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국세청장 운명 중대기로

부산에서 시작된 ‘김상진 쓰나미’에 국세청이 송두리째 휘청하고 있다. 건설업자 김상진씨의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부산 지검은 정상곤 전부산지방국세청장이 전군표 국세청장에게 상납했다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막바지 보강수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검찰은 정 전청장이 전 청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6000만원 가운데 최소한 3000만원에 대해서는 돈을 준 시기와 장소 등 객관적인 정황과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과 법조계, 지역 정가에선 김상진 게이트가 겨눌 다음 타깃이 누가 될지를 놓고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세청 분위기가 무덤과 같다.

정상곤 전부산지방국세청장에 이어 전국표 국세청장까지 연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울청사는 물론 일선 세무서도 허탈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 동안 힘들게 쌓아온 국민들의 신뢰가 일순간에 허물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현직 국세청장이 ‘상납 비리’의 주범으로 확인된다면 그 충격은 한층 더 커질 전망이다.

한 인사는 “현직 국세청장이 뇌물 수수와 관련, 검찰 수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조직의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남길 것”이라며 “도저히 믿고 싶지 않다”고 분노를 나타냈다.

검찰 또한 상당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수사에는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무덤으로 변한 국세청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 전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국세청장이 홍콩 등에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장 집무실에서 인사 청탁 명목으로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세청장의 뇌물 수수도 충격이지만 그 이유가 인사 청탁 이었다는 것은 ‘인사 시스템’에도 적지 않은 구멍이 뚫려 있음을 시사하기에 충격파는 더욱 크다.

검찰은 현직 국세청장 소환이 사상 초유의 일인 만큼 금융계좌 추적과 주변 인물에 대한 조사 등에 있어 다양하게 수사를 진행중에 있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수사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며 “소환 문제는 한 번 조사하고 마는 문제가 아니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래도 전군표 믿는다”

국세청 직원들은 “아직까지는 믿고 싶다”며 마지막까지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전 청장은 1979년 공직 입문 이후 줄곧 조세행정 분야에서 근무하며 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안팎에서 신뢰가 두터웠다.

지난해 전 청장을 임명한 청와대도 “강한 혁신 의지와 뛰어난 업무추진력, 상하간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종합부동산세 집행을 차질 없이 진행해 왔다”며 “앞으로 탈루 소득에 대한 과세강화 등 국세청의 현안과제를 잘 처리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임명 이유를 설명했었다.

강원도 삼척 출생인 전 청장은 강릉고와 경북대 법대를 나와 행시 20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춘천세무서장, 국세청 감찰담당관,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 국세청 조사국장을 역임하는 등 국세청 안에서도 내노라 하는 인재였다.

전 청장은 최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신나간 사람의 진술 아니냐. 복잡한 김상진은 놔 두고 전군표만 남았다”며 “너무 앞서가서 싸움 붙이지 말라”고 일말의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표설’이 나오는 등 “이미 물 건너 갔다”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부산에서 불기 시작한 ‘김상진 쓰나미’ 속에서 전 청장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그 생존 여부에 따라 국세청의 운명도 좌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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