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쌀쌀한 아침이다. 추 경감은 절로 “엇, 추워”라는 말을 내뱉었다. 어제 하필 11시 50분의 일기예보 시간에 정전되어서 오늘 아침 기온을 알 수 없었다. 어제까지 따뜻해서 그것만 믿고 나왔는데 잘못 짚은 것이다. 추 경감은 코트 깃을 올렸다. 이미 20년이 지난 트렌치코트였다. 그러나 추 경감은 그것을 늘 새 것인 양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첫 사건을 해결하였을 때 감사의 보답으로 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피해자는 양복점 주인이었다. 추 경감은 그 옛일을 생각하곤 미소 지었다.

“아니, 어느 녀석이 이런 짓을 해 놓았지!”
추 경감은 순간 과거로부터 현실로 돌아왔다. 화를 내는 사내 앞에는 K사의 P차가 유리창이 부서친 채로 있었다. 사내가 그 차의 주인인 것은 불문가지이리라. 차 도둑이 들었군. 카 스테레오를 꽤 고급으로 만들어 두었던 모양이지.

추 경감은 그 일을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출근길을 재촉했다. 그러니까 나처럼 전철을 타고 다니라고. 우리 아파트에서 전철역은 또 얼마나 가까운가? 추 경감은 그렇게 한마디 충고를 해주고도 싶었지만, 그 말은 그저 꿀꺽 삼켰다. 강 형사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반장님도 차 한 대 사십시오. 그게 뭡니까? 현대는 기동성의 세계 아닙니까?”
“내가 기사까지 두고 뭐 하러 차를 사서…. 손수 몰아?”
“예? 기사요? 아니, 웬, 기사?”

“웬 기사는……. 왕 기사 강 형사가 있잖아.”
“허 참, 농담도 잘하시네요.” “농담이 아니라 자네도 웬만하면 걸어 다녀. 차는 주차장에 세워 놓고. 경찰마저 그렇게 교통 체증에 한 몫을 거들지 말고.”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차란 건 말이지요. 일단 몰고 다니면 저대로 그냥 둘 수가 없는 물건입니다. 중독성이 마약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일단 몰고 다니면 절대로 그만둘 수 없다는 저놈의 차, 안 사기를 오히려 잘한 것 아니겠는가.

추 경감의 두 번째 생각도 한 사내의 화풀이로 끝이 났다. 그 사내의 차도 조수석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거기에다 같은 K사의 P 차였다.

추 경감은 이런 일들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는 고급 차들이 즐비한데 고르고 골라 장난감처럼 생긴 P 차만을 부순다는 것이 정상적인 일일 리는 없는 것이다.

사고 지점은 아파트 단지로부터 큰길로 나가는 도로변이었다. 본래는 차를 정차시킬 수 없는 곳으로 되어 있지만, 워낙 차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이 주차를 허용하고 있다. 그런 점을 틈타 아파트 아래쪽에 사는 단독 주택의 주민들도 주차를 은근슬쩍 한다. 물론 아파트 입구에는 아파트 주민이 아닌 사람들이 주자한다면 타이어를 펑크 내겠다는 등의 험악한 경고가 적혀 있기는 하지만, 추 경감은 아직 그런 일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하필 P 차만 이웃 주민들이 세워놓은 것은 아닐 것이다. 누가 저런 짓을 했을까? 추 경감은 호기심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자동차에 대한 파손 행위 등의 범죄는 대체로 상대적 빈곤감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 근처에 다른 차가 없다면 모를까, 고급 차와 같이 놓인 소형차가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경우는 보지 못했다. 추 경감이 그 길을 내려오는 동안 5대의 조수석 유리창이 부서진 P 차를 보았고 실제로 사고를 당한 차는 모두 7대였다.

추 경감은 시경의 업무가 끝나자마자 아파트 앞의 파출소로 달려가 사건의 조사 과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파출소의 조사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3명의 용의자도 확보해 두고 있었다. 첫 번째 용의자는 같은 자동차 업체인 R사에서 최근 해고된 영업전무 강용균. 그는 P 차에 대항하기 위해 신기종인 T차를 개발했지만, 영업 시장에서 대참패를 당하고 말아 사표를 쓰고 말았다. 당연히 P 차에 대해서 원한이 가득할 것이다.

두 번째 용의자는 아파트 이웃 주민 중 한 명으로 배영석이라는 건달. 그는 그날 밤 만취한 상태에서 아파트를 향해 올라갔다고 한다. 아마도 술김에 방향 감각을 잃어서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경찰은 그가 P 차를 택시로 오인하고 타려고 하다가 사고를 낸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세 번째 용의자는 무리한 주장이 있는 것같이 생각되는 사람이었다. 바로 근처의 정비소 소장이었다.
그는 아파트 주민이기도 했다. 정호일이라는 40대 중반의 남자로 추 경감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용의 선상에 오른 이유는 그 사건으로 최종적인 이득을 보는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조수석의 유리를 갈기 위해서는 정비소를 찾을 수밖에 없으니까.

파출소 측에서는 고급 차의 유리를 파손하는 것이 더 큰 이득이 있지 않으냐는 추 경감의 질문에 고급 차는 수리점이 따로 있는 경우가 더 많으므로 변두리 정비소에 이익이 생길 여지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들의 알리바이에 대해서도 조사되어 있었다. 강용균은 밤 9시에 귀가해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간접적으로 아파트 경비가 그 증언을 뒷받침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절대적인 알리바이로는 볼 수 없었다. 배영석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알리바이가 없다. 그는 새벽에 아파트 경비가 발견하고 깨우지 않았더라면 동태가 되어 죽었을지도 몰랐다. 정비소 소장은 급한 수리가 들어온 차를 고치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증언은 종업원들이 뒷받침해 주었다.

추 경감은 직접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배영석은 용의자 명단에서 지워버렸다. 왜냐하면, PC와 같은 소형 자는 택시로 이용되지 않기 때문에 택시로 착각했을 것이라는 추리는 당연히 틀린 것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실제로 세워진 차 중에는 택시도 있었다.

“나는 어제 죽 텔레비전을 봤어요. 12시까지 전 프로를 다 보았지요. 실업자가 뭐 소일할 거리가 있습니까? 그저 텔레비전이나 보는 거지요.”

강용균은 싱글거리며 말했다. 추 경감은 다음에 정비소 소장 정호일을 만났다.
“어제 내도록 차를 고쳤음더. 마 누구한테든 물어보이소. 지 말이 거짓부렁이면 하늘서 날벼락이 칩니더 고마.”

정호일은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다. “차를 고친 뒤에 시험 운전을 하지는 않았나요?”

“그 기사 마, 했지만 결단코 아파트 쪽으론 안 갔습니다, 고저 정비소 한 바퀴 돈 것뿐이라여.”
추 경감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말했다. “잠시 전화를 쓰겠습니다.”
추 경감은 파출소에 전화해서 범인을 알려주었다.

 

퀴즈. 그 범인은

 

[답변 2단] 범인은 강용균. 강용균은 12시까지 털레비전을 보았다고 했지만 그 날은 11시 50분에 정전이 돼 있었다.

 


[작가 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