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폭탄’ 맞대응용, MB측 내부 문건 공개

17대 대통령 선거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때 5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MB)는 BBK의혹의 핵심인물인 김경준 전 대표의 귀국과 이회창 후보의 무소속 출마로 어느새 30%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지난 11월 22일 <조인스 풍향계>의 주간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8.5% 떨어진 35.9%를 기록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MB캠프와 한나라당 당사는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특히 대선정국의 핵폭탄으로 불리는 BBK의혹과 관련해선 내부교육을 강화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MB캠프에서 돌고 있는 ‘김경준 Q&A’문건을 긴급 입수했다.



‘이름 5개, 여권3개, 위조 28건, 20여개의 유령회사 설립…’.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캠프가 김경준 의혹에 맞대응하기 위해 만든 문건에 소개된 김씨 관련 내용이다.

표지를 포함해 59쪽으로 구성된 ‘김경준 Q&A’ 문건은 크게 ▲김경준은 누구인가 ▲BBK란 무엇인가 ▲자료 ▲해설 ▲22개로 구성된 핵심문답 ▲미국 연방법원 판결문 등 6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후보 법무팀이 11월 초 작성, 내부에 돌린 이 문건은 언론 등에서 BBK 관련의혹을 물어올 경우를 대비, 내부 교육용으로 사용 중이다. 캠프 내 관계자는 “20여일 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 상황을 최대 고비로 생각하고 방어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열사람도 한 도둑 못 막아”

문건은 한국 법원의 체포영장, 미국 법원의 판결문 등을 근거로 김씨를 ‘사기꾼’이라고 몰아붙였다. 여기에 소개된 김씨 이름은 모두 5개이며 여권도 3개(Kyung Joon Kim, Christopher Kim, Scott Kim)나 된다. 2001년 3월부터 같은 해 11월 15일까지는
Scott Kim(김씨의 동생 김영모)이란 동생의 여권을 사용했는데 실제 김영모씨는 1999년 12월 3일 숨졌다.

문건은 또 김씨가 법인설립인가서 19매, 여권 7매, 미국 운전면허증 2매 등 28매를 위조했으며 한국과 미국에 유령회사 20여 개를 세웠다고 주장했다.

위조여권의 경우 자신의 여권을 스캐너로 복사한 뒤 포토샵기술을 활용, 얼굴사진을 바꾸는 방법을 이용했다. 법인설립인가서는 인증법인명과 설립일시 등을 고친 뒤 복사하는 방식을 썼다고 문건은 설명했다.

문건은 이처럼 위조를 밥 먹듯 한 김씨가 주가조작과 돈세탁, 공금횡령의 주범이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BBK와 관련해선 명칭이 가장 먼저 언급됐다. 김씨는 미국 교도소에서 BBK란 명칭에 대해 ‘이 후보가 현대건설에 몸담고 있을 때 중동은행의 이름을 보고 지어줬다’는 식으로 대답했지만 사실과는 맞지 않다는 것.

문건은 이에 대해 최초의 이사 3인이었던 Bobby(오영석), Bora(이보라, 김씨의 처), KyungJoon(김씨)의 이니셜을 딴 이름이라고 반박했다. 김씨가 이 후보를 만나기 전인 1999년 4월 같은 직장에 다녔던 사람들과 세운 회사가 BBK였다고 문건은 주장했다.


“MB 명성, 이미 흠 갔다”

문건 ‘자료’부분은 김씨와 BBK와의 관계, LKe 및 MB와의 관계, 옵셔널벤처스코리아, BBK 운용실태 등을 다뤘다. 이 후보쪽은 이를 통해 “BBK사건 본질은 주가조작이 아니라 김씨 개인회사 공금횡령 사건”이라며 “옵셔널벤처스코리아는 김씨가 펀드자금을 불법투자해 단독으로 인수한 회사로 미국의 옵셔널벤처스는 김경준의 페이퍼 컴퍼니”라고 주장했다.

‘해설’ 부분에선 김씨의 회사 공금횡령 내역과 자금세탁 수법, 주가조작의 진상에 대해 설명했다. 문건은 또 미 연방법원 결정을 근거로 “주가조작은 김씨의 단독범행으로 당시 모든 주문은 김씨의 지시 아래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문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질문과 응답’에선 22개 질문에 걸쳐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 대부분은 김씨와 이 후보의 관계와 관련된 것들이다.

문건은 무엇보다 이 후보가 김씨에게 철저하게 사기당한 피해자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코넬대 경제학 석사, 시카고대 경제학 석사, 펜실바니아대 등 김씨의 학력은 화려했다. 이 후보가 현혹될만한 학력과 경력의 소유자였다. (더욱이) 미국 시민권자였
던 김씨는 학력과 경력만큼 치밀하고 정교하게 사전준비를 했다.”

이어 문건은 “이 후보가 김씨의 학력과 뛰어난 실적, 언론의 주목을 보고 신뢰해 동업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김씨 사기행각의 피해자가 됐다”면서 “경제전문가란 이 후보의 명성에 흠이 간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도 애 많이 먹을 것”

이 후보가 공동대표 이사로 있을 때 김씨 행각을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질문에도 문건은 “열 사람이 도둑 하나 못 막는다는 옛 얘기도 있지 않느냐. 그땐 그러리라고 정말 생각할 수 없었다”고 동정론에 호소했다.

문건은 또 책임론과 관련 “김씨의 사기행각을 알아채지 못한데 대해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이 후보와 관련된 인터뷰 내용 중 불리한 것에 대해선 ‘착오’였다고 변명했다. 2000년 10월 16일자 중앙일보와 같은 해 이코노미스트 10월호 인터뷰 기사에서 이 후보가 "BBK를 설립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 문건은 "이 후보가 착오로 답변한 것이
다"고 설명했다.

한편 문건은 김씨 귀국이 대선을 앞둔 정치공작이라는 데에도 상당한 무게를 뒀다. 한국에서의 처벌을 겁내 3년 동안 송환을 피했던 김씨가 대선을 한 달 남짓 앞두고 귀국한 저의는 뻔하다는 것.

문건은 이어 “희대의 사기꾼과 정치공작의 검은 손이 맞잡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르지 못하겠느냐. 여권의 공작적 음모가 작용됐다는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후보 쪽은 2002년 대선 때의 김대업씨를 들며 이런 주장을 줄기차게 펴왔다.

한편 캠프 내부의 한 핵심인사는 “문건을 바탕으로 자체교육을 진행 중이지만 솔직히 말해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귀뜸했다. 그는 “그만큼 김씨 수법은 천재적이다. 검찰이 이를 밝혀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고 말했다.

이 후보 측은 법무팀과 언론팀 등을 중심으로 ‘클린정치위원회’를 구성, 매일같이 대응회의를 열며 마지막 고비를 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지막 지키기 전략의 성공 여부에 따라 대선결과도 판가름 날 전망이다.



#‘Q&A 문건’ 주장 ‘김경준 사기 수법’

이명박 후보 측이 작성한 BBK 관련 문건은 김경준 전 대표를 희대의 사기범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건이 주장하는 김씨의 사기 수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김씨가 위조한 네바다주 법인설립인가서로 투자 등록을 한 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증권사에 가공의 해외 펀드 계좌 개설
- 회사(실제로는 유령회사)에 투자하는 것처럼 해외로 송금을 해 384억원 횡령
- 증권 계좌를 통해 미국 상업은행 여러 계좌로 송금하는 수법 사용
- 김씨와 그의 누나인 에리카 김은 이 돈으로 비벌리 힐스의 고급주택 2채를 구입하고 나머지는 스위스 계좌에 입금
- 현재 미국에 1000만 달러, 스위스에 1500만 달러 압류

문건은 이 과정에서 김씨가 동생의 여권 등 상당한 문서들을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이미 사망한 동생 여권을 사용한 것은 출입국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는 것. 이어 문건은 “믿는 사람을 상대로 사기를 치려고 덤벼들면 사전에 막기란 사실상 힘들다”며 이 후보가 김씨의 사기극과 무관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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