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현 당선 위해 안상수 뇌물수수·사기 혐의 고소’ 의혹

유상봉 씨 [뉴시스]
유상봉 씨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남긴 후폭풍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민경욱 의원을 필두로 한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연일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전 이사장은 기부금 사용처 논란에 휩싸이며 국회 입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171표 차이로 승부가 갈린 인천 동구미추홀을 선거구 역시 잡음이 일고 있다. 과거 건설 현장 간이식당 운영권을 미끼로 사기 행각을 벌이며 ‘함바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유상봉(74)씨의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유 씨는 복역을 마치고 교도소를 나선 직후 곧바로 경찰에 체포됐다.

건설 현장 간이식당 운영권 미끼 사기 행각 벌인 인물
출소하자마자 체포됐지만 이틀 만에 석방, 불구속 입건

유 씨는 지난 2010년부터 경찰 간부와 공기업 경영진, 건설사 임원 등에게 뒷돈을 건네고, 함바 운영권을 미끼로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구속됐다 풀려나기를 반복했다. 2012년에는 ‘신축 공사장 식당 운영권을 위탁받게 해 주겠다’는 거짓말로 박 모씨에게 9억2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를 받았다. 이어 2013년 7월에는 ‘강원도 동해시 북평공단 STX 복합화력발전소 건설현장 식당을 수주해 주겠다’고 속여 윤 모씨에게 2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로 기소됐다.
당시 1심은 윤 씨를 상대로 한 사기 혐의에 징역 2년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박 씨에 대한 혐의에는 “피해가 상당 부분 변제되고,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는 등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점을 고려했다”면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어 2심 재판부는 “윤 씨와 관련해서는 종전에 실형 전과가 있고 누범에 해당하는 점을 고려해 법률상 선처가 불가능하다”면서도 “윤 씨와도 합의한 정상을 고려해 형을 감축한다”며 징역 1년2개월로 감형했다. 박 씨 관련 혐의에 대한 판결은 1심과 같았다. 유 씨와 검찰은 모두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유 씨와 검사의 상고는 이유 없다”면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유 씨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불러왔다. 당시 유 씨에게 ‘함바’ 운영권을 알선해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고위공직자들이 줄줄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은 이 혐의로 기소돼 지난 2012년 징역 3년 6월의 형을 확정 받았다. 경찰청 경무국장과 울산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 인사들 여럿이 연루되며 ‘함바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유 씨는 교도소 안에서 자신에게 금품을 받은 고위공직자와 유력인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진정서를 제출했다. 유 씨는 이와 관련해 한국일보에 “(뇌물) 액수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최소 500억원 이상은 될 것”이라고 주장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유 씨가 ‘함바 브로커’라는 별명을 넘어 ‘함바왕’으로 불리게 된 이유다.

세상 떠들썩하게 했던 ‘함바왕’
인천 지역 선거 개입했나

복역을 마친 유 씨는 지난 17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 구치소를 나선 뒤 곧바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번에는 사기가 아닌 ‘선거 개입’ 혐의였다. 인천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다음 날인 지난 18일 유 씨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유 씨는 지난 4·15 총선을 앞두고 인천 동구·미추홀을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윤상현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안상수 미래통합당 의원을 허위 사실로 검찰에 고발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가 검찰에 제출한 고소장에는 안 의원이 2009년 인천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유 씨에게 함바 수주 등을 도와주겠다며 20억원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 씨는 또 윤 의원 측의 도움으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함바 운영 도움을 미끼로 수 천 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도 받는다. 인천 동구·미추홀을 지역구 선거에서는 윤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남영희 후보를 171표 차이의 접전으로 따돌리고 당선된 바 있다. 경찰은 유 씨 체포에 앞서 지난 14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 씨와 윤 의원의 보좌관 A씨, 유 씨 아들 B씨 등 6명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기도 했다.

보좌관 A씨, 유씨에게 “함바 수주 돕겠다”
고소 부추긴 혐의

윤 의원의 보좌관 A씨는 유 씨에게 ‘함바 수주를 돕겠다’며 고소를 부추긴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A씨와 B씨 등이 연락하고 만난 정황이 포착됐다. 유 씨 측은 이러한 상황을 여러 차례 최측근 C씨에게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유 씨가 C씨에게 보낸 편지에는 ‘건설현장 4곳의 함바를 수주하도록 도와줄 것으로 약속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C씨가 함바 수주를 위해 유 씨에게 1억원가량을 전달했는데, 함바 수주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유 씨가 C씨에게 ‘윤 후보 측 도움을 받아 곧 함바 수주가 가능하니 기다려 달라’는 취지의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또 B씨와 C씨가 선거 직전 나눈 통화에서는 ‘(안상수 후보) 고소 기사가 7개나 났다’, ‘윤상현이 당선될 것이다’, ‘당선 안 되면 다 죽는 거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 측은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2015년부터 안상수가 처벌받도록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고소 등을 해왔다”라면서 “알 수 없는 힘 때문인지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았고, 이목을 끌 수 있는 선거 기간에 맞춰 다시 고소를 하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안상수 처벌을 위해 경쟁 후보 윤상현 측에 아버지가 먼저 도움을 요청해 보좌관으로부터 조언을 받은 게 전부”라고 강조했다. 윤 후보 당선 목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라고 했다. 윤 후보 측이 함바 수주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 윤 후보 측이 들어주기 불가능했던 약속”이라고 선을 그었다. B씨는 “아버지가 건강이 매우 안 좋은 상태”라면서 “마음만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나와 A보좌관이 거짓으로 ‘함바 수주를 도와주겠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 후보 측도 신중한 입장이다. 윤 당선인의 측근은 “경찰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코멘트를 하기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정치적 목적의 수사가 의심 된다”고 전했다. 유 씨에게 고소당한 안 전 후보 측은 “돈을 받은 적 없다”면서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유 씨 등을 고소했다”고 반박했다.

윤 후보 측 “정치적 목적 수사”
안 전 후보 측 “무고·명예훼손으로 유 씨 고소”

결국 유 씨와 아들 B씨, 윤 의원 보좌관 A씨 등은 지난 21일 형사 입건됐다. 경찰은 당분간 추가 소환 조사 없이 유 씨 부자 등 피의자 3명의 진술 조서와 참고인 2명의 진술을 비교해 혐의 입증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출소 당일 체포됐던 유 씨 역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석방했다. 경찰 관계자는 “압수수색 대상자 6명 가운데 5명을 조사했고 당분간은 관련자들을 소환할 계획이 없다”면서 “유 씨의 구속영장 신청 등도 추후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선거 개입 혐의와 관련한 수사 기밀이 사전에 유 씨 측에게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라는 점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유 씨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기 직전 피내사·압수수색 영장 신청 등 수사 기밀이 이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찰은 기밀 유출 경로를 수사 중이다. B씨가 수사 기밀 유출자로 지목한 ‘광역수사대 친구’가 누구인지가 포인트다. 이번 사건과 무관한 광역수사대 직원이 B씨에게 정보를 넘겼다면, 이 직원은 어디서 기밀을 전달 받았는지 밝혀야 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B씨가 “(알고 지내던) 기자 2명 한테서도 들었다”고 말해 해당 기자들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경찰청에서 사건을 배당받아 내사를 진행했던 인천경찰청 지수대와 지휘 라인도 유출 경로가 될 수 있다. 경찰에서 영장 신청을 받아 법원에 청구한 인천지방검찰청도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자칫 사법부를 또 한 번 뒤흔들 스캔들이 터질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몇 년 전 세상을 뒤흔들었던 ‘함바 브로커’가 이번에는 ‘총선 브로커’로 돌아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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