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행복한 여자야. 은희는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은희는 결혼한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은 병아리 신부였다.

신랑은 오늘 첫 출근을 나갔다. 은희는 그를 위해 와이셔츠를 다리고 넥타이를 골라주며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둘은 3년의 긴 교제 끝에 결혼했고 그 결혼은 정말 둘이 헤어져서는 못살 것만 같아서 한 결혼이었다. 그리고 새집.

신랑의 집이 잘살아 둘은 결혼하면서 아파트를 바로 얻어 월급쟁이 10년 노릇을 해도 내 집 장만이 어렵다는 서울에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은희에게는 그 점이 아주 새로운 행복이었다. 결혼과 더불어 생긴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은희네 집도 못사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유 있는 집도 아니어서 은희는 줄곧 동생과 한방을 써야 했다.

그런데 이제 25평 아파트에서 사랑하는 그이와 자신들만의 공간을 가지고 살게 되었으니 너무나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신혼여행은 3박 4일로 제주도를 다녀와서 남은 기간 내내 집을 어떻게 꾸밀까 하는 일로 속살거리며 지냈다. 오늘은 식탁 유리를 주문했다. 이제 그것만 끝나면 모든 집안 정리가 일단락된다. 그동안 식탁 유리가 없어서 김칫국물 흘리는 것 하나하나에까지 신경을 곤두세웠었는데 이제 홀가분해질 것이다.

은희의 행복한 생각에 제동을 걸 듯이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렸다.
“여보세요?”
“거기 김정식 씨 댁입니까?” 김정식은 남편의 이름이다. “예, 그런데요.”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전화기 속의 사내는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희는 깜짝 놀라 사지가 벌벌 떨려왔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저, 김정식 씨가 사고를 당해서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
은희는 풀썩 주저앉았다. “그게 정말인가요? 많이 다쳤나요?”
은희는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갈라진 음성으로 물었다.

“많이 다친 것은 아닙니다. 작은 교통사고가 났을 뿐이에요.”
사내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했다. “부인을 찾고 계시니 빨리 이리 좀 오셔야겠네요”
“예 예, 그래야죠. 거기가 어딥니까?”

은희는 식은땀이 흥건한 얼굴을 손으로 닦으며 물었다. “여기는 강남 xx 병원입니다. 김정식 씨는 응급실에 있어요.”
“예, 알았습니다. 제가 금방 간다고 전해 주세요.” “물론이지요. 그럼 속히 오세요.”

은희는 수화기를 놓고 얼른 옷을 챙겼다. 어쩌다 교통사고를 당했을까. 정말 크게 다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너무 돼서 옷이 팔에 걸리는지 다리에 걸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막 나가려는 찰나에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유리 배달 왔습니다.”
하필이면 지금? 은희는 혀를 차며 문을 열었다. “어디에 얹을까요?”
유리판을 운반해 온 청년은 인상이 좋아 보였다. “식탁에요.”

은희는 중얼거리듯 힘없이 말했다. 청년은 유리판을 든 채 잠시 망설였다.
“왜요?”

빨리 내려놓으라고 재촉하려던 은희는 식탁 위에 아침 먹은 그릇들이 그대로 있다는 걸 알고 얼굴이 빨개졌다. 얼른 그릇들을 치우고 유리를 내려놓게 했다.

청년은 조심해서 유리를 내려놓았다. “됐어요. 급한 일이 있어서.”
유리가 30도가량 식탁에 어긋나 있었다. 청년은 그걸 바로잡으려는 듯이 유리판에 손을 대었는데 은희는 그걸 만류하고 청년을 내보냈다. 은희는 집을 나서기 전에 유리를 한 번 밀어보았다. 하지만 유리가 원체 무거워 자기 힘으로는 잘 밀리지 않았다. 은희는 금방 포기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xx병원 응급실까지 무슨 정신으로 달려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응급실에는 많은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응급실을 황망히 두 바퀴나 돈 다음에야 남편이 병실로 옮겨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희는 얼른 간호사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오늘 교통사고로 들어오신 분은 없는데요.”
“아니, 있어요. 제가 전화 연락을 받고 오는 길이에요. 김정식이라고, 나이는 스물아홉, 키가 크고 안경을 썼어요.”

간호사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정말 그런 분은 안 들어오셨어요. 병원을 잘못 들으신 것 아닐까요?”

은희는 설마 하는 생각이었지만 정말 여기에 남편이 없다면 자기가 잘못 들었을 수밖에 없는 셈이라 남편의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회사에도 연락이 닿았을 테니까 회사에 전화해 알아볼 심산이었다.
“네, 00물산 기획실입니다.” “정식 씨!”

전화를 받은 것은 남편이었다. 은희는 너무 놀라 고함을 치고 말았다.
“정식 씨, 미쳤어요! 금방 사고를 당한 사람이 회사에 나가 있으면 어떡해요?”
은희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무슨 소리야? 나쁜 꿈 꿨어?”

남편의 목소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였다. “정식 씨가 사고가 났다고 전화가 왔단 말이야, 그래서 부랴부랴 달려왔는데
“뭐야? 이런, 도둑맞았구나!”

남편이 크게 소리쳤다. 그렇구나, 도둑이다. 도둑이 집을 비우게 하려고 거짓 전화를 한 거다. 회사에 전화만 해봤어도 알 수 있었을걸. 바보처럼 서두르다가.

은희는 가슴을 치며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난장판이 되어 있을 거란 생각과는 달리 집안은 아주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은희는 그게 더 불안했다.

은희는 먼저 부엌 찬장에 숨겨 두었던 패물함을 열어보았다. 안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무나 놀라 온몸의 피가 하나도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무나 놀라 온몸의 피가 싸늘히 식는 것만 같았다. 은희는 비틀비틀 식탁 의자에 주저앉았다.

범인들은 필요한 것만 홀랑 훔쳐갔다. 그리고 시간 여유가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집안 정리도 싹 해놓고 간 것이다. 심지어 식탁 유리까지도 비틀어져 있던 것을 맞춰 놓았다.

30분도 안 돼서 남편이 도착했다. “정식 씨,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은희는 정식을 보자 눈물샘이 터지기라도 한 듯이 펑펑 울음을 터트리렸다.
“괜찮아, 괜찮아. 자기가 무사하면 그만이지. 그깟 재물은 하나도 아깝지 않아. 요새 험악하고 못된 도둑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에다 대면 양반이지 뭐.”

정식은 부드럽게 은희를 토닥였다.
“그리고 내 선배 중에 시경에 있는 유명한 형사가 있어. 그 선배에게 부탁하면 잃은 물건 찾기는 식은 죽 먹기라고.”

강 형사가 그곳에 도착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걱정 마세요. 범인은 한 녀석인데 장갑도 끼지 않고 범행을 저질러서 지문을 남겨놓았어요. 손잡이나 식탁 위는 다 닦았지만 그곳을 빠뜨렸더군요.”
강 형사가 여덟 개의 지문 샘플을 보여주며 웃었다.

 

퀴즈. 지문은 어디에 남아 있었던 것일까?

 

[답변-2단] 도둑은 여유 있게 집안을 뒤진 흔적을 다 지웠다. 그러다가 밀려나와 있는 유리판도 자신이 한것인 줄 알고 두 손으로 제대로 맞춰놓았다. 정리한 다음에 지문을 싹 지워버렸지만, 유리판 밑에 찍힌 지문은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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