적 4.15 대승 요인은 100만 원 긴급재난지원금 공약과 코로나19 불안감에 따른 유권자들의 기존 권력 의존 심리에 있었다.

물론 통합당 정객들에게는 당장 바꿔야 할 태생적 흠결이 많다. 공익보다는 개인의 이해관계를 쫓는 얄팍한 기회주의, 희생적 투쟁의지 결여, 실권자에 붙어 한자리하려는 기생충 속성, 고질적 계파 갈등, 보수에 대한 신념과 이해 부족 등이다. 또한 그동안 압축성장하면서 파생된 소외계층에 대한 따뜻한 배려도 요구된다. 그러면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가벼운 세론에 부화뇌동치 말고 보수 기본을 지켜야 한다.

통합당은 1830년대 창당한 영국 ‘보수당’과 1850년대 등장한 미국 ‘공화당’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참혹한 패배를 여러 차례나 겪었으면서도 경망스럽게 흔들리지 않고 보수의 기본을 지켜 냈다. 1970-80년대 영국의 마가렛 대처 총리는 노동자의 표를 얻지 못해도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중산층 표”를 원한다고 했다. 보수의 기본과 신념을 지킨 영국과 미국의 꿋꿋한 190년 역사는 우왕좌왕하는 통합당에게 값진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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