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반세기가 지났다. 그리고 새로운 1년을 맞이했다. 올바른 논조, 사실에 기반을 둔 정직한 기사를 전통으로 하는 일요서울이 창간 26주년을 맞이했다. 사람으로 치면 성장기를 지나 청년기에 접어든 나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는 크게 신장되었으며 일요서울이 커다란 역할을 해 왔다. 창간 26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만큼은 스스로 대견스러워하고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아직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마비시켰다. 단순히 우리의 삶, 우리의 행동만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고마저 마비시키고 있다.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전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4.15 총선결과가 이를 극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TV뉴스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을 좀먹고 우리의 지성을 재구축하게 만든다. 우리의 사고를 단순화시켜 나와 내가 아닌 것으로 나누게 한다. 서로에게 적대감을 갖지만 필연적으로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종이신문이 온갖 가짜뉴스의 온상이 된 지는 오래다. 하루가 지나면 기사의 반은 가짜뉴스가 되고 일주일이 지나면 기사의 90% 이상이 가짜뉴스가 된다. 작년 이맘때 뉴스 중 진짜뉴스는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이러한 가짜뉴스는 왜 양산되고 유통되는가? 첫째, 뉴스의 생산자가 의도적으로 조작해 내기 때문이며, 둘째는 기자들이 이러한 뉴스 제공자에 대해서 취재에 근거하지 않고 사실이 아닌 허구에 흥미를 가지기 때문이며, 셋째는 언론사가 이러한 가짜뉴스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며, 넷째는 우리 독자들이 이러한 가짜뉴스에 둔감하기 때문이다. 가짜뉴스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은 우리 사회를 더 건전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렇다면 일요서울의 기사는 다를까? 당연히 달라야 하는데 진짜 다를까? 26주년을 맞이하는 일요서울이 숙고해서 답해야 한다. 성장기를 지나 성숙한 청년기를 맞이한 일요서울이라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다른 신문들과는 다르다고 부르짖어야 한다.

지난날의 우리나라 언론 생태계를 보면 정치권의 곁불을 쬐면서 성장해 온 언론사가 꽤나 있다. 그러한 언론사는 정권의 부침(浮沈)과 연동하여 생을 마감했다. 성장을 계속했지만 성숙하지 못했기에 부러지고 잘리었다. 일요서울이 정치권의 곁불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할 이유이며, 성숙하지 못한 성장과는 선을 그어야 할 이유이다.

언론이 오직 두려워 할 대상은 독자다. 광고주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해서는 언론의 미래가 없다. 우리는 지난 유신시절 동아일보, 조선일보 광고사태를 보았다. 정권에 빌붙었던 광고주를 대신해서 수많은 국민, 독자들이 저금통을 깨고 쌈짓돈을 모아 죽어가는 언론에 생명을 불어넣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의 언론도 그때의 언론과 다르지 않다. 정론직필의 언론이라면 국민들이, 독자가 살려낼 것이다. 언론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오직 국민이며 독자라는 사실은 건곤고금(乾坤古今)이 증명한다.

새로운 사반세기를 시작한 지난 1년. 성숙해지는 일요서울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고 흐뭇한 일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얻은 신뢰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요서울에 아낌없는 칭찬을 보내 주고 싶다.

언론 본연의 역할인 끊임없는 비판 추구는 우리 사회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일요서울의 기사 한 꼭지, 한 꼭지가 이러한 역할에 충실했다. 비판에 더해 스스로를 자정하는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비판과 자정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지난1년 잘 컸다.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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