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 도산, 실업 대란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지출을 대폭 늘렸다. 그 결과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996년 12%에서 1999년 22%로 10%포인트 급등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IMF(국제통화기금)의 감시, 세계경제 활황에 힘입어 재정 적자를 없애고 균형 재정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IMF 조기 졸업은 결과적으로 김대중에 이은 노무현 정권 재창출의 사회 경제적 바탕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3년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국내외 우려가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3년 새 재정지출이 급증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0%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성장률은 끊임없이 추락했다. 경제위기도 아니고, 코로나 충격도 닥치기 전인 지난해조차 재정을 퍼부었어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2.0%에 턱걸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당선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국채 비율이 GDP 대비 국가채무이기 때문에, GDP가 무너지면 그 비율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면서 “채권을 발행해 GDP 성장률을 지탱하는 것이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했다.

한 술 더 떠서 여당 일부에서는 “국가부채 비율 60%도 괜찮다”는 말까지 나온다. 망국적인 발상이다. 이런 식이면 부채 비율 100%도 멀지 않아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주최 연설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침체에 직면했다”며 “저성장과 소득침체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 싱크탱크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도 서울경제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2~3년간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한(前漢)의 동중서(董仲舒)는 무제(武帝)에 올린 현량대책(賢良對策)에서 ‘옛사람의 말에 연못가에 앉아 물고기를 부러워하는 것보다 물러나서 그물을 짜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古人有言曰 臨淵羨魚 不如退而結網/ 고인유언왈 임연선어 불여퇴이결망)’라고 말했다.

우리 속담에도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는 말이 있다. 목적을 이루려면 먼저 그만한 노력의 과정이 따라야 하며 힘들이지 않고 바라기만 하면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된다는 말이다.

목하 정치권은 망국적인 포퓰리즘 경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기 위한 그물을 준비할 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디지털화와 일자리의 미래(future of work), 그리고 세계화의 퇴조(de-globalization)로 달라질 것이다. 정치권은 포스트 코로나 추세에 발 빠르게 대비해야 한다. 또한 포퓰리즘 정치를 막을 수 있는 ‘국가부채 제동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재정 준칙(fiscal rules)’이란 국가부채·재정적자 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 89국에서 재정 준칙을 운영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재정 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터키뿐이다. 독일에선 한 해 재정 적자가 GDP의 3%를 넘지 않도록 헌법에 명문화하고, 국채를 찍어 새 빚을 내는 한도도 GDP의 0.35%로 제한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 박근혜 정부가 국회에 제출했다가 정권 교체로 흐지부지된 ‘재정건전화법’(국가부채 비율을 GDP의 45% 이내, 연간 재정 적자를 3% 이내로 제한)을 21대 국회에서 다시 한 번 논의할 필요가 있다. 달러·유로화를 찍는 미·유럽과 달리 한국은 재정을 너무 쓰면 환율급등 우려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 실험에 따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문을 닫은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중소기업은 줄줄이 자진 폐업에 나선 상황이다. 정부는 소주성의 환상에서 깨어나 친시장적으로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노동 유연성을 끌어올리고 규제를 혁파해 고부가 서비스업을 키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재난지원금의 일회성 지원은 소비를 못 살리기 때문에 중소기업·자영업자에 써서 실업을 막아야 한다.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전 국민 대상 재난지원금 지원에 우려를 표명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현금 살포를 주장하는 정치인을 국민들이 선호한다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 국장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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