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 채운 마네킹이 성인용품?…전 세계 망신살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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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중국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지도 여러 달이 지났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수많은 분야가 타격을 입었는데, 스포츠도 그중 하나다. 특히 축구가 삶 그 자체로 평가받는 유럽에서는 벌써 3달 가까이 대부분 리그가 중단된 상황이다. 반면 코로나19 사태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대한민국에서는 지난 8일 K리그가 개막했다. 축구 없이는 살 수 없는 유럽인들은 K리그 개막 소식에 흥미를 드러냈고, 실제로 K리그가 ‘축구 종가’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생중계되는 기이한 장면도 연출되고 있다.

중계 카메라에 잡힌 ‘마네킹’, 관중이 ‘리얼돌’ 의혹 제기
프로축구연맹, FC서울에 제재금 ‘1억원’ 역대 최고액 부과

이번 시즌 K리그는 개막 직후부터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유럽 무대에서 10여 년간 활약한 ‘블루 드래곤’ 이청용이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화려한 복귀전을 치렀다. ‘절대 1강’ 전북 현대는 막강한 스쿼드를 앞세워 수원 삼성을 꺾었고, ‘천재’로 불리는 김병수 감독이 이끄는 강원FC는 개막전에서 FC서울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외신 역시 K리그 결과와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며 관심을 드러냈다. 전 세계에서 K리그를 관람한 축구 팬의 숫자는 무려 1천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개막 후 두 경기 만에 뜻밖의 악재가 터졌다. 사건은 지난 17일 벌어졌다. 이날 FC서울은 광주FC를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불러들여 2020 하나원큐 K리그1 2라운드 경기를 펼쳤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기는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FC서울 구단 측은 텅 빈 경기장이 신경 쓰였는지 마네킹과 응원 플래카드를 가져다 놓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마네킹들은 경기 도중 중계 카메라에 여러 차례 잡히며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그런데 경기를 지켜보던 한 축구팬이 마네킹의 모습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팬은 ‘마네킹이 아니라 리얼돌 같다’, ‘몸매가 과하게 부각되는데, 저런 마네킹이 있느냐’ 등의 의혹을 내놨다. 곧이어 마네킹이 착용한 머리띠와 들고 있는 플래카드 속 업체를 검색해보니 성인용품 관련 업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실제 구글을 통해 해당 업체를 검색해보면 콘돔과 자위 도구 등 성인용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인방송 BJ의 이름이 들어간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마네킹이나 특정 신체부위가 과도하게 부각된 제품도 확인되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팬이 ‘리얼돌’ 의혹 제기하자
FC서울 “리얼돌 아닌 리얼마네킹” 해명 논란

FC서울의 해명은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아프리카TV로 중계를 지켜보던 한 팬이 ‘리얼돌’ 의혹을 제기하자 FC서울 측은 “리얼돌이 아닌 리얼마네킹입니다”라고 해명했다. 팬들이 말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성급한 해명이었다. SNS등에서 팬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FC서울은 결국 공식 사과문을 재차 게재했다. ‘팬 여러분들께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에서 FC서울은 “17일 경기 때 설치했던 응원 마네킹과 관련, 팬 여러분들께 깊은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이날 설치된 마네킹들은 기존 마네킹과는 달리 재질 등이 실제 사람처럼 만들어졌지만, 우려하시는 성인용품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제품들이라고 처음부터 확인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달콤’이라는 회사에서 제작했고, 의류나 패션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라고 소개를 받았고 몇 번이고 성인용품이 아니라는 확인과정을 거쳤다”며 “다만 ‘달콤’이라는 회사에서 BJ를 관리하는 ‘소로스’라는 업체에 기납품했던 마네킹을 되돌려 받고 돌려받은 제품들을 이날 경기에 설치하는 과정에서 성인제품과 관련이 있는 ‘소로스’의 이름과 이들이 관리하는 특정BJ의 이름이 들어간 응원문구가 노출이 됐다. 이 부분에 대해 저희 담당자들이 세세하게 파악하지 못한 점이 문제였다. 이점은 변명 없이 저희의 불찰”이라고 설명했다. 성인용품과는 관련 없는 ‘달콤’이라는 회사에서 제작한 마네킹을 설치했는데, 이 과정에서 성인제품과 관련 있는 업체에 기납품됐던 마네킹이 섞여 들어왔고, 이게 중계카메라에 노출됐다는 설명이다. FC서울은 “처음 관련기관에서 해당 업체를 소개받을 때만 해도 코로나 시대애 무관중으로 경기가 열리는 만큼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요소를 만들어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의도로 미팅을 진행했다”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FC서울을 사랑하고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죄송스러운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향후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다양한 진단과 검토를 거친 후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지 고민하겠다. 더불어 향후 재발 방지에 대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사과문을 맺었다. 하지만 마네킹 제작 업체로 지목된 (주)달콤의 홈페이지에는 ‘리얼돌을 비롯한 성인용품을 개발·제조하는 브랜드’라는 소개 문구가 정확히 적혀 있다. 이 때문에 FC서울 측이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영국 ‘더 선’ 등 외신 잇단 보도
FC서울 측, 업체 고소

FC서울의 ‘리얼돌 논란’은 외신에도 발 빠르게 보도됐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 선(The Sun)’은 ‘FC서울이 성인용품 업체 광고로 리얼돌을 빈 경기장에 채운 것에 대해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더 선은 “팬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만약 그렇다면 큰 수치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덧붙였다. 야후 스포츠는 ‘망신: 수치스러운 리얼돌 실수에 책잡힌 축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관중을 마네킹으로 대체하려는 K리그의 기괴한 발상이 ‘리얼돌’을 관중석에 올리는 역효과를 냈다”고 지적했다. 영국 스포츠 매체 ‘스포츠 바이블’은 ‘소름끼치는 인형’이라고 비판했다.
FC서울은 이미지는 물론 금전적 타격도 입게 됐다. 프로축구연맹이 지난 20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FC서울에 대해 제재금 1억원의 중징계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연맹은 FC서울이 고의로 리얼돌을 배치한 게 아님을 인정하면서도 사실 확인을 게을리 한 점을 문제 삼았다. 연맹은 또 “리얼돌이 이미 지난해부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고 성상품화의 매개체가 되고 있으며, 여성을 도구화함으로써 인간 존엄성을 해친다는 비판과 국민적 우려가 있었다”라면서 “국민 눈높이에서 함께 호흡해야 할 프로스포츠 구단이 리얼돌의 정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이를 경기장에 전시한 것은 K리그 구단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행위”라고 징계 이유를 설명했다. FC서울이 받은 1억원의 제재금은 몇 년 전 ‘심판매수 의혹’ 사건 당시 전북 현대가 받은 제재금 액수와 동일한 수준이다. 이에 FC서울 구단 측도 마네킹 업체를 부당이득과 사기,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하며 법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FC서울 측은 “마네킹 공급업체의 기망 행위에 대한 경찰 수사를 의뢰했으며 정확한 진상 조사를 위해 수사에 적극 협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 사태와 관련, 내부 직원에 대한 책임 묻기에도 나섰다. FC서울은 “업무 관련자들의 업무 소홀에 대해 대기 발령 등의 문책 조치를 했다”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여성단체 “FC서울 엄중하게 책임져야”

다만 사태 수습을 위한 FC서울의 노력에도 ‘리얼돌 사건’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성단체 측에서 서울에 대한 비판 성명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사단법인 한국여성의 전화는 논편을 통해 “‘리얼돌이 아니다’라는 FC서울과 해당 업체의 해명은 문제점이 무엇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식 밖의 해명”이라면서 “관중석의 마네킹 대부분을 여성으로, 심지어 ‘리얼돌’을 세워둔 FC서울은 여성 팬들을 도대체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여성에 대한 멸시와 모욕을 ‘재미있는 요소’로 만들고자 했다는 변명을 도대체 언제까지 들어야만 하는가”라며 “관중석에 리얼돌이 등장한 날은 5월 17일,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의 4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FC서울을 비롯한 프로축구연맹, 운영사인 GS스포츠, 기타 책임 주체들은 본 사건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지고 사회의 일원이자 동료 시민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정립하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세계인의 스포츠’로 도약할 기회를 엿보던 한국 K리그는 ‘리얼돌 사태’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단순히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커져버린 ‘리얼돌 사태’가 어떤 결과를 남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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