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對중국 반도체 수출 빨간불 켜지나

화웨이를 앞세운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대중국 수출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화웨이가 제조한 스마트폰. [이창환 기자]
화웨이를 앞세운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대중국 수출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화웨이가 제조한 스마트폰.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화웨이와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식을 줄 모르고 연일 달아오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화웨이 관련 제재가 지속되자 맞대응 카드를 내밀 전망이다. 중국 내 미국 기업의 사업 허가 취소나 유통 금지 관련 제재를 가하면서 미국 정부의 압박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생산 공장을 둔 애플과 보잉사 등을 상대로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중국 내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애플을 내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아울러 양국의 대립이 국내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클 전망이다. 화웨이에 제공하던 반도체 부품 공급을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반도체 부품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미국 기술 포함된 부품 수출 막아…화웨이 제재 강도 높여  
베트남 및 인도 등 공장으로 탈(脫)중국 시도하는 ‘애플사’

 

2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화웨이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우리나라로부터 수입해 가는 부품은 연간 12조 원이 넘어간다. 국내 기업으로부터 반도체, 카메라 모듈 등 스마트폰 주요 부품을 수입하는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와 압박에 생산량을 줄이면 그만큼 국내 기업에도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화웨이는 삼성전자에게 글로벌 주요 5대 고객사 가운데 하나다. 삼성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내 반도체 생산라인도 운영하며 지속적으로 확대 계획을 갖고 있다. 

SK하이닉스도 대중국 매출이 전체의 절반 수준을 차지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중국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운영하고 현지에 13개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제재 시작, 화웨이 및 계열사 68 곳

지난해 5월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국가안보 우려를 이유로 거래 제한 명단에 올렸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과 북미, 유럽 등의 국가에 차례대로 화웨이 제품을 구매 또는 사용하지 말고, 거래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화웨이는 즉각 반박에 나서면서 스페인의 검증기관 E&E를 통해 국제인증 절차를 신청했다. 화웨이는 지난 9년간 보안 기준을 미달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주장하며 국제표준(ISO 15408)에 따른 제품 평가를 받았다. 국제표준 검증은 관련 국가에서 인증 받은 것과 동일한 자격이 부여되며, 화웨이는 그간 업계에서 가장 높은 4단계 검증 통과를 이어왔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5일 화웨이가 미국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 또는 관련 부품를 공급받지 못하도록 수출 규정을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개정안은 미국 기술을 조금이라도 포함하고 있는 부품을 생산하는 해외 기업에도 적용돼 만일 특정 부품을 화웨이에 제공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처음 화웨이 제재안을 우리 정부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을 때만 하더라도 우리 정부는 개별 기업의 상황에 맞게 대응할 것을 권고해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당시 화웨이 측은 한국으로 달려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관계 기업들을 차례로 만나고 “부품 공급을 유지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수위를 높여가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

하지만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번에 미국 상무부가 개정하겠다고 선언한 규정이 정말 적용되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대중국 부품 판매가 정말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나온다. 

국내 반도체 부품사 한 관계자는 “반도체나 관련 부품에 미국의 기술력이 단 하나라도 포함되지 않은 반도체 부품은 찾기 힘들 것”이라며 “미국이 정말 제대로 화웨이 제재안을 생각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는 퀄컴을 비롯한 미국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같은 핵심 반도체 부품을 구하기 힘들어졌다. 유일하게 대만의 TSMC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계획된 미국 상무부의 개정안에 따라 이마저도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까지 넓게 적용되면 화웨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관련 업계 전문가는 취재진에게 “화웨이의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이어서 5G를 기준으로 볼 때 압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다”며 “5G의 글로벌 상용화가 시작단계에 놓여 있는데 화웨이 장비의 성능이 이미 입증되면서 미국이 자국 기업의 보호차원에서 화웨이 압박 카드를 꺼낸 것으로 풀어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맞대응 카드 ‘미국기업 블랙리스트’

이런 가운데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 대한 맞대응 카드로 ‘블랙리스트’를 내밀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 내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 조치로 미국계 글로벌 기업인 애플이나 보잉에 대한 중국 사업허가권 취소나 유통 금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역시 우리 반도체 기업들에게는 좋은 소식일 수 없다. 애플 또한 국내 반도체 부품의 가장 큰 고객 가운데 하나로, 화웨이와 애플이 나란히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 파장은 고스란히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으로 올 수 밖에 없다. 

중국 내에서 이미 이런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국 언론 환구시보는 “중국 정부가 애플과 퀄컴사, 보잉사 등 미국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에 올릴 준비가 됐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위협은 선거운동 전략의 일부일 수 있지만 중국은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완전히 분리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중국의 맞대응 카드가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를 두고는 목소리가 나뉜다. 그간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애플은 미·중 무역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생산 거점 다변화를 시도하며, 최근 베트남에서 에어팟 프로의 생산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올해 상반기 안에 전체 에어팟 생산량의 30%를 베트남으로 이전할 것이라는 계획도 확인됐다. 2017년부터 이어진 아이폰 일부 생산도 점차 확대하며 중국 생산량의 5분의 1을 인도로 옮기는 계획도 세웠다는 소식이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맞대응을 선언할 예정인 중국이 오히려 글로벌 기업들의 탈중국화를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한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국내 반도체 관련 부품기업들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도 숨죽여 비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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