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정치 신인인 이수진 당선인에게 패해 낙선했다. 보수야당에서 드문 거물 여성 정치인이 이렇게 사라지나 했더니, 그냥 사라지기 서운했나 보다. 총선 패배 이후 그 흔한 인터뷰 한번 없더니 뜬금없는 뉴스로 화제가 되면서 다시 등장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통합당 사분오열 속 나경원 주도 골프여행”이라는 헤드라인은 조금 잔인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뉴스의 내용은 나경원 의원이 주도해서 만든 미래통합당 내의 ‘포도(포용과 도전)모임’이 부산으로 1박 2일 골프여행을 가려고 계획 중인데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나경원 의원이 속한 미래통합당은 총선 패배를 수습하지 못하고 좌초 직전이고 나라는 온통 코로나로 힘들어 하는데 골프여행이라니, 이런 팔푼이가 있나! 눈치도 없고 감도 떨어지는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비난이 한목소리로 일자 나경원 의원은 일정을 취소해야 했다.

정의당에서는 “제1야당 국회의원들이 떼로 골프를 치고 놀러 다니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언제까지 국민에게 정신 못 차렸다는 소리를 듣고 살 텐가”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았다. 정의당은 정의당답게 할 일을 했고, 민주당은 아마도 동업자 정신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모임은 취소되었지만 부산으로 1박 2일 놀러 가서 골프 치고 부산 둘러보는 것이 그리 비난받을 일인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듯 국회의원들은 때로 별것 아닌 일로 사회적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국회의원은 자식을 결혼시키면서 예식장이 화려해도, 하객이 많아도 욕을 먹는다. 이렇다 보니 요즘은 아예 남들 모르게 조용히 치르는 것이 강제적인 미덕이 되어 버렸다. 국회의원은 유학 간 아들 때문에 욕을 먹기도 하고, 딸을 특목고에 보냈다고 욕을 먹는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은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에 딱 들어맞는 직업이다.

물론 이런 비난들은 거의 다 그럴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딱히 욕을 들어 먹을 사안이 아니더라도 그리 억울해 할 일도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했던 말에 국회의원도 해당하니까.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국회의원이고 대통령이기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것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 해도 나경원 의원의 골프여행 취소 해프닝을 보는 씁쓸함은 가시질 않는다. 칭찬할 일은 분명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난 받을 일일까. 그 정도 사안은 아닐 것이다. 나경원 의원이 추진한 대로 모임이 성사되었으면 낙선한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는 자리나 되었을 것이다. 사회적 활기를 찾기 위해 생활방역으로 전환한 지금, 그 정도 모임은 조심스럽지만 여기저기서 이루어지고 있다. 

나경원 의원의 이번 해프닝은 선출직들에게 과도한 도덕적 의무를 지우는 도덕정치의 폐해라 할 것도 없는 클릭 수의 덫에 놀아난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기자로서의 자부심이 있는 기자였다면 이런 가십성 사안으로 부적절하다느니 하는 기사는 안 썼을 것 같다. 정의당이 옛날 정의당이었다면 퇴장하는 정치인에게 저 정도로 원색적인 비난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경원은 눈치가 없고, 기자들은 직업적 자부심이 없고, 정치는 야박하기 그지없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