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퇴임 기자회견에 참석해 소회를 밝히고 있다. 2020.05.21.[뉴시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퇴임 기자회견에 참석해 소회를 밝히고 있다. 2020.05.21.[뉴시스]

 

[일요서울] 20대 국회와 함께 33년 정치인생을 마무리하는 문희상 국회의장은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177석의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게 통합의 정치를 당부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와 관련해 "사면을 겁내도 되지 않아도 될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이날 국회 사랑재에서 퇴임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치역정에 마침표를 찍게 된 소회를 밝히는 자리에서 "이번 21대 국회가 과감히 통합의 관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중에는 물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상당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전했다.

문 의장은 "모든 집권자들이 초장에 대개 적폐청산을 갖고 시작한다"며 "그런데 시종일관 적폐청산만 주장하면 정치보복의 연장이라는 세력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면 개혁 자체의 동력이 상실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만 문 의장은 "그것(사면)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 판단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그런데 그분(문 대통령)의 성격을 미뤄 짐작컨대 민정수석 때의 태도를 보면 아마 못할 것이라고 생가한다"고 했다.

임기를 2년 남긴 문 대통령에게는 "초심만 변치 않고 그대로 하면 된다. 그분은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야당 당사를 전부 방문했다. 그런 마음을 지금은 왜 못가지겠나. 더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여야정협의체를 왜 못만들겠나. 이럴 때일수록 더 만들어야 한다. 밀어붙일 생각하지 않고 합의를 도출하려는 생각을 하면 이럴 때보다 통합의 적기는 없다"며 "오만에 의해 하루아침에 몰락한 열린우리당의 경우를 보지 않았나. 수많은 사람이 당선돼도 어느 순간 궤멸하는 말 실수로 분열을 자초하고 망하는 지리멸렬을 많이 봤다. 오히려 지금은 통합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장단이 선출되면 6월은 통합으로 잡고 의장단과 상임위원장들을 다 (청와대로) 초청하고 (각 당) 원내대표를 초청해서 만나고 여야정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촛불 혁명의 완수를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문 의장은 "국정농단과 비선실세가 있던 게 분명하고 역사적으로 응징하려면 개헌으로 제도화해야 한다"며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으려면 내각제 뿐인데 국민이 권력을 전부 국회가 가져간다고 불신해서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래서 국무총리의 권한을 보완하면서 책임총리로 가자는 게 내 주장"이라며 "총리를 국회에서 2명을 뽑아 대통령이 1명 고르게 하고 실질적으로 내각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해임건의건와 임명제청권을 헌법에 있는 그대로 시행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1988년 평화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한지 33년 만에 정치 무대에서 퇴장하게 된 문 의장은 "아쉬움은 남아도 나의 정치 인생은 후회 없는 삶이었다. 하루하루 쌓아올린 보람이 가득했던 행복한 정치인의 길이었다"고 지난 정치 역정을 반추했다.

문 의장은 1945년 경기 의정부 출신으로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행정고시에 합격했지만 6·3학생운동 등의 경력이 문제가 돼 임용에서 탈락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정치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반독재 투쟁을 벌이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만나면서다.

문 의장은 "1979년 동교동 지하서재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을 처음 만난 날 그 모습이 지금도 강렬하고 또렷하게 남아있다"며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통일에의 꿈이 무지개처럼 솟아오르는 세상', 그 말씀이 저를 정치로 이끌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날 모든 것을 걸고 이뤄야할 인생의 목표가 분명해졌다. 그리고 1997년 12월19일 김대중 대통령님이 당선됐다"며 "수평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현실이 됐고 이로써 저의 목표는 모두 다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1992년 14대 총선 때 민주당 소속으로 의정부에서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한 문 의장은 15대 낙선을 제외하고 20대 총선까지 6선 의원을 지냈다.

DJ의 대통령 당선으로 모든 목표를 이뤘다는 문 의장은 그 이후의 인생을 '덤'이었다고 표현하면서도 "그런데 돌아보니 덤치고는 너무 후한 정치인생을 걸어왔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정무수석 등으로 일한 데 이어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대선기획단장을 맡아 당선에 기여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 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면서 당시 민정수석 문재인과 함께 참여정부 밑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당내 입지 구축으로 2005년 열리우리당 의장으로 선출됐고 2008년 18대 전반기 국회에서 부의장직을 지냈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이 참패한 이후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2016년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 경선에서 당시 정세균·박병석 의원과의 3자 대결에서 낙선했다가 20대 국회 후반기 의장 경선에 재도전해 마침내 국회의장 자리에 올랐다.

DJ의 대통령 당선일을 정치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날로 거론한 문 의장은 반대로 가장 슬픈 날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을 꼽았다.

그는 "당시 문 대통령이 전화를 해왔어.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그 말 한 마디에 어떻게 할지 아무 것도 모르겠더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회한과 자책이, 결국 우리가 지키지 못한것 아닌가 하는 애환이 지금도 내 가슴에 서려있다. 가장 슬프고 가슴 쓰린 날"이라고 돌이켰다.

문 후보는 후덕한 외모에도 정국 현안에 대한 분석력과 통찰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혁적인 성향의 의원들과 다소 보수적인 중진들과의 소통에도 능해 여야 모두에 두루 지인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난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공수처 등 검찰개혁과 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해 처리하는 과정에서 야당으로부터 국회의장이 편파적으로 의사진행을 했다며 거센 공격을 받기도 했다.

지난 총선에서 아들 문석균씨의 의정부 출마에 따른 지역구 세습 논란으로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 의장은 "내가 어떻게든 아들을 출세시키려고 내 위치를 이용한다는 말을 들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쓰라림을 느꼈다"며 "우리 아들은 어느 순간 애비 덕이나 보려는 사람이 됐다. 그러면 그 당은 애비를 생각해 아들 공천을 주는 당이냐. 공당이 스스로를 모멸하는 것인데 동지인 사람들도 그 논리에 함몰되더라"고 토로했다.

문 의장은 퇴임 후에도 정치원로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서있는 지금, 나는 몹시 떨린다. 국회의장직 뿐만 아니라 나의 인생 자체였던 국회와 정치를 떠난다는 두려움일 것"이라며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늘 그렇듯이 다가올 낯선 미래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길을 가고 싶다는 설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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