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준이 손바닥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그럴듯한 추리를 했다.
“아, 가게 문이 열리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소년이 낚시 가게 문을 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얼른 배에서 내려섰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두 사람의 차림새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소년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복장으로 봐서 낚시하는 사람 같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냥 구경 좀 하려고요.”

수원은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낚시에 쓰이는 각종 도구가 가게 안을 꽉 메우고 있었다. 겉에서 보기보다 훨씬 넓었다.
“학생이 장 사장 아들인가?”

영준이 소년을 보고 물었다.
“알바생인데요. 우리 사장님을 아시나요?”
소년이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응. 좀 아는 분인데... 안 계셔?”
영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수원이 능청을 부려 말을 받았다. 영준은 그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안 계세요. 멀리 나가셨어요.”

소년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럼 언제 오시는데? 우리도 멀리서 왔거든.”
수원이 다시 능청을 부렸다.
“당분간 안 오실 거예요.”

“그럼 여기서 같이 낚시 다니던 손님들은 다 어디로 갔지?”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서울 손님들요?”
“으, 응.”

“해운대 조선빌라호텔에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잘 몰라요.”
소년의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가게를 나오면서 영준이 한마디 했다.
“어쩌면 그렇게 시치미를 뚝 떼고 거짓말을 잘합니까?”
수원은 멋쩍게 웃어보였다.

“속을 알 수가 없는 분이군요.”
영준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두 사람은 다시 지프를 타고 조선빌라호텔로 갔다. 수원은 사건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것 같아 점점 흥미로워졌다. 

호텔에 다다르자 영준이 앞장서서 프론트로 걸어갔다.
“낚시 클럽 회원들, 몇 호실에 묵고 있습니까?”
“안토니오 낚시클럽 말씀이신가요? 외국 분들과 함께 온.”
프론트 직원은 금세 알아들은 듯 대답했다.
“외, 외국 사람이요?”

영준이 말이 막히자 수원이 얼른 나섰다.
“네. 그 팀, 아직도 있나요?”
“아뇨. 예약을 취소하고 모두 떠났어요.”
프론트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시겠죠?”

“당연하죠.”
“명단을 좀 보여 줄 수 있나요? 미국서 온 지인이 그 클럽 회원인데 이름 좀 확인하려고요.”

수원이 거짓말을 하자 영준이 슬그머니 한 걸음 물러섰다.
“예. 잠깐만요.”
직원이 컴퓨터에서 명단을 검색했다. 곧 화면에 명단이 떴다. 수원은 목을 길게 빼고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봤다. 제일 앞의 이름이 영어로 돼 있었다.
“아, 클라크 혼자 왔구나.”

“찾는 분 맞나요?”
직원이 수원을 쳐다보았다.
“예. 맞아요. 그 명단 좀 출력해 주세요.”
수원은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건 좀 어렵겠는데요. 고객의 인적 사항을 노출시켜선 안 됩니다.”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수원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몇 초 동안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럼 할 수 없죠.”

수원은 직원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자리를 떴다.
“자, 그럼 주 차장님. 가 볼까요?”
수원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대로 가자고요?”

“네, 알아낼 건 다 알았으니 가야지요.”
“뭘 알아냈다는 말씀입니까?”
“안토니오 낚시클럽 회원들 신상정보 말이에요. 제가 사진처럼 화면을 찍어서 기억하는 능력이 있거든요. 영상 기억법이라고나 할까?”
“야, 대단하십니다. 거짓말도 수준급이시고요.”

영준은 두 손 드는 시늉을 해 보였다.
“발전소 안전에 도움이 된다면 그 정도 거짓말이야 문제가 되겠어요?”
수원은 당당하게 말했다.

운전석 옆자리에 오르자 수원은 핸드백에서 메모지를 꺼냈다. 그 위에 조금 전 호텔 컴퓨터 모니터에서 본 세 사람의 신원을 메모했다.
“그 사람들이 장 안토니오와 한패일까요?”
영준이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물었다.
“분명 뭐가 연관이 있을 거예요.”

수원과 영준이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당번 직원 외에는 모두 퇴근했다. 영준도 수원을 태워다 주고는 볼 일이 있다며 가버렸다. 결국 수원만 홀로 사무실에 남았다.

수원은 조선빌라호텔에서 알아낸 투숙객 명단을 적은 메모지를 꺼냈다. 모두 세 명이었다. 한 사람은 미국 국적의 클라크 테일러, 나머지 두 사람은 조명진, 이경만이었다. 모두 30대였다.

수원은 매우 중요한 단서를 입수했다고 생각했다.
수원은 안토니오 2호에서 가져온 봉투도 꺼내 보았다. 휴대폰 비슷한 물건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분명 휴대폰은 아니었다. 숫자 버튼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물건을 작동할 때 쓰는 물건인 것 같았다.
‘TV 리모컨?’

분명 그것도 아니었다.
수원은 물건이 들어 있던 봉투를 털어 보았다. 명함만한 쪽지가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쪽지에 무언가 쓰여 있었다.
‘A.’

동그라미 안에 알파벳 첫 글자가 적혀 있고, 숫자가 함께 쓰여 있었다.
‘87452’
다섯 자였다.

수원은 한참 이리 저리 궁리를 해 보았다. A는 안토니오의 약자인 것 같았다. 안토니오 낚시클럽을 말할 수도 있었다.
‘아나톨리?’

그때 장 안토니오가 가지고 있던 지도 뒷면에 ‘Anatoly’라고 적혀 있던 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단어 역시 같은 A자로 시작되고 있었다.
수원은 생각에 잠긴 채 자신도 모르게 쪽지에 적힌 숫자대로 버튼을 눌러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중대한 실수였다.
“쾅! 쾅!”

갑자기 밖에서 굉장한 폭음과 함께 섬광이 번쩍였다. 엄청난 폭발이었다. 사무실 안에 있는 수원의 귀가 멀 정도였다.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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