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배상 권고안 수용할 때 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금융감독원이 키코 피해기업 배상 권고안에 대한 은행들의 수용을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창환 기자]
금융감독원이 키코 피해기업 배상 권고안에 대한 은행들의 수용을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지난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키코 피해기업 관련 배상 권고에 대해 시중은행들이 받아들이지 않거나 이사회 재구성 및 코로나19 등의 사유로 결정 시일을 지연시키면서 사실상 거절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년여에 걸쳐 해당 사안을 조사해 온 금감원조차 이대로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뒤따른다. 이런 비판의 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금감원이 은행들의 배상안 수용이 있기까지 포기 않고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내비쳐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 피해기업들에 대한 배상 여부에 이목이 집중된다. 

 

은행들 배상안 수용해도 배임 관련 법적 문제 전혀 없어
금감원, 코로나19 및 이사회 구성 핑계 더 이상 안 돼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 2008년을 전후해 발생한 금융위기 상황에서 통화옵션계약(키코) 피해기업들의 분쟁조정신청에 대해 시중은행들의 불완전판매 책임을 인정하고 손해액의 일부를 배상하라고 조정 결정을 내렸다. 

당시 금감원 분조위는 “조사 내용을 토대로 논의한 결과, 대법원 판결로 키코 사건의 불완전판매 판단기준이 제시됐으나 은행과 감독당국 모두 피해구제 노력이 미흡했다”며 “임의변제가 가능한 점을 감안해 사회적 갈등 종결을 위해 조정안을 권고한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은행, 42억 원 배상 권고안 ‘나홀로’ 수용

이에 우리은행은 내부 논의를 거쳐 지난 1월 금감원으로 대영솔루텍과 일성하이스코에 각각 32억 원과 10억 원씩 총 42억 원을 배상하는 분쟁조정안 수용 결정을 통보했다. 한 달 뒤인 2월13일 해당 기업들을 대상으로 배상금 지급 계획을 전달하고, 지급 방식에 대한 합의에 들어갔다. 

같은 기간 산업은행을 비롯한 신한·하나·대구·한국씨티은행 등 나머지 5개 은행은 배상안 수용여부 결정을 두고 고민에 휩싸였다. 신한은행은 이사회 안건에 올리지 못하고, 하나은행은 결론을 내지 못했다. 5개 은행은 금감원에 수용을 위한 기한 연장을 요청해 지난 3월6일까지 결정해 전달하기로 했다. 

그러던 지난 3월4일 한국씨티은행이 이사회를 열어 금감원 분조위가 권고한 6억 원의 수용 거부 결정을 전달했고, KDB산업은행도 배상안 28억 원에 대한 법적 검토를 거쳐 ‘불수용’의사를 밝혔다. 이후 이틀에 걸쳐 하나은행과 DGB대구은행은 각각 코로나19와 은행연합체 논의를 이유로, 신한은행은 이사회 개최 미흡을 이유로 시일을 연기했다. 

이후 국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 증폭되고 은행들이 새로운 이사진으로 교체되면서 지난 4월 6일 신한‧하나‧대구은행은 나란히 금감원에 기한 연장을 요청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이사회 개최가 힘들고 권고안 수용 여부를 판단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이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9일 2주년 취임간담회에서 “(키코 문제는) 10년 이상 끌어서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며 “이걸 정리하고 가는 게 한국 금융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라고 시중은행들을 향한 배상 권고안 수용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달 들어 은행 세 곳은 다섯 번째 기일 연기를 요청하고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이사회 구성원 변경을, 대구은행은 코로나19 대응을 이유로 내걸었다. 일각에서는 세 곳 은행이 대외적으로는 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이미 권고안 ‘수용불가’ 방침을 세워놓은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고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권고안이라고 하더라도 감독당국의 결정을 은행이 거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온 나라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경제 살리기에 동참하자는 분위기다 보니 은행들의 역할이 커진 것도 사실”이라며 “금감원이나 금융위원회를 비롯해 정부 기관들이 은행에 요청 할 것이 많은 상황에서 서로 어떤 입장을 내밀기가 조금 불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코로나19 핑계 이후 은행 결정 두고 볼 것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기업지원이나 소상공인 지원 등 은행들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에 이를 종용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풀이다. 이에 은행들도 권고안 수용 여부를 연기하기에 수월한 타이밍이라고 정무적인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다만 은행들이 권고안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채찍뿐 아니라 당근을 함께 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분조위 조정안으로 불완전판매 부분의 30~40% 수준이 배상안으로 결정되긴 했으나, 이번 권고안에 대한 배상안을 은행들이 수용하면 뒤이어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키코 피해기업들에 대한 문제가 뒷단에 물려있어, 수월한 해결책이 제시될 수 있어야 배상도 가능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런 가운데 금감원이 키코 피해기업에 대한 배상 권고안을 은행들이 수용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선 윤석헌 금감원장의 키코 피해기업 배상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일부 은행들이 이슈화하고 있는 배상안의 배임 관련 부분도 ‘법적 문제가 전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오히려 지속적인 시일 연장 요청을 용인하는 것을 두고 일부 언론이나 업계의 ‘금감원이 손 놓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인내를 갖고 참고 기다리는 것일 뿐, 힘이 빠지거나 어느 정도 포기했다는 일각의 추측은 전혀 맞지 않다는 설명을 내놨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사외이사 교체라든가 코로나19 총력전이라는 이슈를 사유로 달았고 그간 이런 이슈가 굉장히 부각되기도 했다”면서 “점차 이것을 근거로 미루는 것은 힘들어질 것이므로 이달 이후 어떻게 결정 내리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기업이 배상을 받고 조금이라도 회복될 수 있다면 외부에서 금감원이 계속 연장해준다고 비판을 하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지만 피해 업체들에게 희망 고문을 할 수는 없다”며 “피해 기업들이 이미 10년이 넘도록 기다렸는데 한두 달, 1년 못 기다리겠나. 문제는 은행들이 조속히 배상안 수용 결정을 내리기를 원하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금감원의 배상안 수용 여부 결정을 미루고 있는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DGB대구은행 등 3곳은 분조위로부터 각각 150억 원, 18억 원, 11억 원의 조정금액을 권고 받았다. 

이창환 기자
shin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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