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아물지 않은 상처

이용수 할머니 [뉴시스]
이용수 할머니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는 우리 역사의 가장 큰 아픔 중 하나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지난 1990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故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피해 사실을 증언한 뒤 같은 해 11월 발족해 약 30년간 활동해온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와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에 반대해 10억 엔을 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정의기억재단이 통합해 발족했다. 정의연의 전신인 정대협은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진상 규명 등을 촉구하고, 피해 생존자를 발굴해 생활 보호 활동을 펼치며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최근 이 정의연에 대한 의혹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고 있다. 의혹의 시작은 다름 아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였다.

“기부금 할머니들 위해 쓰이지 않아”
“정의연 해체해야” 李 할머니 작심 발언

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대구의 한 찻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연을 거세게 비판했다. 이날 이 할머니는 “성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른다”면서 “수요집회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연의 전 이사장으로 제21대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국회 입성에 성공한 윤미향 당선인을 향해서는 더욱 날을 세웠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는 정대협 대표였던 윤미향씨가 와서 해결해야 한다”며 “윤씨는 국회의원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딴 놈이 버느냐”고 일갈했다. 이 할머니는 정의연의 전신인 정대협이 출범한 다음 해인 1992년 윤 당선인에게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지금까지 함께 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1992년도부터 비행기를 110번을 탔다. 아무도, 돈 한 푼 보태준 사람 없다”고 강조했다. 이 할머니는 또 “나는 제일 가슴 아픈 게 (학생들이) 수요일 뙤약볕에 있으면서도 부모님한테 푼푼이 받은 돈 그걸 가지고 내놓는다”면서 “나는 제일 가슴 아픈 게 그거다. 내가 그거 보고 ‘이걸 받아야 되나’한 적이 있는데, 단체 사람들은 그걸 좋은 듯이 받는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 할머니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정의연 등에 이용만 당했다는 취지로도 주장하며 “성금·기금 등이 모이면 할머니들에게 써야 하는데 할머니들에게 쓴 적이 없다”고 폭로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10억 엔이 일본에서 들어오는 걸 윤미향만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수요일에 학생들 나와서 집회하면 공부 안 된다”면서 “저는 수요 데모를 마치겠다. 이것 때문에 학생들이 마음에 상처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폭풍’ 몰아닥친 ‘위안부’ 문제
尹 당선인 “할머니 기억 달라졌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할머니는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가장 진취적이고 적극적이었던 여성 운동가의 이탈 선언에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사실상 가해자로 지목된 정의연과 윤 당선인은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윤 당선인은 자신의 SNS를 통해 “한·일 합의로 박근혜 정부가 받은 10억 엔에 대해 오늘 오전 이 할머니와 통화하는 중 할머니의 기억이 달라져 있음을 알았다”고 적었다.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 역시 “할머니께서 나이가 많으시고, 코로나19 이후 심신이 취약해지신 상태”라며 “기억이 왜곡되는 것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우희종 더불어시민당 대표는 “할머니 주변에 계신 최모씨라는 분에 의해 기억이 왜곡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에는 공통적으로 ‘할머니의 기억 왜곡’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 해명은 논란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그동안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이 대부분 피해 할머니들의 기억에 의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 몇 십년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피해자들의 기억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문서로 된 증거가 없다”면서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해 온 것이다. 그런데 정의연마저 할머니의 기억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앞으로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과정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할머니 역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할머니와 함께 하고 있는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관계자는 지난 13일 연합뉴스에 “할머니께서 ‘누가 사주해서 기자회견을 했다는 소문은 용납할 수 없고 오롯이 본인의 뜻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억력을 얘기하는 부분에 대해서 되게 화가 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관계자는 또 “할머니가 노쇠해서 기억을 잘 못한다는 이야기가 일각에서 나오는데 할머니를 주위에서 보는 사람들은 다 웃을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죄송하다’는 정의연
기부금 사용 내역은 “공개 못 해”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정의연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해명에 나섰다. 지난 11일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과 한경희 사무총장 등은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0년간 이 운동을 같이 해오고 가족같이 지내온 할머니께 원치 않은 마음의 상처를 드려 사과 드린다”고 했다. 또 “이 운동을 응원하고 지지해주신 수많은 국내외 양심 있는 시민들에게 의도치 않게 마음의 상처를 드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 이사장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번번이 걸림돌이 됐던 방해 세력과 같이 동조해 이 문제를 폄훼하고 훼손하고 심지어 활동가를 분열시키고 있다”며 “상처 입힌 여러분들이 반성하길 바란다”고 꾸짖었다. 이 할머니의 의혹 제기와 언론의 보도를 ‘방해 세력의 분열 공작’이라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다. 이 이사장은 “아무도 문제제기 하지 않을 때 용감하고 헌신적인 몇몇 연구가들이 이 운동을 만들어왔다. 그 당시 여러분들은 뭐하고 있었는가. 책 한 권은 읽었을까”라고 강조했다. 이 할머니가 기부금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데 대해서는 “(정의연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활안정만을 목적으로 하는 인도적 지원단체가 아닌 세계적인 여성인권운동단체”라면서 “국내외 시민들의 지원과 연대로 피해자 소송 지원, 국내외 증언활동 지원 수요시위, 나비기금,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평화비 건립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의연 측은 “최근 3년간 특정 목적이 지정된 경우를 제외한 기부금은 22억1960만원이며, 이 중 9억1140만원을 피해자 지원에 썼으므로 41%를 피해자 지원에 사용했다”라며 “기부금 내역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기부금 세부내역을 공개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세상 어느 NGO가 활동내역을 낱낱이 공개하고, 세부 내용을 공개하느냐”라면서 “기업들에게는 왜 요구하지 않는 건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 한다”고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정의연 “악의적 왜곡 보도에 정면 대응”
與 나서며 ‘정치 쟁점화’

여러 가지 논란 속에도 지난 13일 정기 수요집회는 예정대로 치러졌다. 참가자보다 취재진이 더 많은 상황에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이 이사장은 다시 한 번 정의연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언론에서 제기된 부실회계 의혹 등에 대해 “매년 변호사와 공인회계사로부터 회계감사를 받아 매번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받았다”면서 “다만 국세청 시스템 공시 입력과정에서 아주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국세청 재공시 명령에 따라 바로잡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의 투명성을 다시 한 번 입증하고 악의적 왜곡 보도에 대한 정면 대응을 위해 다수의 공인회계사에게 기부금 사용내역에 대해 검증받도록 하겠다”면서 “정의연은 기부금 사용에 있어 불법적인 유용이나 횡령이 없음을 명확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 매체는 ‘정의연이 맥줏집 한 곳에서만 기부금 3300여만원을 썼다’는 취지의 보도를 냈다. 이에 대해 정의연은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보도에 나온 3300만원은 그해 50개 지급처에 지출한 모금사업비의 총액”이라면서 “이 중 지출금액이 가장 큰 ‘후원의 밤’ 사업비용(965만원) 지급처인 디오브루잉주식회사를 ‘대표 지급처’로 기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정의연 구하기’에 나섰다. 지난 14일 김상희와 남인순, 홍익표 등 민주당 의원들은 성명서를 내고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빌미로 친일, 반인권, 반평화 세력이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우려는 운동을 폄하하려는 공세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 할머니의 의혹 제기가 자칫 ‘친일 세력의 공작’으로 치부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이러한 논란과 관련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1년을 혼자 고민하고 결정한 거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당선인이) 지금이라도 이실직고하는 게 옳은 거지, 양심도 없다. 정의연은 고쳐서 못 쓴다. 해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계부실 의혹 수사 착수한 검찰

정의연을 둘러싼 의혹은 결국 검찰 수사에서 밝혀지게 됐다. 지난 14일 서울서부지검은 정의연 의혹과 관련한 고발사건의 배당절차 및 기초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정의연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운영과정에서 모인 후원금을 사용하는 데 목적과 절차가 지켜졌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특히 후원금이 정해진 목적 외에 윤 당선인 등 정의연 관련자들에 의해 사적으로 유용된 정황이 있는지도 살펴볼 방침이다. 멈춰버린 정의연과 이 할머니의 30년 동행은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될까. 아직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갈 길이 먼 상황에서 터진 논란에 국민들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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