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하는 곳이 초등학교, 중학교가 인근에 있는 아파트 단지이다 보니 집을 나서면 모든 도로가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이다. 사방이 유방의 군사로 둘러싸여 고립무원인 항우의 심정을 알겠다. 매일 애들을 학원에 실어 나르는 매니저의 삶을 살고 있는 아내는 운전대 잡기가 더 조심스럽다 못해 공포스럽다고 푸념한다. 소위 ‘민식이법’을 탓하는 것이다.

‘민식이 법’은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한 고(故) 김민식 군 사고를 계기로 스쿨존에 교통안전 시설을 늘리고,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운전자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스쿨존 관련법 개정안을 말한다.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을 개정한 것인데 한데 묶어서 ‘민식이 법’으로 불린다.

‘민식이법’이 운전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처벌이 대폭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해 아이가 사망할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며 어린이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기다리고 있다.

‘민식이법’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런 처벌 규정이 과잉 처벌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음주나 약물을 하고 운전을 해서 사망사고를 내도 무기나 3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는데 ‘스쿨존’에서 사고가 났다고 같은 수준의 처벌을 받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이런 과잉처벌 주장은 당장은 입증하기 어렵다. 개정된 법 조항이 시행되기 시작한 지 이제 2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더 많은 사고와 더 많은 판례가 쌓여야 과잉처벌이 맞는지 적정한 처벌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갓 시행된 법을 두고 운전자 입장 혹은 학부모 입장에 빙의해서 서로 척을 지듯 싸울 일은 아닌 것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다. 우리 애들이 불의의 사고로 죽을지도 모를 끔찍한 경우를 상정하고 만든 법이다. 내 자식이 스쿨존에서 길을 건너고 있다면 과연 과속을 할 수 있을지, 부주의하게 운전을 할 수 있을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매일 운전대를 잡는다고 가해자의 입장에 빙의해서 자식 잃은 민식이 부모까지 비난하는 세태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민식이 법은 고(故) 김민식 군의 사고가 발생한 충남 아산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과 미래통합당 이명수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다. 민식이법을 둘러싼 여론이 살풍경하게 돌아가자 이 둘의 태도가 가관이다. 강훈식 의원은 묵묵부답이고, 이명수 의원은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 의원은 "법안 논의 과정에서 처벌 규정이 합리적으로 조정이 될 줄 알았는데 그대로 통과돼 나도 놀랐다"고 했다 한다. 상임위 논의에서 처벌규정이 낮춰질 줄 알았다는 말인데, 정말 놀랍다. 국회의원이 이렇게까지 무책임해질 수도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제발 이런 식의 법안 발의는 하지 말자. 자기 이름으로 발의한 법은 그대로 완결성을 갖도록 신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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