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엔 ‘친필 휘호 동판’, 국사편찬위에는 ‘기념식수’가

전두환 전 대통령 [뉴시스]
전두환 전 대통령.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5.18 40주년을 맞아 전 대통령인 전두환 씨 ‘흔적 지우기’가 본격화됐다. 기념 취지에 맞춰 여러 지자체 등이 나선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사실상 ‘일회성’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5.18 기념일이 지났으니 다시금 잠잠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아직도 국가를 상징하는 많은 곳에 내란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확정 받은 전 씨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시민단체는 설명한다. 일요서울은 전국 곳곳에서 실행되고 있는 ‘전 씨 흔적 지우기 프로젝트’를 살펴보고,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일회성에 그치면 안 돼현충일에 다시 목소리 높일 것

5.18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으며 당시 최고 책임자인 전 씨 흔적 지우기가 곳곳에서 이뤄졌다.

충북도는 대통령 별장으로 이용되다가 지난 2003년 일반에 개방된 ‘청남대’ 내 전 씨 동상, 산책로 등을 최근 철거하기로 했다.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확정 받은 전 씨를 예우하는 것이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의 건설 시점은 제5공화국 시절인 1983년이다. 청와대 본관 모습을 60% 크기로 본뜬 대통령기념관은 지난 2015년 6월 준공됐다.

당시 전 씨가 대청댐 준공식이 참석해 ‘이런 곳에 별장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건설 계기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청남대는 역대 대통령의 여름 휴가 장소로 이용되다가 지난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일반에 개방됐다. 또 관리권은 충북도로 넘어갔다.

5.18 기념식

애국가 논란?

이번 5.18 기념식장에서 상영된 애국가 1절 영상이 논란이 됐다. 영상에 전 씨 친필 국립대전현충원 ‘현충문’ 현판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영상 중 애국가 1절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소절에서 전 씨가 1985년 직접 쓴 국립대전현충원 현충문 현판이 나왔다. 옥에 티로 남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해당 현판은 최근 보훈처가 교체하기로 결정한 현판이다. 보훈처의 이 같은 결정에는 시민단체의 노력이 있었다. 바로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라는 시민단체가 그 주인공이다.

국립대전현충원의 현충문 현판은 전 씨가 쓴 글씨로 현충원의 정문 격인 현충문에 걸려 있었다. 지난해 8월 문화재제자리찾기는 현충문 글씨가 전 씨의 필적임을 확인하고, 보훈처에 철거를 요청한 바 있다.

이에 국가보훈처는 교체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시점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가 최근 교체를 결정한 것이다.

지난 8일 보훈처는 현충원 준공을 기념해 현충문 현판과 헌시비를 교체한다고 밝혔다. 새 현판과 헌시비의 서체는 지난해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안중근체’로 결정됐다. 현판은 조만간 교체될 전망이다.

남극 과학기지에 있는 전 씨의 글씨 ‘세종’. 문화재제자리찾기 조사 결과 1988년 전 씨가 쓴 글씨로 확인됐다. [사진 출처=해양수산부, 문화재제자리찾기 제공]
남극 과학기지에 있는 전 씨의 글씨 ‘세종’. 문화재제자리찾기 조사 결과 1988년 전 씨가 쓴 글씨로 확인됐다. [사진 출처=해양수산부, 문화재제자리찾기 제공]

전 씨 흔적은 남극에도 존재했다. 한국 최초의 남극 연구기지인 세종과학기지(세종기지)에 전 씨 친필 휘호가 있던 것이다. 최근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이를 확인, 철거를 요청해 32년만에 제거된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5.18 40주년을 앞두고 전 씨 흔적을 찾는 과정에서, 전 씨가 1987년 ‘세종’이라는 글씨를 써 보냈고, 1988년 남극 세종기지가 세워지면서 친필을 양각한 동판이 기념비에 부착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는) 측에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상징인 남극에 기념비로 남겨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해수부는 5.18 40주년을 맞아 글씨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전두환의 기념식수 사진. [사진 출처=국가기록원]
전 씨의 국사편찬위 기념식수 사진. [사진 출처=국가기록원]

“현충원 거짓말 드러나”

경기도 과천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사편찬위)에도 전 씨 기념식수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문화재제자리찾기가 국가기록원에서 전 씨 국사편찬위 기념식수 사진을 발견해 교육부에 현존 사실을 확인한 결과, 아직까지 관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나무는 지난 1987년 3월23일 전 씨가 국사편찬위 방문, 기념식수된 것으로 수종은 소나무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기념식수 이전 또는 철거를 제안했다.

5.18 4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전 씨 흔적 지우기가 이뤄진 가운데, 정부 부처가 아직도 많이 존재하는 전 씨 흔적을 바로잡을지 주목된다.

문화재제자리찾기 구진영 연구원은 일요서울에 “5.18 기념일 전에는 남극 같은 경우처럼 타깃이 될 것 같으니까 바로 떼버렸는데, 시의성이 지나면 (해당 정부 부처들이) 밍기적거린다. 현재는 국사편찬위에 있는 기념식수 철거, 현충원 현판 교체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국정감사도 기다리고 있다. 다들 초선 의원들이라서 열심히 추진하실 것 같다. 전 씨는 내란죄로 처벌되신 분이고, 대통령 예우가 박탈된 분이지 않느냐. 아직까지도 전 씨 흔적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더 큰 문제는 흔적을 정리하지 않은 곳이 우리 국가를 상징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현충원의 경우는 국가 상징성을 갖고 있고, 국사편찬위 역시 우리 역사를 기술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이런 것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남극까지 갈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면서 “이번 (청남대) 동상은 사실 작년에 결정이 났다고 한다. 그러나 시의성이 있다 보니, 마치 이번에 결정한 것처럼 나오는데, 동상과 산책로는 지난해에 결정된 상태였다고 들었다. 올해 40주년을 앞두고 결정된 거는 다 우리(문화재제자리찾기)가 했던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씨가 현충원에 나무를 심었는데, 죽어서 다시 심은 것이 숨겨져 있다는 내용이 확인됐다. 현충원이 금송(전 씨 기념식수)과 관련해, 크게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나무 밑에다가 전 씨가 심었다는 기념식수 표지석이 최근까지 계속 있었고, 새 나무를 심은 것이 확인 결과 드러났다”면서 “현장 확인차 방문했을 때 조경 담당자에게 ‘금송이 왜 이렇게 작은가’라고 말했더니 ‘현충원 습하고 나무가 잘 안 자라는 환경이라...’고 답변하더라. 그러나 저희 대표님이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물어보니, 그때서야 전 씨가 심었던 나무는 죽고 새로 심었다고 하더라. 계속 현충원은 전 씨의 나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처음부터 그 나무가 죽었다고 얘기안하면서, 다른 핑계를 댔다는 점은 숨기려고 했던 것 아닌가. 이런 것도 다시 지적해서 뽑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일요서울에 “아직 전 씨의 흔적이 많이 있는데 해결이 잘 안 된다. 지자체들이 사소한 것을 추진해서 그렇다. 우리가 하는 것은 국가 표상을 얘기하는 거다. 국가 상징에 있는 전 씨 흔적은, 이번에 대통령이 5.18이 헌법정신에 들어가야 한다는 취지로 말씀도 하신 만큼 사라지는 게 맞다”면서 “지자체들이 하는 것은 일회성이다. 5.18이 지나면 더 이상 추진이 안 되는 것들이지 않느냐. 우리는 그런 거 보다, 국가 상징성이 있는 곳에 있는 남아 있는 흔적들을 그때그때 시점에 맞춰 문제제기를 하려고 한다. 역사의 정통성이 있는 곳에 내란죄로 처벌받은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혜문 대표는 또 “현충원 금송은 아직도 해결이 안 됐다. 5.18은 지났고, 현충일 때 우리가 크게 한번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면서 “사소한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국가 상징성에 맞지 않는 것들이다. 꼭 전 씨에 대한 것만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들, 전 씨와 관련된 점을 계속해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