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규 대표
박동규 대표

5월28일 문재인 대통령 초청 형식으로 여야 원내대표와 함께 청와대 회동이 있었다. 총선 이후 처음이자 지난 2018년 11월 5일 청와대 ‘여야정 상설협의체’ 회동 이후 566일 만이라고 한다. 20代 국회가 종료되고 21代 국회가 시작되기에 시의적절한 회동이라 하겠다.

과거 국회나 정국이 극한적 대치로 정치가 실종되고 국민들의 정치 피로도가 고조될 때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이른바 여야영수회담이 정국 물꼬를 터 주곤 했던 사례들이 있기에 관심이 큰 때이다.

이번 영수회담에서도 언제부터인가 정치권의 상용어처럼 된 ‘협치’가 주된 대화 소재였다. 협치는 말 그대로 여야가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상생의 정치를 목적으로 한다. 여당의 ‘일방적 독주’나 야당의 ‘타협 없는 반대’ 속에 선 협치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기에 ‘협치’의 이면에는 반드시 서로가 주고받을 수 있는 ‘거래조건’들이 있어야 성립이 되고 그 결과나 ‘실질적 협치의 내용’ 들이 도출되기 마련이다. 대통령 초청 청와대 회동은 사실상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여야의 협치를 도모하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이지 국회의 구체적 협치 사안까지 대통령이 관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과연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협치에 진정 목말라 있는 것일까. 또 제1야당은 협치를 통해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에 관심이 더 간다. 롤러코스터 같은 반복적인 코로나 발생 속에서도 위기 대응에 정부 여당은 아직은 선방을 해내고 있다. 총선에서 압승도 했고 그 여세를 몰아 일각에선 ‘국회 상임위 18개를 다 차지해야 한다’는 호기에 찬(?)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아픈 대목은 ‘윤미향 사건’ 인데 아직은 여유 있는 대처에 급박함도 절실함도 없다. 협치의 절실함이 예전같이 목매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야당 역시 ‘집안 리모델링’에 몰입해야 할 처지에 화력을 대여 투쟁에 둘 여력도 없다. ‘윤미향 사건’은 검찰 수사 중이나 ‘결정적 한 방’은 아직 없다. 협치라는 대의명분과 필요성은 공감하겠지만 협치의 대가로 마땅히 얻어낼 것도 없는 듯 하다. 잘못 ‘협치의 프레임’에 갇히면 장날 들러리 서듯이 여당의 장구에 흥만 돋우는 셈이 아닐까 의구심도 있을 법하다.

이번 청와대 회동이 1년 6개월 만에 성사된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작 협치가 절실했던 지난 20代 국회 내내 2018년 11월에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만들고 한 번도 제대로 머리를 맞댄 적이 없다. 삭발하고 거리에서, 그리고 국회에서 ‘동물 국회’를 만들기까지 그 어디에도 ‘협치’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여야정 상설협의체’는 그냥 레토릭에 불과했다. 그때도 정치권은 협치가 절실하다 했다.

그러나 협치의 실체는 여당은 ‘마음 통하는 정당끼리’하고만 거래했고, 또 정권타도에만 몰두했던 제1야당은 협치보다는 ‘투쟁’이 더 빠른 성과물을 만들어 낼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정치도 없었고 협치는 더더욱 곳간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우리 정치 실정은 ‘평화’ 시에는 협치를 외치지만, 협치가 필요한 ‘전시’에는 그냥 전쟁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은 여야가 협치의 절실함이 드러나지 않는 정국이다. 한 가지 분명한 ‘협치의 목적과 대상’이 있다면 세기적 코로나 ‘국난 극복’이다. 모처럼 성사된 협치 정국 모드에서 여야는 서로 받을 것도 줄 것이 없더라도 제발 말로만 하는 협치가 아닌 ‘협치의 실체’를 보여주길 바란다. 

여당은 ‘승자독식’의 태도가 아닌 ‘겸양과 상식의 정치’로 야당에 호응하고, 야당은 떼쓰는 것으로 얻는 이득보다 설득하고 ‘경쟁우위의 정책과 대안’을 제시해서 얻는 국민적 지지가 더 큰 성과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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