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세계보건기구(WHO) 제6대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고 이종욱 박사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1976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이 박사는 대학 시절 내내 경기도 안양 나자로 마을에서 나병(한센병) 환자를 위해 봉사 진료를 했다. 당시 가톨릭 신자로 봉사차 한국에 온 동갑내기 일본인 레이코 여사와 1979년 결혼했다.

그 뒤 하와이대에서 공중보건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83년 세계보건기구 남태평양 사무소 한센병 팀장으로 세계보건기구에 입문했다. 1993∼94년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 질병관리국장을 거쳐 1994년 WHO 본부 예방백신사업국장 및 세계아동백신운동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이 박사는 1995년 WHO 백신국장으로 재직 당시 세계인구 1만 명당 1명 이하로 소아마비 유병률을 떨어뜨리는 성과를 올려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으로부터 '백신의 황제(vaccine czar)'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1997년 유명 테니스선수 마르티나 힝기스로부터 백신연구기금으로 7만5천 달러 기부를 끌어 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03년 1월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으로 선출됐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대한민국의 코로나 대처 능력이 주목 받고 있다. 최근 이태원 클럽 발 집단감염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WHO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과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WHO는 우리 정부에 코로나19 역학조사 자료를 요청할 정도다

무엇보다 코로나 19방역의 최전선에 진두지휘하면서 대한민국과 함께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인사가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다. 2년 후 있을 WHO 사무총장 도전설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기관에서는 코로나19 대응 국면에서 국제적으로 인지도를 높인 정 본부장이 해 볼 만하다는 구상이다. 임기 5년에 연임이 가능한 사무총장은 원래 집행이사회가 단일 후보를 추천하고 회원국들에 가부를 묻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현 사무총장 이전 7명의 사무총장은 30여 명이 모인 집행이사회에서 사실상 간선제로 뽑혔다. 2017년부터는 194개 회원국이 투표하는 직선제 선출로 바뀌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번 방역 경험을 이른바 ‘케이(K) 방역’으로 구조화해 세계와 공유하고, 이를 국제 표준으로 제안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위기를 기회 삼아 방역 부문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여 보자는 취지다.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5월 예정된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아시아 대표 기조연설을 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를 낙관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대륙 간 돌아가면서 맡는다는 점에서 아시아에선 이미 고 이종욱 박사가 WHO 사무총장을 지낸 바 있다. 다시 대한민국에 기회를 주겠느냐는 점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대륙별로 나눠 치르고, 한 번 치른 국가는 순서가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코로나19의 탁월한 대처와 4.15총선에서 보여준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연한 모습, 그리고 2020 KBO 야구 개막 등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또한 현 정부는 코로나19로 힘들어 하는 국가에 진단키트뿐만 아니라 마스크 등 구호물자를 보내는 등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가 대한민국에서 잠잠해지면 정 본부장의 WHO 도전은 설이 아닌 현실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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