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경영학에서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다고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연패하여 침몰 위기를 극복하고 재건에 성공한 미국과 유럽의 정치 신화에는 항상 새로운 노선과 정책이 있었고 이를 대표할 정치인이 있었다. 당연히 기존의 관행과 노선, 정책, 과거 이미지의 정치인과 세력과는 결별했다. 결단만 갖고 안 된다. 선언과 실천이 따라야 국민들은 설마하면서도 기대하기 시작한다. 

21대 총선에서 폭망한 미래통합당의 재건과 쇄신을 위해 김웅·김병욱 당선인 등 21대 국회 초·재선 의원들이 정책·공약 개발을 위한 '공부 모임'을 꾸렸다. 서울 홍익대나 이화여대 인근에 카페를 열어서 일반 시민들이 드나드는 '정책 공간'을 만들겠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재선 의원들은 개원 후 매주 첫째·셋째 주 수요일에 정기 모임을 갖고 당 혁신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180석에 달하는 거대 여당과 청와대를 적절히 견제하기 위해서는 의석수에 관계없이 건강한 야당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응원을 보낸다. 건강한 야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경영에서와 같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초. 재선 의원 등 당의 쇄신과 재건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먼저 결정할 것은 바로 ‘버릴 것'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버릴 노선과 세력, 버릴 정치인이 무엇인지 결정해야 한다. 마리에의 조언대로 21대 총선은 물론 4연패를 거듭한 미래통합당의 그 무엇 중 설레지 않고 유권자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필자는 미래통합당이 버려야 할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다. 정치에서 이미지를 바꾸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정치인 개인이든 정치세력이든 좋든 나쁘든 유권자에게 특정 이미지로 굳어지면 여간해서 벗어나기 힘들다.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분명한 탈피, 탈색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이미지로 정치 재기에 성공한 사례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의당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에 두 번 실패하고 세 번째 도전에 성공해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헌신적인 민주화투쟁과 전문가 이상의 학식, 정치적 식견과 기획력, 호남의 절대적 지지도를 보면 대통령을 했어도 몇 번을 했을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는 1987년 13대와 1992년 14대 대선에 실패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그의 이미지, ‘빨갱이’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역 분할의 4자필승론(13대), 범민주연대(14대) 전략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것이다. 

정치 은퇴까지 선언했던 그가 15대 대선에서 선택한 카드는 DJP연대 전략이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보통 DJP연대 전략을 다수 유권자 확보 전략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김대중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빨갱이’이미지를 벗기 위한 전략이다. 5.16 군사쿠데타 주역인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함께한 DJP연대를 보수 이미지가 매우 강한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까지 포함하는 ‘DJT연대’로 확장된 것은 지역을 넘은 이미지, ‘빨갱이’ 이미지를 벗기 위한 선택이라고 해석할 수박에 없다. 

종북 좌파 이미지가 강했던 진보 진영의 정당을 출발로 하는 정의당 역시 ‘종북 좌파’ 이미지를 벗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정의당은 3.3%(16대 대선) 지지율에 불과한 민주노동당을 뿌리로 하는 진보 정당이다. 그러나 2012년 19대 총선에서 무려 13석을 확보, 원내 제3당으로 자리 잡았고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6석, 경남 창원 보궐선거 후보단일화 획득, 연동형비례대표제 통과 등을 이끌어냈다. 비록 21대 총선에서는 쪼그라들었지만 정의당이 받은 정당지지율은 9.6%로 국민의당이나 열린민주당보다도 많다. 극우보수 3개 정당이 받은 지지율 3%에 비교하면 그 성과는 대단하다.

이처럼 정의당이 한국 정치사상 가장 힘 있는 강소정당으로 성장한 데는 심상정 대표와 고 노회찬 의원 등 소위 PD(민중민주)계열 인사 중심으로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으로 인해 구속된 이석기 의원 등 종북 세력과 결별했기에 가능했다. 통합미래당 등 쇄신과 혁신을 바라는 정치인들과 통합당 비대위원장을 맡은 김종인 전 선대위원장은 ‘버려야 할 것’을 분명하게 정하고 ‘짧고’ ‘빨리’ ‘한 번’에 처리해야 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