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은 밖으로 뛰어나갔다.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건물 입구 바닥에 바닷물이 흥건했다. 죽은 물고기가 현관에까지 튀어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저깁니다.”

경비를 하고 있던 청원 경찰이 원전 2호기 바로 앞의 취수구 쪽을 가리켰다. 아직도 바닷물이 부글부글 들끓고 있었다. 크고 작은 생선들이 허옇게 배를 뒤집은 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다른 청원 경찰들이 무장 차림으로 여기저기서 뛰어나왔다.
“물기둥이 백 미터쯤 솟았습니다. 취수구 입구 쪽 바다 밑에서 폭발물이 터졌습니다.”

수원은 너무 놀라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청원 경찰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수원에게 물었다.
“아, 저는, 저는...”

수원은 말을 더듬으며 무심결에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이상한 물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럼 이것이?’

그 이상한 물건이 폭발물을 터뜨린 리모컨이라는 것을 수원은 뒤늦게 알아차렸다.
“청색경보! 청색경보!”
스피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여기저기서 푸른색 경광등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토요일 늦은 오후라 근무자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들 비상시 근무 규칙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는 오늘 근무 중인 발전부장입니다. 방금 제2발전소 취수구 앞에서 원인 모를 폭발물이 터졌습니다. 방사선 누출 우려가 있습니다. 방사선 비상 규칙에 따라 17시 08분 현재로 청색 비상령을 선포합니다. 모든 사원은 규칙에 따라 즉시 비상 태세를 갖추기 바랍니다. 대회의실에 비상 대책실을 설치하니 담당 부서장들은 즉시 집결하시기 바랍니다.”

즉시 취수구 앞에 비상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총을 든 청원 경찰이 그 앞을 지키기 시작했다.

발전소 내에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 단계별로 백색, 청색, 적색의 비상령이 내린다. 청색은 제2단계 비상령으로, 방사능 유출 가능성이 단 1퍼센트라도 있으면 내려지는 경보였다. 방사능이 실제로 유출될 때 내려지는 적색경보의 전 단계였다.

청색경보가 발령되면 방사선 안전부를 중심으로 발전부, 정비기술부, 계측 제어부 등의 정예 요원들이 비상 업무에 들어간다. 동시에 발전소의 안전과 관계있는 해양 경찰서와 관할 경찰서인 해운대 경찰서, 소방서, 심지어 인근 주둔 군부대에까지 상황을 통보한다.

적색경보가 내려지면 그때부터는 국무총리가 사태를 지휘한다.
비상령은 꼭 방사능이 유출되었을 때만 발동되는 것은 아니다. 태풍이 초속 33미터 이상 불 때는 백색 비상령이 내린다. 발전소 건물에 태풍의 영향이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대비하는 것이다.

제1, 2발전소의 발전부장은 모두 세 사람이었다. 셋이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토요일이나 휴일에도 부장석이 공백일 경우는 없었다.
“오토매틱 콜 온! 오토매틱 콜 온!”

마이크에서 다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퇴근했거나 출장 중인 청색경보 해당자들에 대한 자동 연락 시스템이었다. 핸드폰 연락이 우선이고 무선이 불가할 때는 유선 전화 통보를 이용한다.

수원은 비상 대책실이 마련된 회의실로 뛰어갔다. 김용소 발전부장과 김승식 안전부장이 전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벽에 걸린 상황판이 어지러웠다.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전쟁터의 막사 같았다.

수원은 김승식 부장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앞으로 다가갔다.
“아, 한 차장. 빨리 왔군요.”
김승식 부장이 굳은 얼굴을 잠깐 펴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장님, 이거요.”

수원은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김승식 부장에게 내밀었다. 안토니오 2호에서 가져온 리모컨이었다.
“이게 뭡니까?”
김승식 부장이 얼떨결에 리모컨을 받아 들면서 물었다.
“그게 폭발 범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바로 폭발 범입니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김승식 부장이 놀라 입을 딱 벌렸다.
“무심코 번호를 눌렀더니 폭발이 일어났어요. 경솔하게 번호를 누른 제 잘못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여기 앉아서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세요.”
수원은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수원이 자리에 앉자 여러 사람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수원은 전후 과정을 짧게 설명했다.

“그 암호 쪽지는 어디 있습니까?”
이야기를 듣고 난 김용소 부장이 물었다.
“제 책상 위에 있습니다.”

“왜 보안팀에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김 부장이 질책 조로 질문했다.
“그냥, 제가 먼저 좀 살펴보려다가...”
수원은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큰 일을 저지르셨군요.”

김용소 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한 차장님. 그 쪽지와 봉투를 볼 수 있을까요?”
김승식 부장이 나섰다.
수원은 김승식 부장이 모는 차를 타고 제2원전 발전소 사무실로 갔다가 문제의 쪽지와 봉투를 가지고 비상 대책실로 돌아왔다. 어느새 주영준 차장도 와 있었다.

“빨리 오셨군요.”
수원이 굳은 표정으로 쪽지를 김용소 부장에게 내밀었다.
“배에서 언제 이런 걸 챙기셨습니까?”

옆에 섰던 영준이 물었다. 수원은 영준 몰래 가져온 것이 죄라도 지은 것 같아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모든 게 자기 잘못인 것 같아 괴로웠다.
“지금 본부장님은 출장 중이십니다. 발전소장님이 나오시기 전까지 오늘 당번 발전부장인 제가 지휘를 맡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으십시오.”
김용소 부장이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한수원 박사께서 설명을 좀 하시지요.”
김용소 부장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 수원을 쳐다보았다. 수원은 벌떡 일어섰다.
“그냥 앉아서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김승식 부장이 권유했다. 그러나 수원은 선 채로 오후에 있었던 일을 다시 설명했다.

“한수원 차장은 모르는 사이에 범행을 대신 저지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김용소 부장이 심각한 얼굴로 수원의 경솔함을 나무랐다.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한 차장이 그것을 챙겨 왔기 때문에 큰 불상사를 막았을지도 모릅니다.”

김승식 부장이 수원을 변호해 주었다.
“추가로 폭발할 가능성도 있겠군요.”
김용소 부장이 심각하게 말하며 지시했다.
“모두들 그 리모컨 번호를 함부로 누르지 않게 조심하세요. 87452라고 했던가.”

“팔찌사오리...”
주영준이 중얼거리자 모두 웃었다. 팽팽하게 긴장했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수원만 굳은 표정이 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행정실 허인기 총무부장이 들어왔다. 청원경찰을 지휘하는 실질적인 경비 책임자였다.
“추가 폭발은 없었습니다. 방사능 유출도 ND(Not Detectable) 상태입니다.”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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