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대표

4.15 총선 이후 폭망한 소위 보수 재건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미래통합당 지도체제를 놓고 벌이는 논란 역시 그 목표는 보수 재건인 만큼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방안과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신기한 것은 소위 보수 세력의(여기서 보수 앞에 ‘소위’라는 단어를 붙이는 이유는 보수세력, 보수진영에서 말하는 보수가 무엇인지, 그들이 정치세력이라고 말할, 칭할만 한 자들인지 알 수 없어서) 재건 해법을 제시하는 대부분이 ‘보수주의’를 바로 알아야 한다며 보수주의 학습을 촉구하는 것이다. 

언론을 비롯해 학자, 정치인 등 나름대로 지명도가 꽤 있는 분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부터 지방선거와 대선, 4.15총선 패배를 날카롭게 분석한 뒤 해법으로는 ‘보수의 가치 재정립’ ‘보수를 바로 알아야 한다’ 고 주장한다. 

심지어 이번 총선 실패 원인으로 ‘보수진영의 가치관 부재’라고 근엄하게 판결하는 전문가님도 있다. 보수 정치지도자들이 보수주의 이념에 정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 정치지도자들이 보수주의 더 공부해 사상·이념 논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지금 여의도에는 보수의 가치를 바로 알기 위해 공부를 하자, 토론모임을 구성하자, 보수주의 전문가의 책을 읽자 등 보수 학습 분위기가 팽배하다.

반(反)도그마적 성향을 다행으로 아는 필자로서는 소위 보수진영의 참패 원인이 보수주의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전문가의 말대로 본래의(?) 보수주의가 ‘자유와 선택’이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기반한 이념이라면 현재 한국의 보수주의는 ‘권위주의와 부패, 반공 보수주의’일 뿐이고 낮은 임금을 기반으로 한 70년대의 국가주도형 경제보수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나치게 명분과 형식에 경도된 주자학에 전 사고체계, 이념적 DNA의 결과라고 해야 할까. 지금 보수진영에서 불어오는 보수주의 학습 열풍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망망대해에서 배에 물은 들어오고 기울기 시작하는데 조선술과 항해술을 다시 공부하자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진영을 지지하지 않은 20~40대는 진보 좌파가 아니다. 빨갱이, 친북주사파가 아니다. 80년대 운동권 시절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다. 이들은 정부가 2018년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결정하자 강력히 반발했다. 이들은 광화문 세월호 사고 광화문 추모집회에 나왔던 것처럼 지난해 조국 파동 때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나왔다.

보수주의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총선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미래통합당과 보수진영 자충수를 제외하면 패배의 첫 번째 원인은 개인의 자유, 공정성, 나눔을 통한 공동체 의식, 문화와 경제 등 한류 자부심 등을 중시하는 유권자의 성향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인은 보수진영은 야당이 설정한 진보-보수 프레임에서 벗어나긴커녕 도리어 승리의 요건으로 보수-진보 프레임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겐 ‘보수’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보수진영은 ‘보수’만 떠들어댄 것이다. 심지어 멸문지경에 이른 지금도 다시 보수를 제대로 다시 공부하고 진보진영과의 이념 논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조주의도 이런 교조주의가 없다.

보수주의 전문가들은 성공적 보수 리더십으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등을 꼽는다. 좌파적 이념과 정책을 철회하고 국가 개혁에 나선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 메르켈 총리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필자가 무지해서 그런지 몰라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들이 보수주의를 학습하고 진보진영과 이념 논쟁을 벌였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들의 성공 배경에는 장기 경제 불황이 있었고 선거 전후 경제불황 타파라는 시대적 과제 해결에 충실했던 것이다. 경제 활력과 국가 발전을 위해 작은 정부를 추진하고, 관료제를 개편하고, 노조와 연금 등 과도한 복지 기득권을 개혁하고, 재정을 긴축한 것이다.

현실적인 대안 정책 없이 태극기에 미국 성조기, 이스라엘기를 들고 서울역, 광화문을 다니며 박근혜 석방, 문재인 탄핵, 친북좌파 빨갱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공감 능력, 미래와 희망, 인간미 없는 정당에 표 줄 유권자는 없다. 선거는 최악을 거부하고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한다. 보수진영, 보수정당, 보수정치인, 보수 전문가들은 알아야 한다. 보수-진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유권자는 21대 총선에서 그랬던 것처럼 2년 후 대선에서도 ‘거부할 최악’ 으로 ‘보수 후보’를 지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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